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일간지를 보니 교육인적자원부가 '교원 양성체제 개편 종합방안'을 내놓았다고 한다. 교사의 자질과 능력을 높이기 위해 특단의 대책을 내놓은 거이라 하는데, 그들의 견해에 따르면, 지금의 교원자격 취득을 위한 교육과정 및 자격검정 기준이 너무 느슨하고 교원양성기관 또한 별도 운영기준 없이 방만하게 운영되고 있어 이를 고치기 위한 것이라 한다.

교사가 되기 위해서는 교생실습기간을 중등교육 4주에서 8주로, 초등교육은 8-11주에서 15주 이상으로 늘린다고 한다. 또, 시도교육청에 '교육실습지원센터'를 설치해 초중고와 연계해 지원하고, 실습지도 교사에게는 승진 가산점을 부여하기로 했단다. 사대는 최근 4년간 임용률이 10%미만일 경우 비사범계 학과 전환을 유도하고 교사자격 기준에 미달하는 학생은 졸업 시키되 자격증을 주지 않기로 했단다. 또 교사 선발 기준은 면점과 실기위주로 변경된다. 2008년도 임용시험부터 지필고사를 35%로 낮추고, 심층면접과 실기능력 위주로 뽑는단다.

가장 민감한 사안인 교사자격증 수여조건을 보자면, 현재 일반대에서도 교직과정을 이수한 뒤 평균 80점이상이 되고, 일정 필수 과목을 이수했다면 교사 자격증을 주고 있으며, 사범대 또한 성적에 관계없이 졸업학점만 따면 교사자격을 부여하고 있다. 그리고 일반대를 졸업하고 교육대학원에 진학하면 교사자격증을 부여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제는 사범대라 할지라도 평균학점 C미만이거나 실습성적이 B미만이면 자격을 주지 않으며, 일반대의 경우에는 교직과목이수 20학점에서 33학점으로 늘린다고 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크게 문제 없어 보인다. 교총과 전교조의 반응과도 같이 방향은 맞아보이는데 내용이 부실하다. 그런데 교사의 실질적인 질을 높이기 위한 이러한 시도들이 뭔가 하나를 빼놓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교사의 교육관과 교육학에 대한 기초지식, 그리고 실습이 중요하긴 하지만, 여기에 한가지 빠진 것이 있다면 전공에 대한 심도있는 지식이다. 자신이 가르칠 과목에 대해서 깊이있는 지식을 가지고 있는가를 고려하는 항목은 빠져있다. 오히려 임용시험에서 전공의 비중이 줄어듦으로써 전공을 소홀히 할 가능성마저 엿보인다.

대학원 입학 시험을 치루는데 한 초등학교 교사가 함께 응시했다. 그런데 그가 하는 말이 "'교대'나왔더니 배운 건 없고 머리에 똥만차서 머리 좀 채워보려고 왔다" 라고 했다. 초등교사가 되기 위한 교대의 교과과정들이 현장에서 가르칠 만한 뭔가를 배우기에는 부족함이 없어보이지만 교사를 빈 깡통으로 만들어버림으로써 자기발전에 소홀히 해버리는 경향이 없지 않다. 물론 개개인에 따라서 스스로 알아서 학습을 할 수는 있겠지만, 학문적인 성과를 기대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사범대는 교대와는 좀 다르지만, 이 역시 중고등학교에서 가르치는 내용에 한하여 일반대의 전공학과보다 수박겉핥기식의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고 본다.

내가 말하고픈 것은 그것이다. 물론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가르치면서 대단한 학문적인 내용을 다루는 것은 아니지만 단지 가르칠 내용만을 알고 있는 것은 가르치는 교사로서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윤리학을 가르친다 그러면 교과서에는 공자는 뭐라 했다, 플라톤은 뭐라 했다 정도의 기술만 되어있고, 물론 그것만 가르쳐도 무방하다. 하지만 하나하나의 개별적인 내용들에 대한 심도있는 지식을 가지고 있다면 가르침에 깊이가 생길 것이라고 본다. 교사는 단지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다. 스스로 연구하고 끊임없는 공부를 해야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현재의 교대와 사범대의 과정이나 개편안의 내용에서 볼 때 이 점이 무시되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러면서 일반대에서 깊이있는 배움을 한 이들에게 교사자격증 부여하기를 꺼려한다면 이는 잘못이다. 20학점에서 33학점 이수해야 준다는 것은 사실상 일반대의 교직이수자들의 발을 묶어놓은 것이 아닌가 한다. 물론 대학에서 대처해서 33학점 이수할 수 있도록 조치한다면 그저 말없이 따르겠다. 더 배우는 것은 문제삼을 바가 아니니까. 하지만 이러한 일련의 조처들이 일반대생의 교직진출을 막는 행위라면 이를 묵과 할 수는 없다.

이들은 그 누구보다 전공에 대해 깊이있게 배운 이들이기 때문이다. 단지 이들에게 문제가 있다면 가르침에 대한 지식인데, 이는 교육대학원을 통해 공부할 수 있다. 좀더 나은 방향으로 개편안을 잡자면 일반대의 교직이수자들을 대상으로 '교육학'에 대한 좀더 다양한 과정을 보충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전공을 깊이있게 공부한 이들이 교육학도 더불어 익힌다면 실습이전에는 가장 바람직한 교사준비생이 되어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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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지도 - 동양과 서양, 세상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선
리처드 니스벳 지음, 최인철 옮김 / 김영사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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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간지 서평란에 소개된 글을 보고 점찍어놨다 구입하게 된 책이다. 구입한지는 한달도 더 됐지만 이제서야 보게됐다.

 실제 <생각의 지도>라는 이 책의 제목은 그럴 듯한 대단한 뭔가를 담고 있지는 않다. 마치 동양과 서양의 사고방식을 꿰뚫는 어떤 성찰을 담아내고 있을 것 같은 책의 제목은, 그러나 사실상 책을 열어보면 그다지 기대했던 바에 못미침을 알게 된다. 한마디로 책에 실망했다. 그것은 책 제목을 통한 나의 기대감이 너무나 컸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 책이 '나쁜 책'이라는 말은 아니다. 단지 나의 기대에 못미쳤다는 것 뿐이다.

 <생각의 지도>는 미국의 심리학자인 리처드 니스벳이 쓰고, 그의 제자인 서울대 심리학과 최인철 교수가 번역했다. 아무래도 저자의 밑에서 공부한 사람의 번역이라 저자를 오해했을 가능성이 없다는 점에는 안심해도 좋다. 대개의 '번역'이란 저자의 실제 의도와 번역자의 해석간의 차이를 항상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 간극을 줄여 저자의 말을 효과적으로 독자에게 전달했다면 잘된 번역이지만, 간극을 좁히지 못했다면 좋은 번역이라 할 수 없다. 일단 번역은 믿고 가자.

 동양의 사고 방식과 서양의 사고 방식. 저자는 책의 서문에서 그리 말한다. 다른 이들은 모두가 누가 알려준 것은 아니지만 동양과 서양의 사고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고 대강의 차이점을 감지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가 하는 바에 대해서는 명확하지 않은 채 어떤 '감'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저자와 그의 연구진들은 이러한 차이를 구체적이고 객관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각종 실험을 한다. 그리고 실험결과를 통해 동서양의 사고방식의 차이를 도출한다.

 동양과 서양의 사고방식의 기준은 문명과 문화다. 사고방식이라는 것은 각기 그 사람이 발붙여 사는 땅의 문명과 문화에 기반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한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살고 있는 사람, 혹은 애초 미국에서 태어나 계속 미국에서 살고 있는 한국인의 경우에는 동서양의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서양의 문명이라는 것은 고대 그리스 아테네에서 시작되며, 동양은 중국에서 시작된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어떤 단체와 조직보다 개인의 행복에 사람들의 관심이 모아졌으며, 따라서 어떻게 하면 행복한 삶을 살 것인가에 대한 연구를 했다. 그리고 행복이란 '아무런 제약이 없는 상태에서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며 탁월성을 추구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리스 인들은 자신의 능력을 발휘해 탁월성에 도달하고자 했다. 

  반면, 동양의 문명의 시점인 중국에서는 '행복'이란 '화목한 인간관계를 맺고 평범하게 사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들은 개인의 탁월성을 추구하기보다는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속에서의 우애와 관계를 중시했고 튀지 않는 행동을 하려고 노력했다.

  이로부터 서양에서의 권리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할 수 있는 권 리'이지만, 동양에서으 권리는 '공동체 전체의 권리 중 자신의 몫을 담당하는 것'이라는 개념이 확립된다.

 대략적인 동서양의 차이점을 말해보자면 이렇다.

 동양인은 사물을 볼 때 전체 속에서 조화를 중시하며, 서양인은 각 사물의 개별성을 중시한다. 따라서 어떤 풍경을 보여줬을 때 동양인은  풍경의 전체적인 구성을 쉽게 기억하지만 서양인은 특별한 사물 하나에 집착한다.

 또, 교실에서 동양에서는 '왜'라는 질문보다 '어떻게'라는 질문이 더 많이 오가며, 서양에서는 '어떻게'라는 질문보다 '왜'라는 질문이 더 많이 오간다. 이는 서양인들이 사건을 인과관계에서 보기 때문이다. 목표지향적 사고를 하는 이들에게는 결과의 원인이 무엇인가에 초점이 맞추어진다. 반면에 동양에서는 사건속의 인물과 사건정황과의 관계적 맥락을 중시하기에 그러한 사건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에 관심을 가진다고 한다.

  이 책에서는 이외에도 수없이 많은 실생활의 부분의 경험을 통해 동서양의 차이를 도출해내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동양인은 꼭 그러한 사고를 하고, 서양인은 꼭 이러한 사고를 한다, 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단지 동서양인의 '경향성'을 도출한 것이지 어떤 특정 개인의 성향을 가리킨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동양인이면서 서양인보다 더 서양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렇기에 이 책의 결과를 통해 나는 동양인이니까 이런 거구나 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한가지 덧붙이지만 저자 역시 책 뒤에서 잠깐 언급하고 있기는 하지만, 섀뮤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과 프란시스 후쿠야마의 <문명의 종말>과 함께 읽으면 동서양의 문화적 차이를 세계정세와 연관지어 보는 시각이 생길 수도 있겠다. 더불어 내가 한가지 더 추천하고자 한다면, 나 역시 읽지 않은 책이지만 하랄드 뮐러의 <문명의 공존>도 함께 읽으면 <문명의 충돌>에 맞서는 다른 견해를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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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엇? 지킬박사 하네? 하고 케이블 티비를 한동안 응시하고 있었는데 이상하다. 내가 알고 있던 영화랑 틀린 것이다. 제목만 같고 내용은 다른 하지만 역시 이 영화에서도 지킬박사는 등장하는 홍콩액션영화였다. 하필 제목을 똑같이 할 건 뭐람 하면서 계속 보긴 했지만, 그래도 원작을 보지 못한 아쉬움만 커졌다.

 이 홍콩액션영화에서의 지킬박사는 아내와 함께 홍콩에 신혼여행을 왔다가 홍콩 갱단에게 장기를 빼앗기고 죽음을 당한다. 하지만 관광가이드를 가장한 한의사이자 무술가인 할아비의 도움으로 지킬박사만 살아나고 폭발로 손상된 얼굴을 새로이 성형해 다른 사람으로 태어나게 만든다. 지킬은 할아비에게 한의학과 무술을 배우면서 복수를 하게 되는데...

 그런데 홍콩에 전설로만 알려졌던 미국의 배트맨이나 슈퍼맨과 같은 정의의 사도인 '호랑이'가 할아비였던 것이고, 이후의 호랑이는 바로 지킬이었던 것이다. 지킬은 그렇게 복수를 함과 동시에 홍콩의 호랑이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그다지 별 볼 것 없는 액션영화이고, 본래의 <지킬 박사와 하이드> 영화에서의 그런 이중적인 인간상을 보여주기보다는 오락적인 액션에 치중함으로써 단지 유명 영화의 제목을 따왔다는 인상을 풍기기만 했다. 그냥 오락용 영화로 애써 찾아보진 않아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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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졸업하기 위해서는 대학 4년동안 배운 바를 토대로 논문을 써서 제출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졸업과정이다. 그리고 이는 어찌보면 당연하다. 그런데 최근 경기침체, 취업률 하락과 관련해 취업을 위해서는 어차피 공부해야할 영어를 학사 학위 취득의 필수조건으로 논문 대신 걸고 있는 대학들이 많아졌다.

학과의 특성상, 논문을 내지 않더라도 작품발표나 실습보고 등으로도 졸업자격조건으로 내거는 것은 어색하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오로지 졸업을 위해 영어점수만을 요구하고 있는 지금의 현실은 잘못되었지 싶다. 취업안되고, 어차피 취업을 위해 공부해야할 영어를 학생들의 편의를 봐준다는 핑계로 대신한 것인데, 이는 대학의 설립이유에도 맞지 않는다.

대학은 학문을 하는 곳이다 라는 구태의연한 문구를 반복 사용하며 강조해야 하는 이유는 대학이 학문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다니는 대학의 전공교수님의 말은 이와 관련해 생각해볼 수 있다.

"요즘 대학원생들은 대학원생 같지가 않아. 우리때는 말이야. 순전히 학문하겠다는 목적으로 대학원을 진학했는데, 요즘 대학원생들은 그저 어떻게 하면 취업 잘해볼까 하는 마음에 진학하는 거 같애. 오히려 대학원생들이 학부생들보다 더 공부안해"

취업이 중요하긴 하다. 자기자신의 생존의 문제가 달린 것이므로. 그래서 난 취업을 위해 대학원에 진학하고, 취업을 위해 학과공부보다 영어공부에 몰두하는 이들을 비판하고 싶지는 않다. 단지 그렇게 만들어버린 우리사회가 문제있음을 지적하고 싶을 뿐이다.

한국대학신문의 논설위원 김우종씨는 "한국형 학벌주의는 다음 세가지이다. 동문끼리만의 배타적 파벌주의, 그리고 수능고사 성적표가 만들어 내는 대학 서열주의, 그리고 학문적 지위에 의한 권위주의 등 세가지가 모두 학벌주의에 해당된다. 이 중 앞의 두 가지가 저지르는 횡포는 흔히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세번째 학벌주의가 지니는 횡포에 대해서는 별로 눈여겨 보지 않는 것 같다." 라고 말하면서, 최근에 학벌을 지닌 이들이 자신이 있어야 할 위치에 있지 않고 자꾸만 그들보다 못한 학벌을 지닌 이들이 가져야 할 파이를 떼어먹고 있음을 지적한다.

예를 들자면, 예전같으면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들이 은행창구업무를 맡았는데 요즘은 괜찮은 4년제 대학을 나온 사람이 그 일을 하고 있고, 9급 공무원도 고졸출신들이 했는데 요즘은 4년제 대학 출신들이 가져가고 있으며, 심지어는 청소부를 모집하는데 박사출신들이 몰려들기도 한다.

공부한 사람들은 자신이 그만큼 공부한 것을 사회에 써먹을 수 있는 위치에 있어야 하는데 제 위치를 찾지 못하고 자꾸만 다른 사람들이 먹을 파이를 가져간다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예들은 모두 오로지 '취업'에 촛점이 맞추어져 있다. 취업하기 위해 대학에 가고, 취업하기 위해 석사를 따며, 박사를 딴다. 그리고는 자신의 학위와 상관없는 다른 일을 한다. 이는 국가적인 손실이다. 유능한 인재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는 현실은 확실히 잘못됐다. 문제는 어디에 있는가?

이 역시 학벌주의에 있다. 은행 창구직원을 뽑는데 대학 출신이 오면 뽑지 말아야한다. 그리고 9급 공무원 뽑는데 대학 출신이 오면 뽑지 말아야 한다. 청소부하는데 박사가 오면 뽑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그들이 취업을 하기 위해 대학에 가고, 석사, 박사를 따는 현상이 벌어지지 않는다. 사회의 각 위치에서 꼭 필요한 능력을 가진 사람만을 뽑는다면 '학벌주의의 폭력'은 생기지 않는다. 지금의 현실은 모든 것이 학벌로 이뤄지는 사회시스템이 문제인 것이다.

모두 대학갈 필요없다. 은행 창구직원 하려고 대학 갈 필요 없다. 창구직은 필요한 능력을 갖춘 상업고등학교 출신들에게 넘겨주자. 그리고 당신이 창구직원을 하고 싶거든 대학가지마라. 상업고등학교 나와라. 그리고 인재를 채용하는 권한을 가진 자들은 업무에 비해 과도한 능력을 가진 자를 오히려 서류전형에서 제외시켜야 할 것이다. 그래서 쓸데없이 대학에서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4년동안 교수는 교수대로, 학생은 학생대로 서로 딴 짓을 하고 있으니 이 어찌 국가적인 낭비가 아니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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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윤리학사
로버트 L. 애링턴 지음, 김성호 옮김 / 서광사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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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의 한 부분인 윤리학만을 따로 떼어놓아 볼 수 있는 개론서는 없을까, 라는 생각을 하는 분께 추천할 만한 '딱'인 책이다. 제목과도 같이 이 책은 '서양윤리학사'를 다루고 있다.

 조지아 주립대학에서 교수로 지내고 있다는 에링턴의 저서로, 윤리학 분야에 대해서는 많은 책을 남겼다고 한다. 또한 현재(이 현재가 어느 시점인지는 모르겠다) 20세기 윤리학에 대한 방대한 저술을 준비중이라니 사뭇 기대된다.

 이 책의 옮긴이 김성호는 익히 철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그의 이름 석자정도는 접해봤을 만하다. 그가 어떤 철학이론에 대해서 대가라서가 아니라 우리가 흔히 철학사를 배울 때 쓰고 있는 교재인 코플스톤의 <합리론>의 옮긴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는 어느 대학에서 교수자리를 쥐고 있지는 않지만 활발한 철학 번역 활동으로 철학 학부생에게도 이름이 잘 알려져 있다. 이 역시 기반을 확립하지 못한 철학 연구자가 자신의 이름을 빛내는 또다른 방법이라 생각한다. 그가 이를 의도했건 하지 않았건 간에 말이다. 또 의도했다 하더라도 외국의 좋은 철학서를 번역한다는 작업은 고되고 돈도 안되는 일이기에 그에게 더욱 힘내라 말하고 싶다.

 서론이 길었다. 본 책은 아무래도 국내에서는 딱히 다른 경쟁적인 윤리학사를 다룬 철학서가 없는 마당에 독보적인 윤리학 개론서로 읽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이 책은 매우 두껍고, 각각의 철학자들에 대해서 세심하게 다루고 있기 때문에 초보자가 처음부터 이 책을 접한다면 질려버리고 말것이다. 하지만 어느정도 윤리학사, 철학사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이 깔려있는 독자에게라면 그의 지식을 더욱 깊이있게 만들기에 적합한 책이라 생각된다.

 소크라테스는 물론이고 소피스트까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스토아학파와 에피쿠로스학파, 그리고 중세의 윤리설, 홉스, 스피노자, 버틀러, 흄, 칸트, 헤겔, 니체, 20세기의 윤리학이라는 많은 목록을 지니고 있고, 더불어 더 읽어야 할 책을 소개함으로써 윤리학에 있어서는 자기 할일을 다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그 더 읽어야 할 책이 에링턴이 만든 목차 뿐 아니라 옮긴이가 현재 번역되어 있는 철학서 중에서 추천한 더 읽어야 할 책이 함께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여기에 나와있는 '더 읽어야 할 책'은 모두 영어원서이기 때문이다.

 지은이가 이 책에서 각각의 철학자들의 윤리학부분을 엮어내면서 아무래도 해당 철학자의 윤리학 저서를 기본으로 하고 이를 풀어내는 형식으로 책을 만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해당 철학자의 윤리학 이론을 소개하면서 그와 반대되는 철학자의 비판과 문제점 모색, 반론 등을 함께 다루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윤리학 저서를 풀어냄으로써 한눈에 알아보기 힘들게 엮여져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는 물론 내가 철학사를 한 눈에 볼 수 없는 지경이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철학을 수박 겉 핥기 식으로나마 4년간 접했다는 내가 볼 때 그런 느낌을 받았다면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해본다. 그리고 그저 의심으로 끝낸다. 나의 내공의 한계 때문일거라는 스스로의 학문탐독의 소홀함으로 그 이유를 돌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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