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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
홍세화 지음 / 한겨레출판 / 199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대학 1학년 시절 마지막 세미나 '교재'였고, 따라서, 내가 처음으로 '완독'한 홍세화씨의 책 되겠다. 책은 '문화비평 에세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듯, 한국의 문화를 전적으로 프랑스-구체적으로는 프랑스의 '똘레랑스'문화-의 문화와 비교하며 비판하고 있다. 저자가 '본의아니게' 프랑스에서 줄곧 생활해 온 터라, 프랑스의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는데, 그렇다고해서 그가 덮어놓고 프랑스를 '찬양'하는 것은 아니다. 프랑스 사회의 선진성에 관한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우리나라의 정치, 사회적 병폐를 거론하기 위한 '도구'로 복무하고 있으며, 그러한 프랑스 똘레랑스의 이면-인종문제-에 대해서도 충분히 거론하고 비판되고 있다.
또한 '제1세계'에서의 생활을 오래 한 사람이 한국을 비판하다보면 쉽게 빠지는 오류, 즉 한국에 대한 폄하나 원망은 이 책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그것은 아마도 저자가 '제1세계'의 휘향찬란한 외향과 스타일에 빠지지 않고 자신의 뚜렷한 주관과 신념에 의해 서술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모국 사회에 대한 비판이 질시보단 애정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세미나가 끝나고, I형이 했던 한마디는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근데 우리는 도대체 왜 이모양일까? 얘들이라고 특별히 잘난것도 아닐텐데." 글쎄, 지금 내 생각엔 한국의 독자적인 '근대'는 고작 50년 밖에 되지 않았다는 점(프랑스도 '똘레랑스'가 자리잡기 위해서 오랜 기간과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필요했다), 그 초입부터 좌우파간의 '전쟁'-이러한 극단적인 정치행위(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을 정치의 끝으로 보았다지?) 속에서 중간파가 살아남을 여지는 없다-으로 인해 극우 일변도의 정치교의가 '교조화'되는 속에서 시작했다는 점, 50년이 지나도록 국가보안법 같은 다른쪽을 배제하려는 법적 장치가 그대로 온존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장구한 사회적 합의를 통한 똘레랑스 문화가 자리잡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는 점이 그 원인이 아닐까 싶다.
홍세화씨의 문장은 다소 문학적(?)이란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의 글에는 '이성으로 비관하고 의지로 낙관하려는'한 인간의 노력이 보인다. 시간이 꽤 지난 책이지만, 읽어보지 않으신 분이 있다면 한번쯤 읽어보시기를 권한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관용과 민주주의, 그리고 사회정의라는 가치가 그때나 지금이나 자리를 잡지 못하고 떠돌고 있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