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
알랭 드 보통 지음, 이강룡 옮김 / 생각의나무 / 2005년 5월
구판절판


"사려 깊고 충실한 화자를 쓸모 없는 존재로 여기고 그냥 지나쳐버리기 일쑤다. 모든 이들에게는 자신과 똑같은 처지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있으며 자신의 실수, 과오, 회피 그리고 편법을 그들에게 알려주지 않았던가. 쓸모 면에서는 그들이야말로 가장 직접적이면서도 확실한 존재들일 것이다. 사람으로서의 동질성만이 있을 뿐이다. 가식과 혐오를 벗어던지고 생각해보면 좋거나 나쁘거나 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다 평범한 인간일 뿐이다."(새뮤얼 존슨)-22쪽

"기존의 모든 전기는 어린 시절에 대해 이야기할 때 주인공이 어른이 돼 쓴 시나 산문에서 끄집어낸 우화들, 그리고 사랑하는 이모 또는 그 반대의 친척들에 관한 추억,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학교 친구들로부터 얻어낸 에피소드 같은 것으로 치장돼 있다." -35쪽

"일반적인 전기에는 저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저 작가에 의해 기술된 주인공의 삶만이 실려 있을 뿐이다. 우리가 작가에 관해 알고 있는 것은 이름뿐이다." -38쪽

"그와 사회적 관계를 맺고 같이 먹고 마시며 더불어 살아보지 않았다면, 그 누구도 다른 이의 삶을 기술할 수는 없다."(새뮤얼 존슨)-45쪽

"타인에 대한 명료한 첫인상들을 무너뜨리는 것은 결국 무지함이 아닌 앎의 축적이라는 것을, 우리의 선험적 도식들을 지워버리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다른 사람들과 보내는 시간의 길이다."-57쪽

"이미 알고 있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그 이상 알고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걸 의미한다."-58쪽

"전기의 고결함을 유지하는 것과 인간적 집착이라는 원초적인 영역을 서로 뒤섞어서는 안된다. 인간적 집착과 전기적 충동사이에는 연결고리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누군가를 완벽하게 알고 싶다는 충동이다."

"진정한 전기가 되려면 저자와 주인공 사이에 어느 정도 정서적 관계가 있어야 한다." -68쪽

"당신이 주인공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그들을 뒤쫓지 않을 것이다."
(리처드 홈즈)

"전기 작가들은 아주 특별한 방식으로 그들의 주인공들에게 집착한다. 대개 그들은 주인공을 연구 주제로 택하는데, 그건 개인적인 감정의 영역에 기인한다. 처음부터 주인공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프로이트)-68쪽

"음식은 주인공들과 함께 등장한다. 그러나 그들은 음식을 철학적 사유의 재료로 삼지는 않으며, 즐기지도 않고, 그렇게 해야 할 이유가 딱히 없다면 먹지도 않는다. 그들은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배고픔을 느낀다. 그런데도 아침과 점심식사를 끊임없이 갈망하는 우리의 욕구는 작품 속에 반영되지 않는다."(E.M. 포스터)-113쪽

"우리는 사적으로는 중요하게 간주하면서 공적으로는 사소하게 치부해버리는 것들 속에서 한 개인의 본질을 찾는 경향이 있다."-114쪽

"누군가에게 과거를 떠올려보라고 하는 것은 그에게 총을 겨눈 채 재채기를 하라고 윽박지르는 것과 비슷하다. 그들이 떠올리는 것은 자신의 순수한 의지에서 나오는 진정한 기억도 아니다."

"과거 속 기억과의 진정한 충돌은 시간적 거리를 뛰어넘어, 과거 속 장면이 우리 앞에 느닷없이 출현하는 것이다. 이것은 과거 속의 기억이 아니라 시간의 바깥에 있는 어떤 주머니 속에서 막 꺼낸 것 같은 시간이다. 진정한 기억은 자신과 현재 사이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을 녹여버린다."-127쪽

"기억이란 누군가의 질문에 의해 억지로 끌어올려지는 게 아니다. 어느 기차역 카페에서 풍겨오는 샌드위치 냄새를 맡고 비슷한 냄새를 맡았던 오래전으로 돌아가는 우연한 조우 같은 것이다."-128쪽

"기억은 스스로 단계를 밟아나가며 진행되는 것이 아니다. 불친절하게 불쑥 튀어나오고, 어떤 우연한 주제를 여는 서막일 뿐이다. 프라이팬에서 지글거리며 튀겨지는 요리가 아니라 다시 데운 음식이다."-130쪽

"은유적으로 말해서 작가는 주인공과 잠자리를 같이 해야한다. 전기가 격식에 맞춰 작성된 회고록이나 학술 논문과 구분되기를 바란다면 말이다. 전기는 문자로 씌어질 수 없는 생각의 연쇄고리다. 침실의 불빛이 켜져 있는지 꺼져 있는지를 조사해본 다음에야 두 사람이 서로 아는 사이임을 알려주는 행위와는 다른 것이다."-154쪽

"섹스가 친밀함의 상징이기는 하다. 그러나 섹스 자체가 두 사람이 친밀해지는 것을 보장하진 않는다. 오히려 섹스가 상징하고 있는 이상적인 조건을 깨뜨릴 수도 있다.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좀더 험난한 과정을 회피하는 방법으로 누군가와 섹스를 나누는 것은, 마치 책을 사두고 그것을 읽었다고 착각하는 것과 같다."-155쪽

"친밀해지는 것은 유혹과는 정반대의 과정을 거친다. 친밀함을 보인다는 것은 상대방으로부터 비호의적인 판단- 사랑할 가치가 거의 없다고 생각하는 - 이 초래될 수 있는 위험성이 높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혹이 자신의 가장 멋진 모습 또는 가장 매혹적인 정장차림을 보여주는 것 속에서 발견된다면, 친밀함은 가장 상처받기 쉬운 모습 또는 가장 덜 멋진 발톱 속에서 발견된다."-157쪽

"우리는 인간에게 완전히 속한 것은 아닐 것이라고 의심되는 우리 성격의 어떤 측면들을 비밀이라고 부른다. 비밀은 우리가 가진 고유함 중에서 어둡고 창피한 일면이다. 사회적으로 예상될 수 있는 비밀의 효과란 천재나 영웅주의를 만들기 위함이 아니라 사회생활에서 겪게 되는 비난에 대한 두려움, 모욕감을 꿋꿋이 견뎌야 하는 상황 속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164쪽

"죽음은 잠재적 대안들의 적이다. 죽음은, 외부적으로 보면 의미심장한 것들도 내부에서 목격하면 보잘 것 없는 것일 수도 있다는 사실 또는 실제로 벌어진 사건의 수보다 더 많은 플롯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망각하게 한다."-214쪽

"우리는 모두 같은 요인들로 감정이 촉발된다. 모두 같은 오류들을 범하고, 모두가 희망에 의해 생기를 되찾고, 위험에 의해 가로막히고 욕망에 뒤얽히며 환락에 유혹된다."(새뮤얼 존슨)-231쪽

"우리는 다른 사람이 느끼는 것에 관한 즉각적인 경험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생각도 형성할 수 없다. 마치 그들이 느꼈던 것처럼 우리도 느껴야 한다는 인식이 생각에 영향을 주는 것이다. 우리의 형제가 매우 괴로워하고 있다 하더라도 우리가 편안한 상태에 있다면, 우리의 '오감'으로는 그가 겪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건 오로지 상상에 의한 것으로, 그의 감각 작용에 대한 직시만을 형성할 뿐이다. 상상 속에서 우리는 그의 상황에 처하고 그와 똑같은 고통들을 겪고 있다고 인식한다."(애덤스미스 <도덕감정론>)-232쪽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한 타인의 고통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사람의 경험은 모두 다르기 때문에 서로 양립할 수 없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실제의 경험을 알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인접 경험이 항상 존재한다. 우리의 상상이 말라가고 있을 때 은유가 등장한다."-233쪽

"훌륭한 전기를 쓰는 기술이란 멈추어야 할 때가 언제인지를 아는 것이다."-293쪽

"나 같은 사람은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 다른 사람보다 더 나을 것은 없지만, 최소한 나는 그들과는 다르다."(루소 <고백록>)-302쪽

"사람에 대해 과장된 찬사만을 쓴다면 약력은 보이지 않게 감출 수 있다. 그러나 인생에 대한 것을 쓰고 있다면 약력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어야 한다."(새뮤얼 존슨)-311쪽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weetmagic 2005-06-19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다보구 여행의 기술 읽고 있는데요,...와...감동 입니다.

마늘빵 2005-06-19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넵 감동입니다. ^^; 줄친데가 많아서 계속 수정하면서 덧붙이고 있어요. 전 이거 다 보고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 볼거에요. <여행의 기술>은 아직 안샀는데.

미미달 2005-06-22 0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재미있나요?
책 자체가 무지 예뻐서 끌리는데.. ^ㅡ^

마늘빵 2005-06-22 0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이거 재밌어요. 거의 다 읽었답니다. 마저 밑줄긋기 채워넣을게요. 너무 많아서 천천히 작업...
 

 
 

 

 

 

  이 영화의 주제는 뭘까. 뭘 말하려했고 뭘 표현하려고 한 것일까? 보는 내내 이런 의문을 가지며 인내심을 가지고 끝까지 봐야만 했다. 일단 본 영화는 끝을 봐야한다는 나의 영화신념(?)을 가지고.

 처음에는 웬 창녀와 순수총각의 사랑이야기인줄 알았는데 어느 순간 화면은 서부영화로 넘어가 총질을 해대고 있다. 뭐냐? 타임머신이냐? 아닌데...? 창녀와 사랑을 나눴던 총각은 그녀를 범하려는 한 사내와 총을 마주 대고 있다. 그 사내는 이 총각의 어깨에, 이 총각은 그 사내를 겨누었으나 총질의 미숙함으로 창녀의 머리 정 중앙에 맞추고 말았으니. 이를 어찌하랴. 그러나 이 사실을 모른 채 살아온 총각. 자신이 그 사내를 죽였다고 생각하고 살고 있다.

 서부영화로 넘어와서 이 총각, 인디언들에게 발견돼 구사일생으로 숨통이 붙어있다. 보안관으로 변신~ 얏! 나는 이제 정의의 사나이! 어 그런데 어디서 많이 보던 놈인데? 생각해보니 오호라 그때 그 사내놈이 늙어 돌아왔구나. 죽었는 줄 알았는데 살아있네. 이 사내에게 풍기는 카리스마에 기가 눌려버린 우리 정의의 보안관. 이렇게 당하고만 있을수는 없다. 인디언에게 가서 신통력을 가르쳐달라는데...

 이제 영화는 주술영화로 바뀐다. 인디언들에 의한 신통력과 SF환상영화의 조화? 도대체 감독은 얼마나 많은 것들을 하나의 영화 속에 담으려 했던 것이더냐. 시도는 좋았으나 조화를 이루지 못했고 완성도는 팍팍 떨어지누나. 이  순간부터 영화는 내내 명상영화, SF환상영화, 주술영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내내 정신을 몽롱하게 하는 요상한 음악과 함께 화면을 가득채운 컴퓨터 바탕화면의 4차원적인 알 수 없는 영혼의 통로(?)들.

 실망이다. 괜히 봤구나. 오랜 피곤을 없애려 잠시 쇼파에 누워 티비를 튼 것이 화근이었구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교육철학
김정환 외 지음 / 박영사 / 2003년 3월
평점 :
절판



 학부시절 교직이수를 하면서 사놓은 교육학 책이 몇권 있지만 교육철학에 관한 책은 한권도 없었다. 웬만해서는 나는 모든 강의의 교재를 구입하는 편인데 분명히 '교육철학'을 수강했던 내게 교육철학에 관한 책이 하나도 없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아마도 당시 나는 교직에 크게 뜻이 없었기 때문에 전공인 '철학'에 비해 소홀히 하지 않았나 싶다.

 대학원 첫학기를 다니면서 들은 '교육철학과 사상'이란 과목에서 이 교재는 기본서였다. 하지만 책을 구입하라고 강요하지는 않았고 수업때도 파워포인트 자료를 가지고 진행했지 이 책은 한번도 쓰이지 않았다. 물론 수업 내용은 이 책의 내용을 토대로 했지만.

 내가 지금까지 구입한 책 중에서 인터넷 서점에서 할인이 전혀 안되는 첫 책이기도 하다. 왜 할인을 안해주는거야. 이 책의 값이 23,000원인데 전부 다 받는다. 마일리지도 없다. 흥.

 교육학의 한 분과인 '교육철학'은 사실 말이 교육철학이지 철학자들의 저서에서 '교육'에 관한 부분만 발췌해서 엮어놓은 것이나 다름이 없다. 물론 마르틴 부버 같이 철학사에서는 언급되지 않는 인물로 교육철학에서는 중요한 인물로 다뤄지지만 말이다.

 이 책을 대략 훑어본 결과, 교육철학이 다뤄야 할 부분에 대해서는 체계적으로 잘 실어놓고 있는 듯 하다. 다른 몇몇 권의 교육철학 책과 비교해보면 나름대로 깔끔한 정리를 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모르지만 이 책은 '교육철학'으로 검색했을 때 가장 많이 팔린 책이기도 하다.

 교육학에 대한 인간학적, 분석적, 철학적 탐구와 더불어, 핵심부분이라 할 수 있는 '3장 전통적 철학과 교육'에서는 루소를 바탕으로 한 자연주의와 플라톤을 바탕으로 한 이상주의, 러셀을 바탕으로 한 실재주의, 듀이를 바탕으로 한 실용주의를 다루고 있고, 4장 현대로 넘어와서는 진보주의와 본질주의, 영원주의, 재건주의, 5장에서 사르트르, 마르틴 부버 등의 실존주의, 분석주의, 비판이론, 끝에가서는 포스트모더니즘까지 모두 망라하고 있다. 교육철학의 철학적 부분에 대해서 방대하게 다룸으로써 핵심적인 부분을 모두 끌어놓았다.

 교육철학서로서의 이 책이 보여주는 충실함에는 문제가 없는 듯 하다. 하지만 한 가지 지적하고픈 점은-이점은 이 책뿐 아니라 모든 교육철학서가 갖고 있는 문제이지만- 지나치게 각각의 철학사조들이 등장한 배경이나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를 간략하게 표현하려고 한 나머지 지나치게 도식화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좀더 상세한 부연설명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어떤 배경으로 어떤 철학사조가 등장했고 이것은 이런것을 의미한다 라는 식의 도식화되고 축약된 설명이 오히려 각각의 철학사조들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를 왜곡하는 것은 아닌지.

 내가 이 책을 다시 보게 될 날은 아마도 종합시험때나 되지 않을까 싶은데, 시험준비를 위해 많은 부분을 짧은 시간에 요약하기에는 이 책이 도움이 많이 될 듯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연애에도 목적이 있을까?
연애와 사랑은 다를까? 다르다면 뭐가 다를까?
연애란 뭘까?
사랑은 뭘까?
결혼은 뭘까?

영화를 본 뒤에 더 많은 궁금증을 자아내는 이 영화는 그런 면에서 꽤 '철학적'이다. 철학은 어느 한가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나면 더 많은 궁금증을 만들어내며 그런 의미에서 철학은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학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연애의 목적>을 보고 난 뒤에 나는 더 많은 질문이 생겼다. 이 영화보다 조금 더 일찍 개봉한 <연애술사>를 보지는 않았지만 예상컨대 <연애술사>가 보여주려는게 두 남녀의 연애와 쾌락이라면, <연애의 목적>이 보여주려는 바는 지금 내가 던진 이러한 많은 질문들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그저 웃고 즐겨보려고 본 영화는 내게 기대치 이상의 만족감을 주었고, 사랑에 대해, 연애에 대해, 결혼에 대해 더 생각해 볼 기회를 주었다.

<살인의 추억>에서 범인으로 의심받고, <질투는 나의 힘>에서 사랑에 실패한 이 남자 박해일 능구렁이 영어선생이 되어 돌아왔다.

<올드보이>에서 첫선을 보이며 최민식과 함께 지내던 그녀가 사랑의 배신을 가슴에 품은, 아픔을 간직한 어리숙한 교생으로 돌아왔다.

두 배우의 이름만으로도 충분히 관객을 끌어모으기에 충분한 영화다. 반면 감독이라는 위치에 이름을 올려놓은 '한재림'이라는 인물은 생소하다. 그는 뒷조사해본 결과 서울예대를 졸업한 75년생 젊은 감독으로 이 영화의 그의 첫 데뷔작이라 한다. 오호 데뷔작치고는 처음부터 꽤 반응이 괜찮다. 게다가 이렇게나 젊은데. 다른 경험도 별로 없는 듯 하다. 대개의 감독들이 연출, 조감독 등 이런저런 영화판의 시다바리를 하다가 경험을 쌓고 데뷔하는 반면 이 감독은 프로필에 올려져있는 경력이 전무하네? 일부러 안올렸나? 아니면 원래 경험이 없었나?

그는 <연애의 목적>이라는 영화를 만들면서 이런 말을 던진다.

“연애의 목적이 뭐냐고 물으면, 난 연애의 목적은 여행의 목적과 비슷하다고 대답한다. 여행은 떠나기 전의 설레임과 다녀 온 후의 추억을 준다. 대신, 상처 받을 수도 있다. 굉장히 지칠 수도 있고, 실망할 수도 있고, 다시는 가기 싫을 수도 있고.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시 여행을 간다. 여행은 목적을 논할 수 없다. 그것을 즐긴다는 자체가 목적이듯이, 연애의 목적도 그런 것이다. 내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솔직한 연애를 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저 관계일 뿐인 그런 연인 말고, 서로 실컷 삐치고 실컷 미워하고 실컷 싸우고 실컷 부둥켜 안는 연애를 했으면 좋겠다.”

이 사람 연애를 꽤 많이 해봤나보다. 풉. 연애를 별로 안해본 나야 뭐 연애를 논해도 알 게 있나. 관념적인 그림만 그려볼 뿐이지. 어떤이는 연애를 단지 성적 관계, 즉 섹스와 동일시하고, 어떤 이는 연애는 결혼의 목적과 같다고도 하며, 어떤 이는 한재림 감독이 말한 것과 같은 "서로 실컷 삐치고 실컷 미워하고 실컷 싸우고 실컷 부둥켜 안는" 것을 연애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연애에 대한 각각의 사람들의 생각이야 사람들의 숫자만큼이나 다양할테지.

첨 본 한살 많은 여자 교생한테 무턱대고 자자고 덤비는 이유림. "혹시 마약하세요?" 라고 응수하는 교생 최홍. 껄떡대는 이유림이 처음엔 싫었는데 언젠가부터 귀엽게 느껴진다. 그리고 그를 좋아하게 된다. 처음엔 단지 연애만 하자는 거였는데 이런 서로를 알다보니 연애에 목적이 생겨버렸다. 연애의 목적이 뭘까? 사랑?

유림에겐 분명 6년동안 만나온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홍에겐 사랑하진 않지만 편안하게 해주고 나를 사랑해주는 남자친구가 있다. 하지만 유림은 홍을 사랑하게 되고, 홍은 유림을 사랑하게 되고. 그게 과연 사랑일까? 라는 의문은 여전히 남지만.

홍은 과거에 사랑하는 남자로부터 배신당한 경험이 있고, 그는 배신과 더불어 홍에게 스토커라는 누명을 뒤집어 씌우기도 했다. 그리고 홍은 학교에서 쫓겨났다. 그런데 학교에서 둘 사이가 심상치 않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둘은 위기를 맞는다. 유림은 우리는 사랑하는 사이도 별 다른 사이도 아니고 단지 친하게 지냈을 뿐이라 변명하지만 홍은 자신이 예전에 겪었던 사건이 반복되는 것 같이 느껴진다. 결국 홍은 유림이 자신을 성추행했노라며 밝히고 울어버린다. 상황역전.

과거에 홍이 당했던 일을 이제는 유림이 당하게 되었다. 유림은 경찰서에 끌려갔고 성폭행범이 되었으며, 학교에서 짤렸다. 그리고 동네 영어학원에서 강사하고 있다. 홍은 나중에 유림을 찾아가지만 유림은 예전에 홍이 느꼈던 공포심을 홍에게서 느낀다. 그러나 이내 둘은 다시 예전으로 돌아온다. 같은 경험을 공유한 채로. 연애는 사랑으로 연결됐다? 그런가?


p.s. 1
이 영화는 연애의 단면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교사라는 직업의 단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먼저 있던 학교에서 잘못한 일이 지금의 학교에까지도 소문이 번져있다. 이 바닥은 뒷이야기가 무성하다. 뒷다마가 심하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겉으로는 다들 웃으며 대하지만 뒤로는 누가 어떻게 누가 어떻게 평가를 내린다. 사립학교끼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한 군데에서 잘못되면 다른 데도 못간다. 등등...

p.s. 2
<연애의 목적> 음악감독은 눈에 익힌 이름 '이병우'씨다. 오스트리아 비엔나 국립음악대학교 클래식기타과 수석 졸업하고 미국 피바디 음악원 전액 장학생으로 졸업한 그. 그는 영화판에서 음악을 담당했고 영화음악 작곡가로 활동한지 얼마 되진 않았다. 하지만 영화음악 작곡가로서 그는 순식간에 자리매김했고 영화팬들에게도 강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그가 작곡한 영화는 <마리 이야기> <쓰리> <장화, 홍련> <스캔들> <분홍신> <연애의 목적> 정도. 몇 작품 하지도 않았지만 각 영화들의 특성을 잘 살려주는 보이면서 보이지 않는 듯한 음악으로, 들리면서 들리지 않는 듯한 음악으로 관객의 가슴속에 조용히 자리잡는다.

<연애의 목적>을 봤지만 영화의 음악은 떠오르지 않는다. <장화, 홍련>에서도 그랬고, <스캔들>에서도 그렇다. 음악의 잔상은 남지만 음악은 남지 않는다. 그게 그의 영화음악의 묘미다. 자신은 드러내지 않으면서 영화를 두드러지게 하는. 난 몇해전 그의 팬이 된 나머지 독집 음반을 따로 구입하기도 했다.

영화음악가로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봄날은 간다>의 조성우씨와 지금 말한 이병우씨. 두 사람을 주목해본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루(春) 2005-06-19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제가 가장 보고 싶은 건데... 극장에서 꼭 봐야 겠어요. ^^

마늘빵 2005-06-19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네 재밌어요. 꼭 보세요.

하루(春) 2005-06-19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방준석도 요즘 영화음악에 많이 참여합니다. 그 사람도 님의 레이더에 넣어 주시길.. ^^;

마늘빵 2005-06-19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네 그 사람도 알아요. 잘은 모르지만. 그 사람도 영화음악 많이 작곡한거 같아요.
 
카탈로니아 찬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6
조지 오웰 지음, 정영목 옮김 / 민음사 / 2001년 5월
장바구니담기


"나는 기관총을 다루는 법을 배우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주 : 이 책을 다 읽고 난 뒤에 드는 생각 하나는 오웰은 평화주의자는 아니었다라는 생각이다. 전쟁 자체에 대한 거부감은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18쪽

"부모들은 열다섯 살짜리 소년을 의용군에 넣으려고 데려왔다. 부모들은 의용군 임금인 일급 10페세타 때문이라고 공공연하게 밝혔다. 또한 의용군에는 빵이 풍부하게 지급되기 때문에, 그것을 몰래 집으로 가져오게 하려는 목적도 있었다."-20쪽

"나는 좀 창피하게도, 스페인 여자에게서 새 가죽탄약통을 차는 법을 배워야 했다."-23쪽

"나는 스페인에 처음 왔을 때, 그리고 그 후 얼마 동안도, 정치적 상황에는 관심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알지도 못했다.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만 알았지, 어떤 종류의 전쟁인지도 몰랐다. 그런데도 왜 의용군에 입대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파시즘과 싸우기 위해서'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무엇을 위하여 싸우냐고 묻는다면 '공동의 품위를 위해서'라고 대답했을 것이다."-66쪽

"전쟁과 혁명 발발 1년 뒤, 결국 중앙정부에는 우익 사회주의자, 자유주의자, 공산주의자만 남게 되었다"-74쪽

"공산주의자는 늘 중앙 집권과 효율을 강조한다. 무정부주의자는 자유와 평등을 강조한다."-84쪽

"처음에는 머뭇거리다가 점차 큰소리로, 통일노동자당이 실수로 인한 그릇된 판단에서가 아니라 고의적인 계획에 의해 정부군을 분열시킨다고 주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통일 노동자당은 프랑코와 히틀러에게 매수된, 유사 파시스트의 무리에 지나지 않으며, 사이비 혁명 정책을 밀어붙임으로써 파시스트들을 돕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통일노동자당은 <트로츠키파>조직이며, <프랑코의 제5열>이라는 이야기였다. 이 말은 전선 참호에서 추위에 떨고 있는 8천 내지 만 명의 병사들과 자기 생계와 국적을 희생해 가면서까지 파시즘과 싸우기 위해 스페인에 온 수백명의 외국인들, 그리고 2만 명의 노동 계급 구성원들이 적의 돈을 받는 반역자들이라는 뜻이다."-87-88쪽

"모든 전쟁이 똑같다. 병사들은 전투를 하고, 기자들은 소리를 지르고, 진정한 애국자라는 사람은 잠깐의 선전 여행을 제외하면 전선 참호 근처에도 가지 않는다."-90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