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 열린책들 파트리크 쥐스킨트 리뉴얼 시리즈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유혜자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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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평범한 남자의 당혹스러운 이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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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주인공 조나단 노엘은 근면 성실한 인물이다. 하지만 전쟁이라는 외부 상황에 의해 의도치 않게 어머니와 헤어진다. 그 이후 그의 삶에서 '관계' 맺어왔던 인물들로부터 ‘버림’이라는 상처를 받는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 때문에 그는 더 이상 타인은 믿을 수 없는 존재라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조나단의 인생에 이런 불운들만 있었던 건 아니다. 


 

파리에서 그는 큰 행운을 두 개나 잡았다. 세브르가에 있는 어느 은행의 경비원으로 취직이 되었고, 플랑슈가에 있는 집 7층에 <코딱지만 한 >방 하나를 얻을 수 있었다. 
P.8 


 

조나단은 이 방에서 먹고 자며 행복한 삶을 살았다. 일요일도 외출 없이 방을 닦거나 침대보를 새것으로 바꾸는 일을 하며 그는 평화롭고 만족스럽게 30년을 살았다. 그리고 30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그의 방은 안락한 주거지로 변해갔다. 
 


 

그곳은 조나단에게 불안한 세상 속의 안전함 섬 같은 곳이었고, 확실한 안식처였으며, 도피처였다. 그곳은 그를 따뜻하게 맞이해 주는 애인, 정말 애인 같은 장소였다. 그 작은 방은 저녁에 돌아오면 그의 몸을 따뜻하게 덥혀 주었고, 포근하게 감싸 주었으며, 그가 필요로 할 때는 영혼과 실체로서 항상 그의 곁에 있어 주었고, 결코 그를 버리지 않았다. 
P.11


 

내게 갑작스러운 ‘상실’, 혹은 ‘버림’을 받는 일이 벌어진다면... 그래서 나는 조나단이 되어보기로 한다.  그리고 그가 가졌을 두려움과 슬픔 그리고 배신의 감정을 상상해 본다. 그래서일까? 그래서 조나단은 ‘사람’이 아닌 ‘방’에 집착하게 된 걸까?  24호실은 삶의 불상사로부터 어느 누구도 자기를 내쫓을 수 없는 그런 확실한 곳으로 온전하게 자기 혼자만의 것이었다. 이처럼 영원한 행복과 안식만 안겨줄 공간이었다... 단지 비둘기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넌 그것을 절대로 죽일 수 없어. 살 수도, 그것과 더불어 살 수도 없어...
비둘기는 혼란과 무질서의 대명사가 될 거야. P.18 


 

비둘기의 갑작스러운 등장은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는다. 그는 비둘기를 처리하기 위해 ‘혼자’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총 궁리해 본다. 어떤 이들은 비둘기의 등장으로 주인공의 극단적인 행동과 선택이 공감하기 힘들지도 모른다. 그래서 조나단의탈출 혹은 도피가 어찌 보면 희극적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나단은 갑작스레 일어난 전쟁으로 부모를 한꺼번에 잃었다. 그리고 그는 어린 여동생과 살아남기 위해서 전쟁이 끝날 때까지 생면부지의 친척 아저씨 집에서 숨어 지냈다. 그 이후 목숨 걸고 지켰던 여동생은 이민을 떠나고 없었고, 그의 아내는 겨우 4개월 만에 다른 남자와 눈이 맞아 떠나버렸다. 이런 타인과의 '관계'에서 오는 여러 번의 '상실' 그리고 '버림'의 경험은 한 인간이 감당하기에 역부족일 수 있다. 그리고 극단적으로는 조나단과 같은 생각과 행동을 할 수도 있다. 


"사실은 누구보다 타인과의 관계를 간절히 원했던 조나단"


이처럼 사람은 결국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작가는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현대인들은 전쟁 시기를 살고 있지는 않지만 '풍요 속의 빈곤'이라는 말이 생각날 만큼 소셜 속에서 많은 타인들을 만나고 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서  비둘기』는 의미 있는 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라살 부인의 커피 향기였다. 숨을 몇 번 깊게 들이마시자 마치 직접 커피를 마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갑자기 공포가 사라져 버렸다. 복도는 완전히 비어 있었다. 
P. 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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