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에 대한 자성(磁性)론]

 

 

오늘은 어쩌면, 님들께 부탁을 드리는 장이 되지 싶다. 오래도록 많은 글을 준비하면서도 뭔가 해결하지 않고서는 진행되지 않겠다는 느낌을 받았다. 일견 그게 다행이기도 하다. 눈치채지 못한 채 지나쳤으면 어찌할 뻔했는가. 난 여전히 허공에다 대고 무익한 고함을 치는 꼴이 될 뻔하지 않았나.
그리고 또 아주 조심스럽기도 하다. 부탁이라고 하지만, 어쩌면 나 스스로 교만에 가득 찬 이야기일지도 모르는 까닭이다. 이전에 둘러 둘러 조심스럽게 표현하였지만, 너무 둘러 표현한 까닭에 다들 눈치채지 못한 듯한 걱정도 있다. 그래서 아주 단도직입적으로 제시하려고 하는데, 그게 듣는 사람도 불편하겠지만, 사실 꺼내는 내게도 불편하다.


아무튼 지금까지 거론한 이야기는 대략 다음 정도가 되지 싶다. 비록 표현법이야 달라도 의미는 통한다.

(1) 부에 대한 야성론
(2) 부에 대한 사랑론 (이부 분은 아직 미완. 너무 깊은 주제라 한계를 절감하는 중)
그리고 이제 언급할 (3) 부에 대한 자성(磁性)론

 

 

[당신이 부에 대한 자성을 가져야 한다.]

세상에 돈은 흘러 다닌다. 내게 있었다가 또 다른 사람에게 가기도 한다. 돈은 언제나 내 곁에 흘러 다닌다. 문제는 내게 그 돈에 대한 자성이 있느냐 하는 점이다. 돈에 대한 자성이 강할수록 많은 돈이 내게 붙어 있게 된다.
당신은 어떤가. 돈에 대한 자성을 가졌는가. 나를 치고 지나는 돈이 얼마나 많은가. 그 돈 가운데 일부분만이라도 내게 붙어 있다면 될 텐데, 그 돈들이 나를 치며 지나치고 만 것이 문제다.

돈에 대한 자성, 다른 말로는 돈을 컨트롤 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말 할 수도 있겠다. 당신에게 돈에 대한 자성이 없다면, 돈은 당신을 부딪치더라도 당신에게 붙어있지를 못한 채 당신을 지나치고 만다. 설사 로또에 당첨되더라도 그 돈이 당신 것이 되지 못한다. 그 돈은 당신을 치고 지나쳐버린다. 그것도 그냥 지나치는 것이 아니라, 돈이 많으면 많을수록, 당신을 아주 황폐하게 만들고 지나쳐버린다.

무엇보다도 먼저 당신은 먼저 돈에 대한 자성을 길러야 한다.

언젠가는 투자클럽도 만들어야지 하는 생각도 하고 있다. 하지만, 동일한 맥락이다. 돈에 대해 나만큼 알지 못하다면, 그 투자클럽을 내가 전횡하고 따로 유용하더라도 당신이 제재할 수 있겠는가. 알아차리기나 하겠는가. 민주주의는 모든 사람이 일정 수준 이상의 교육을 받고서야 온전해진다고 들었다. 투자클럽을 운영할 때도 그러하다. 특정 한 사람의 전횡을 막기 위해서는 그 참가자 모두가 일정 수준 이상의 부에 대한 식견을 갖추고 난 뒤라야 한다. (물론, 내가 그 돈을 전횡하고자 한다면, 나 이외의 대다수가 돈에 무지하기를 바라겠지만.)

 

 

[어떻게 자성을 가질 것인가]

(1) 먼저 당신이 철이 되어야 한다.

어쩌면 다른 말로 한다면, 배우려는 자세라고 말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배우려는 자세. 한껏 자신을 낮추려는 자세.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려는 자세. 아직 당신에게 자성을 갖지는 못했지만, 언제든 자기력을 내뿜는 사람이 곁에 온다면, 즉각 반응할 수 있는 그 자세.
더 상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보강하려고 한다. 우선은 그 하나만.

 

(2) 자성을 가진 사람 곁에 되도록 가까이 가는 것이다.

주위에 성공자를 가까이 둘 수만 있다면 그들의 곁에 다가가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일전에 모시고 있는 사장님이 있다. 전형적인 자수성가한 분인데, 아주 카리스마가 대단했다. 많은 직원들이 그분을 대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가까이 있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린다는 사람이 많았다. 그래서 그분이 출근하지 않는 날이면 전 직원이 마음이 한껏 풀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어쩐지 내게는, 그 분이 출근하지 않는 날이면 하루 손해보는 느낌이 들었다. 이 직장을 다니면서 가장 큰 수익은 저 성공자의 말과 행동을 보고 느끼는 것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그가 출근하지 않는다니? 손해 아닌가. 실제로 그분의 말씀 하나 하나가 내게는 너무 달콤해서, 다이어리에 일일이 기억을 더듬어 가며 적어두기도 했다.

그런 나를 두고, 주위 사람들은 새디스트와 매조키스트가 잘도 만났네, 라고 빈정대곤 했지만, 아무튼 내게 그분은 아주 강한 자기력을 뿜어내는 사람이었다. 난 그분의 자기력을 받아들이며 더욱 큰 자기력을 갖게 된 것은 분명하다.

 

(3) 자성을 가진 사람이 쓴 책을 가까이 하는 것이다.

성공자를 만날 수 없다면, 그런 사람들이 쓴 책을 늘 곁에 두는 것이 한 방법이다.
아마 대개의 성공학서적들이 대개가 다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당신이 그 글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까닭일 수도 있다. 지나치게 요약정리하려는 습성이 반영된 까닭일 수 있다.
이해하지 못한 채 요약하자니, 읽으면서 놓치는 부분은 영영 알아차리지 못하고, 아는 부분만 걸러진다. 아는 부분이 늘 같은 까닭이다.

하지만 우선은 먼저 당신은 철이 되어야 한다. 철이 되지 않는다면 자성을 가진 사람을 만난들, 책을 읽는들 유익할 게 없다.

 

 


[사람들은 오해한다- 다양한 차원으로]

처음 글을 올릴 때 반응이나, 이제 와서 인터뷰를 하는 사람들의 반응이나 비슷한 게 하나 있다.

"그래, 다 좋은 소리인데, 그렇게 뜬구름 잡는 이야기말고, 구체적인 이야기를 해줘."

실제로, 아쉬웠던 것도, 얼마를 들어 얼마를 벌었다는 식의 글에 대해 더 많은 조회수를 기록하는 것이다. 그런 이야기에는 내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없다. 내가 이런 글을 쓸 자격이 되는가에 대한 증명으로 삼을 뿐이지, 정작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없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런 류에 집중한다.

그런데 구체적인 이야기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는가. 나 또한 매번 동일한 사례를 경험하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그 이야기를 해준다는 말인가. 해 줄 수는 있다. 그게 가능하기나 한 일인가.
사실, 구체적인 이야기는 브로커들을 찾아가면 아주 상세하게 잘 알려준다. 그들에게는 아주 명쾌한 정보도 있고 아주 명쾌한 테크닉도 있다. 그들을 만나면 어서 빨리 하지 않으면 놓칠 것 같은 기회도 부지기수로 많다. 구체적인 것을 원한다면 나를 찾을 게 아니라 브로커를 찾는 게 빠르다. 하지만, 브로커들은 당신을 걱정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에만 집중한다는 사실을.

 


[오해하게 되는 이유 중 하나 - 지금껏 잘못된 교육을 받았다?]

당신에게 말하고 싶은 것.
그것은 당신이 나와 같은 관점을 가지기 바란다. 내가 세상을 잘 알고 있다는 뜻도 아니고, 바람직한 모습을 갖추고 있다는 뜻도 아니다. 단지, 재정면에서 만큼은 (또 내가 가진 생각이 틀렸다는 것이 증명되기 전에는) 나와 같은 시각을 갖는 것이 유리할 것이다. 내가 발견한 기회를 당신이 그대로 본다면 좋겠다. 내 눈에 드러난 위험한 요소를 당신이 그대로 볼 수 있다면 좋겠다. 그렇게 내가 가지 않는 길에 당신이 나서지 않기를, 내가 가는 길에 당신 역시 동참할 수 있기를 바란다.

어쩌면 익숙하지 않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단 한 번도 "꿈을 크게 가져라" 는 말을 들어보지 못하고 살아온 까닭이다. 꿈을 갖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모르는 세대로부터 교육을 받아왔고 그들에게 길들여진 까닭이다.
삶에 대한 반듯한 자세가 인격적으로 유익한 것이지 그 자체가 바로 내게 돈을 끌어들이는 힘이 된다는 것 역시 누구에게 들은바 없다.
뭔가 남들이 알지 못하는 유착관계나 은밀한 거래가 돈을 번다고 들어왔던 까닭이다.


한 교사로부터 그런 이야기를 듣고 몸에 전율이 흘렀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옮기면서 내내 전율이 흘렀다.
"꿈이 없는 교사가 꿈이 없는 학생을 만들어내고 있다."

자신의 삶에 대한 당당함이 부족하고, 자신의 삶에 대해 더 이상 꿈꾸지 않는 교사가 학생들도 자신과 같은 부류로 만들어버린다는 말이다.
핑계를 대려는 것은 아니지만, 돌이켜 보면 내게도 그러했다. 아주 불쾌한 기억뿐만 아니라,
한참동안 세상에 대해 오판하게 만들었던 소위 개똥철학에 얼마나 오래도록 매달려 있었던가. 기억나는 부분이 상당할진대, 기억조차 나지 않고 무의식의 깊은 곳으로 침잠해 들어간 부분은 또 얼마나 많을 것인가.

익숙하지 않은 것은 불편한 법이다. 익숙하지 않은 것은 어쩐지 잘못된 듯한 법이다.
재정 교육이라 하면, 어떻게 하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지에 대한 테크닉을 공부하는 곳이라는 인식이 익숙한 것이다. 재정교육에 진지하게 부에 대한 갈망을 가져라는 말은 아주 낯선 이야기이다.

 

 

[오해의 실례 하나]

그래서 일까, 내 글을 보면서 내 글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또 오해한다. 내 글을 나름대로 판단하고 요약 정리하는 것이, "뼈를 깎는 절약을 실천하고 --> 종자돈을 만들고 --> 투자하라" 이렇게 정리가 되는가?
그런 정리를 보면서 난 한참동안 절망한다. 그들은 이미 나 이전의 사람들이 주입한 논리에 나를 꿰어 맞추려는 것이다. 정말, 묻고 싶다. 그런 논리를 만든 사람은 돈을 벌었는지? 그 논리를 만든 사람이 그 책을 통해, 또는 강연을 통해 돈을 번 거 말고, 그 이전에 돈을 벌었는지? (물론 이런 말을 하기에 나 역시 초라하고 부끄럽다. 고작, 얼마를 가졌다고.)

물론 내가 썼던 글 속에 그런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틀렸다는 말도 아니다.
하지만 그 사람은 또 놓치는 것이 있다. 내 글을 좋아해 주어 고맙기는 하지만, 그는 또 내가 말하고자 하는 요지를 놓치고 있다.

말주변이 없고 필력이 딸리는 탓에 한 마디로 요약해서 정리하는 법을 모른다. 하지만, 지금에서 보니 그런 요약정리에 익숙한 것 역시 꼭 좋은 것은 아니지 싶다.

실례로 한 가지만 말하고 싶다.
물론, 절약을 실천하여 종자돈을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그게 문제의 핵심이 아니다.
핵심은 비슷한 듯 하지만 아주 다르다. 이 차이가 분명하게 보이지 않는다면, 당신은 내 이야기를 여전히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 내가 글을 잘못 쓰고 있음을 용서해주기를 바란다.)

절약을 하지 않는 사람이 부자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투자할 종자돈이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이 아니다. 절약을 하지 않는 사람이 부자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그 속에 부자가 되고 싶은 마음이 없다는 사실에 대한 증명이기 때문이다.

부자가 되고 싶은 사람이 절약을 실천하지 않을 것인가. 부자가 되기를 간절하게 원하는 사람이 공부하지 않을 것인가. 부자가 되고 싶은 사람이 시간을 낭비할 것인가.
절약을 하지 않는 것은, 그 사람의 마음 속에 처음부터 부에 대한 소원함이 없기에, 그 사람은 절대 부자가 될 수 없다는 뜻이다. 종자돈이 만들어지고 아니고는 그 다음 문제이다. 절약하다가 사고나 실수로 그 종자돈을 잃어버렸을 때 그는 절망할 것인가. 종자돈만이 목적이었다면, 그는 분명 절망할 것이다. 하지만, 그 속에 여전히 인생에 대한 사랑과 삶에 대한 야성을 지니고 있다면, 그 종자돈의 유무와는 무관하게 돈을 벌 것이다.
그 차이는 아주 크다. 아주 비슷한 듯 하지만, 그 내용상 차이는 아주 크다.

허튼 구호는 무익하다. 무엇을 해라. 무엇을 해라. 무엇을 해라.
그 말이 허튼 구호에 머무른다면 아무 것도 안 된다.

나는 누누이 이야기한다. 부에 대한 이중성을 깨트리고(적어도 이 카페를 찾아오는 님들은 이 부분은 이미 된 듯 하다.), 진지하게 부를 갈망해라고. 이것이 최초의 걸음이다. 진지하게 부를 갈망할 것. 절약이 문제가 아니다. "그래, 주식은 하지말고 부동산으로 돈을 벌어라 이거 아냐?", 이런 식으로 지나치게 단순화시키지 않았으면 좋겠다.
결국, 자산이라는 것이 동산 아니면 부동산인데, 어떻게 그렇게 간단하게 요약하고 마는가? 부동산은 어디 한 종류만 있다던가. 부동산 투자법은 어디 하나 뿐이던가.

 

 

[님들에게 드리는 제안 또는 부탁]

누구든 자신에 대해서는 과대평가하는 면이 있다. 이 글을 쓰면서 나 역시 그런 오류에 빠지지 않을까 아주 자주 돌아보곤 한다. 하지만 또 한 가지. 마음을 아주 낮추고 나를 대하지 않는다면 내게서 얻을 것은 없다. (그래서 책에서도 앞 단원에, 피터 린치와 워렌 버펫에 대해서 언급했다. 내가 스스로 내 말을 귀담아 들어달라고 말할 수 없었던 까닭에 그렇게 둘러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또, 바로 이점이 내가 가까운 사람에게 재정과 관련된 말을 꺼내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가까운 사람들은 내 옛 모습을 아는 까닭에 아주 높은 마음의 벽을 쌓아두고서 나를 대한다. 약점 많고 흠 많은 나에게서 무슨 유익한 말이 나올까 아주 쉽게 판단해 버린다.
그렇게 판단을 내리고 나면, 내게서 얻을 것이 없다. 내가 아무리 부어주고 싶어도, 그가 만들어 놓은 벽에 부딪쳐 모두 밖으로 쏟아지고 만다.
책을 썼다는 사실도, 부모 형제에게도 알리지 않았고 친척에게도 친구들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뒤늦게-어제서야- 알린 사람 몇 있다.) 내 글이 나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유익할 수 있겠지만, 나를 아는 사람에게는 전혀 영향력을 미치지 못할 것을 아는 까닭이다.

한계다. 한계를 절감한다. 내 속에 가득한 것을 꺼집어내는 법에 서투르다. 어쩌면 내 속에도 아주 명확하게 정리가 되지 않은 까닭은 아닐까 하고 의심해 본다. 아직 정리가 되지 않았으면서 그걸 꺼집어내어 다른 사람들에게 내보이는 것이 또 기만이 아닌가, 하고 스스로 질문해 본다.

어쩌면, 아주 쉽고 간단하게 요약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쓰는 글이나 하는 말이 매번 비슷하게만 들리겠다.
왜?
명확하게 잡히지 않는 부분은 그냥 흘려버리기 때문이다. 아는 부분만 들리기 때문이다.

"그래, 결국 공부하라는 말이냐."
"그래, 결국 절약하라는 말이냐."

그렇다. 별반 새로울 것 없다. 그래서 글쓰기가 부쩍 힘들어졌는지도 모른다.

제안하고 싶다. (일견, 부탁이기도 하다.)
마음을 한껏 낮추고 나를 받아들여 줄 것. 그래서 나의 모든 것을 마치 스폰지처럼 쫘악~ 빨아들여 줄 것. 지나치게 요약하지 말고.
당신은 내가 갖지 못한 아주 특별하고 대단한 재능을 가졌을 수도 있지만, 내가 쓴 문장 하나 하나 흘려 듣지 말아 주었으면 좋겠다. 나 또한 문장 하나를 써놓고 이렇게 표현하는 게 더 정확할까, 저렇게 표현하는 게 더 정확할까 고심하면서 꼭 집어내지 못해 매번 안타까워하는데, 그걸 아주 간단하게 표현하게 되면 아마 그 사이에 중요한 것이 생략되어 버릴 것이다. 말이란 아주 미묘해서 요약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행간의 의미도 요약하는 순간 사라지고 만다.

그래서, 비록 비슷한 말처럼 여겨질지라도, 계속 접하면서 내게 조금씩 조금씩 물들어 가기를.
물론, 내가 인생을 잘 살고 있다는 말은 아니다. 나 역시 고백하건데, 여전히 길찾기를 하고 있는 길 잃은 양에 불과하다. 하지만, 적어도 재정면 만큼은 아직까지는 나를 의지해 보는 것은 어떨까. 자신의 모든 가치기준을 무시하라는 말은 아니다. 그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당신이 마음을 여는 만큼, 같은 말도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법이다.

그렇게 당신이 내게 붙어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자석에 붙어있는 바늘처럼) 내게 있는 자성을 그대로 띄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내게서 완전히 떨어져나간다 하더라도 독자적으로 자력을 내뿜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한들, 내게 자성이 약해질까? 아니다. 함께 자성을 띄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난 더욱 자성을 보존하기에 유익하다.

 

하기는,
나를 쉽게 판단하는 것은 어쩌면, 당신 역시 자성을 지닌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쉽게 붙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나와 아귀가 맞아 더욱 강하게 붙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나를 밀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는 내가 가진 그 기운을 전할 수 없다. 당신이 나를 불편해하듯, 나 역시 당신을 불편해 한다. 우리 둘 중 어느 누군가 자신의 자성을 버려야 한다.

 

오늘의 글은 상당히 불쾌할 수 있을 듯 하여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님들의 관대한 마음에 의지해 본다.

 

죠수아
건강과 웃음/ 순수와 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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