파리대왕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9
윌리엄 골딩 지음, 유종호 옮김 / 민음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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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제럴드 골딩의 '파리대왕'을 첨 접한건 책이 아닌 영화로였다. 98년 잠깐 모 대학에서 한학기 머무르면서 P교수님의 '정치학의 이해'를 교양으로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거기서 두시간에 걸쳐 이 영화를 보고 토론하는 수업을 했었기 때문이다. 물론 난, 당시 그 토론에서 한마디도 하지 못..아니 안했다고 해두자.^^;;; 핑계를 대자면, 그 때의 난 가공의 얘기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라는 생각에 푸욱 빠져있었기 때문이다.

책을 보게된건 영화를 접한 후 한참 뒤였다. 여담이지만, 영화를 이미 본 내 머리가 책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신호를 계~속 보내서 읽는데 아주 힘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일단 주인공 '랠프'가 영화에선 분명!!갈색머리였는데, 소설에선 금발로 나오더군. 아~그때의 그 거부감이란.)확실히 영화를 먼저보고 소설을 보면, 그만큼 상상할 여지가 줄어드는 듯.

내용은, 한 소년 집단이 비행기로 이동하던 중 무인도에 불시착 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들은 처음엔 의회 제도 비슷하게 회의도 하고, 봉화도 올리고 규율도 정하지만 이런저런 사건을 통해 야만화 되고, 이성적인 삶을 고수하던 주인공인 지도자'랠프'와 그를 따르는 극소수의 애덜은 왕따가 되어 죽음을 당하고, 쫓기다가 어쩌고저쩌고(결말은 생략^^)하는 내용이다. 흠흠흠..괜히 요약했나??엉망이군. 쩝

인간의 불완전성, 그리고 그걸 메우기 위한 제도의 불완전성. 음 지도자로 선출된 랠프의 이런저런 실수를 생각해 볼 때 '어른이 갔으면 저런경우 안생긴다.'라고 그 시절 수업 토론시간에 말씀하시던 모형의 말씀이 옳은듯 싶기도 하지만, 그런 실수들이 아주 치명적이라고 보여지진 않는다. 그렇다면, 인간에 대한 믿음이란건????

수많은 상징들과 이를 통해 일관되게 파멸의 길을 걷는 섬에 떨어진 소년들. 글쎄, 인간에 대한 신뢰란건, 결국 우리 스스로 인간으로서의 불완전성, 그런 인간이 만든 제도의 불완전성을 인식하고, 그 불완전성마저도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 아닐런지. 그리고

뚜렷한 목적 의식이나 이상, 가치없이 찰나적 이익에 집착하는 사회의 종말은 어떠한지에 대한 의문을 던져주는 소설이 아니었는지.

아울러,
멍청한 머리와 건조한 문학적 감수성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자신있게(?)서평을 해대는 나의 자신감은 어디서 근원하는 것인지.-_-;;;

에 대한 생각을 갖게 해주는 소설이었던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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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
홍세화 지음 / 한겨레출판 / 199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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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대학 1학년 시절 마지막 세미나 '교재'였고, 따라서, 내가 처음으로 '완독'한 홍세화씨의 책 되겠다. 책은 '문화비평 에세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듯, 한국의 문화를 전적으로 프랑스-구체적으로는 프랑스의 '똘레랑스'문화-의 문화와 비교하며 비판하고 있다. 저자가 '본의아니게' 프랑스에서 줄곧 생활해 온 터라, 프랑스의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는데, 그렇다고해서 그가 덮어놓고 프랑스를 '찬양'하는 것은 아니다. 프랑스 사회의 선진성에 관한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우리나라의 정치, 사회적 병폐를 거론하기 위한 '도구'로 복무하고 있으며, 그러한 프랑스 똘레랑스의 이면-인종문제-에 대해서도 충분히 거론하고 비판되고 있다.

또한 '제1세계'에서의 생활을 오래 한 사람이 한국을 비판하다보면 쉽게 빠지는 오류, 즉 한국에 대한 폄하나 원망은 이 책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그것은 아마도 저자가 '제1세계'의 휘향찬란한 외향과 스타일에 빠지지 않고 자신의 뚜렷한 주관과 신념에 의해 서술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모국 사회에 대한 비판이 질시보단 애정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세미나가 끝나고, I형이 했던 한마디는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근데 우리는 도대체 왜 이모양일까? 얘들이라고 특별히 잘난것도 아닐텐데." 글쎄, 지금 내 생각엔 한국의 독자적인 '근대'는 고작 50년 밖에 되지 않았다는 점(프랑스도 '똘레랑스'가 자리잡기 위해서 오랜 기간과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필요했다), 그 초입부터 좌우파간의 '전쟁'-이러한 극단적인 정치행위(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을 정치의 끝으로 보았다지?) 속에서 중간파가 살아남을 여지는 없다-으로 인해 극우 일변도의 정치교의가 '교조화'되는 속에서 시작했다는 점, 50년이 지나도록 국가보안법 같은 다른쪽을 배제하려는 법적 장치가 그대로 온존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장구한 사회적 합의를 통한 똘레랑스 문화가 자리잡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는 점이 그 원인이 아닐까 싶다.

홍세화씨의 문장은 다소 문학적(?)이란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의 글에는 '이성으로 비관하고 의지로 낙관하려는'한 인간의 노력이 보인다. 시간이 꽤 지난 책이지만, 읽어보지 않으신 분이 있다면 한번쯤 읽어보시기를 권한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관용과 민주주의, 그리고 사회정의라는 가치가 그때나 지금이나 자리를 잡지 못하고 떠돌고 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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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홍세화 지음 / 창비 / 199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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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세화 씨는 '현실'을 치열하게 사시는 분이다. 때문에 그 분의 글들은 시대성을 깊게 함의하고 있다. 이러한 홍세화씨의 현실에의 참여와 치열한 행동은 우리에게 너무도 소중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만큼 그는 자신의 능력을 '희생'하고 있는게 아닌가 싶다. 그의 평론집은 시대상을 너무도 깊게 품고있다보니, 대부분은 시간의 풍화작용을 견뎌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은 그의 단행본 중 예외로 해야 할 듯 싶다. 우리 사회에 홍세화씨의 이름을 알려 준, 그 소중하고 아름다운 인물을 우리에게 소개한 이 책은 홍세화씨가 파리로 망명하여, 택시운전기사를 하며 느꼈던 단상들을 아름답고 거칠게, 슬프지만 기쁘게, 그리고 무엇보다 솔직하게 담고 있다.

'꼬레'를 제외한 모든 나라를 갈 수 있는 그. 어찌보면, 해준것도 없이 그의 자유를 억압하고, 유무형의 폭력을 가했던 조국을 등진 채, '제1세계'에서 편안하게 살아갈 수도 있는 그였지만, 망명생활 내내 그의 머릿속엔 그가 떠나왔던 한국사회가 잊혀지지 않았던 듯 싶다. 그는 사회에서 누릴만큼 누리고 사는 '남아있는 우리들'이 민망해질 정도로 우리 사회를 너무도 사랑했고, 덕분에 우리는 이런 좋은 책을 선물로 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사랑'은 맹목적인 '충성'이 아니다. 지극히 상업적이고 맹목적인 충성만이 남은 우리 사회, 그의 사회에 대한 '사랑'이야말로 이 책에서 꼭 건져야만 할 정수가 아닐까. 이상, 거의 5년이 지나 이 책을 다시 보면서(그래, 내가 이 책을 처음 만난건 출간된지 한참 후였다^^)새롭게 느꼈던 감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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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 움베르토 에코의 세상 비틀어 보기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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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 할아버지(?^^;;;)의 글은 유쾌하다. 유쾌하면서도 굉장히 무게있다. 무게있으면서도 너무도 날카롭다. 날카로우면서도 굉장히 따뜻하다. 즉, 그의 '잡문'은 내가 보기엔 그 누구의 잡문보다 '완벽하다.' 그리고 이 책은 그의 잡문 모음 중 '시중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책'되겠다.^^

잡지에 정기적으로 기고한 칼럼을 모은 이 책은 그 시간의 풍화작용을 놀랍게도 잘 견디고 있다. 그 원동력은 아마도 그의 폭넓으면서도 깊이있는 사물에 대한 관심이 아닐까 싶다. 신안상품 이야기, 축구 이야기, 미국열차 이야기, 운전면허 재발급 이야기 등등 일상생활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주제로 정말 읽는 독자로 하여금 포복절도할 웃음을 선사하고 있는 에코는, 그 웃음을 단순한 웃음이 아닌 '의미있는 웃음'이 되도록 이끈다. 연극 이야기를 신나게 하면서도 '판벌어진 후에 들어와서 판 끝나기 전에 나가는 인생'을 이야기하고, 축구 이야기를 하면서 '다들 축구를 좋아할 것이라는 보편성을 인정하면서도 굉장히 인종차별적인 축구팬'을 비판한다. 아마, '교양'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에코'와 동의어가 아닐까??

책을 보며 굉장히 웃었고, 굉장히 즐거웠으며, 그 끝은 상쾌했다. 하나같이 끝맛은 텁텁한 코메디가 난무하는 세상에 에코의 '잡문'은 그야말로 '산소같은'^^;;;코메디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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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민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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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 감동, 감동. 이 책을 그 시기에 그 장소에서 보게 된건 정말 일생일대의 행운일런지도 모르겠다. 박민규씨의 문체는 그 어떤 우스꽝스런 인터넷 문체보다 재미있으면서도 나름의 품위는 지키고 있었고, 전하는 메시지 또한 지나치기 어려울 정도로 '무게 있었다'

인간이 살아가는 이유가 뭘까?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문제는 그 곳에 존재하는 듯 싶다. 옆집 친구가 가졌으니 나도 가져야 하고, 어머니 친구 아들이 하니 나도 해야하고, 저렇게 해야 인정받는다고들 하니 저렇게 해야하고, 그 곳에 어디까지나 '나'는 없다. 때문에 '남'도 사라져버렸다. 그것이 오늘날, 우리 사회의 진 면목이다. 하지만, 인간은 과연 그런 이유로 존재하는 것일까?

스포츠는 '즐거우려고', '건강하려고'하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스포츠는 어떤가? 못하면 맞고 놀림받고, 지나친 훈련 덕택에 온몸은 멍들고 상하며 심지어 약물까지 복용해서 문제가 되곤 한다. 오늘날 우리의 인생은 어떤가? 오늘날의 스포츠와 오늘날 인생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이렇게 된 원인으로 저자가 꼽는 것이 바로 '프로'이다. 프로건 아마추어건 다를 것이 없다. 같은 룰에, 같은 일들을 한다. 하지만, 미디어와 지배층은 '프로는 아름답다'는 둥, '프로는 다르다'는 둥 헛소리를 해대며 평범하고 여유있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억압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소외와 도태를 만들며 인간 관계의 따뜻함마저도 앗아간다. 이러한 상황에서 '프로'라는 레테르(?)는 직업적 소명도, 직업의 목적도 잠식한다. 우리는 '이기기 위해서라면' 혹은 '성공하기 위해서라면'남들을, 심지어 나까지도 파멸로 이르게 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속지 않는것. 그리고, 우리가 애초 원했던 것처럼 모두 함께 행복해지는 것. 저자는 이 소설을 통해 그런 것들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물론, 이렇게 살아가기란 너무도 쉽기에, 역설적으로 오늘날에는 그만큼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려운 것일런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바로 오늘, 우리의 자화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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