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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의 몽타주
박찬욱 지음 / 마음산책 / 2005년 12월
평점 :
품절
영화를 잘 모르지만, 영화에 관심이 있는 나는, 우리나라에 좋아하는 몇몇 감독들이 있다. 그 중 딱 두명만 뽑으면 박찬욱과 허진호이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철학과를 나왔다는 것이고, 내가 이 둘을 좋아하는 이유는 내가 철학과를 나와서는 아니다. 두 사람을 먼저 좋아했고, 나중에 뒷조사를 하다보니 철학과 출신이더라. 좋아하는 다른 감독도 더 있다. 하지만 말이 많아지면 어수선해지기만 하니 그들은 나중에 따로 언급할 기회가 있음 이야기하기로 하자. 오늘의 주인공은 박찬욱이니.
난 영화를 좋아하지만 하지도 않는 영화를 굳이 찾아다니며 보는 편은 아니다. 부천영화제, 부산영화제 한번도 안갔고, 소위 말하는 예술영화들이 개봉할 땐 그 소식도 모르고 있다가 우연히 접하게 된 홍보물이 내 시선에 들어올 때 비로소 한번 볼까, 하고 움직이는 스타일이다. 어떤 이는 말한다. 영화를 좋아한다 라고 말할 때는 적어도 좋아하는 감독이 있고, 좋아하는 영화장르가 있고, 남들 안보는 예술영화들도 발벗고 찾아다니며 볼 수 있는 정도의 열성이 있어야 영화를 좋아하는거라고. 개봉 때마다 몇몇 영화들 골라서 보러 다니는 건 영화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누군가와 데이트하기 위해 영화를 선택한 거라고. 하지만 난 말한다. 아니 영화적 장치에 대해 논하고, 예술 영화 찾아다니고, 특정한 배우나 감독에 대해 시시콜콜 알아야 하고, 그 감독들이 논하는 좋은 영화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해야 영화를 좋아하는거야? 아니다. 그냥 영화보는걸 좋아하면 영화를 좋아하는 거다. 나름 나는 좋아하는 감독도 있고, 좋아하는 배우도 있으며, 좋아하는 장르도 있다. 그것이면 내가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충분하다. 딴지 걸지마시라.
<공동경비구역 JSA> 이전의 박찬욱의 영화는 모른다. 많은 이들이 박찬욱을 알고 있을 땐 이미 저 영화를 통해서였을 터. 나 또한 그 '대중'을 구성하고 있는 한 명의 영화팬이다. 이 영화 때도 박찬욱을 제일 좋아하는 영화 감독 리스트에 올리지는 않았다. 이후 그가 <복수는 나의 것>을 내놓았을 때 난 그를 욕했다. 이런 잔인한 영화같으니라고. 잔인하다고 욕먹을 필요는 없지만 난 이 영화가 너무나 불쾌했다. 하지만 나중에 다시 봤을 때 난 그에게 열광했다. 이전에 아마 내가 써놨던 <복수는 나의 것>에 대한 영화감상문이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흠. 생각난김에 찾아봤더니 없다. 이런.
그가 복수 3부작 시리즈를 내놓았을 때 난 또 열광했다. <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어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작품. 첫번째는 잔인했고 불쾌감을 느꼈지만 이내 그것은 쾌감이 되었고, 두번째 또한 그 잔인함에 한표를 던졌지만 역시나 열광을, 세번째는 생각만큼 잔인하진 않았지만 또다시 열광을 보냈다. 그의 머리 속엔 도대체 뭐가 들어있는지 궁금했다. 어떻게 이런 영화를 만들 생각을 했는지.
<박찬욱의 오마주> <박찬욱의 몽타주>라는 책이 지난해 말 나왔다. '몽타주'는 컷과 컷의 조합으로 이루어지는 영화 장르의 핵심적 특성을 드러내는 용어이다. <박찬욱의 몽타주>에서는 그가 지금껏 써온 칼럼, 에세이, 셀프인터뷰, 제작일지, 그의 영화에 대한 생각들을 모아모아 짜깁기했다. 사실 기대한 만큼의 책은 아니었다. 나는 짜깁기 책보다는 그가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다시 쓴 그만의 영화이야기를,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했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지나친 기대였던 것일까. 이 책은 모두 짜깁기다. 그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매체에 글을 기고했다는 자신이 쓴 이런저런 글들을 모아모아 만든 짜깁기 책이다. 그래서 조금 실망했다. 그의 글을 보고 싶었으나 그런 글을 기대한 것은 아니므로.
그는 영화감독 이전에 평론가로 활약했다고 한다. 이 역시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사실. 이 책에도 그의 평론이 조금 실려있다. 책의 뒤쪽에 그가 말하는, 그가 좋아하는 B영화에 대한 평론들. 하지만 그건 읽어도 도통 그 영화들을 본 적이 없으므로 알 수 없어 넘어갔고. 그냥 그의 쿨한, 솔직하게 써재낀 칼럼과 에세이가 좋았다. 글발이 있는 사람은 아닌 듯 하다. 아니면 글발이 있지만 귀찮아서 막 쓴 듯이 보이는 그 글들. 처음엔 좀 불쾌했다. 그의 영화를 접할 때도 불쾌했지만 그것이 쾌감으로 변질되었듯, 그의 글을 통해서도 난 불쾌감으로 시작해 쾌감으로 끝났다. 그것은 어쩌면 그에 대한 나의 호의적 감정이 만들어낸 쾌감일지도 모르겠다. 그의 칼럼이나 인터뷰 글들은 뭐랄까 너무 가볍다. 진지함이 묻어있지 않다. 물론 모든 칼럼이나 에세이가 진지할 필요도 없고, 그는 그런 것을 싫어한다고까지 밝혔으므로 그는 무죄. 그걸 기대한 나는 유죄. 마치 우리가 어느 인터넷 카페에 들어가 자기소개 형식으로 100문 100답을 쓰는 듯한 귀차니즘과 억지성의 압박심리가 느껴졌고, 아마도 뜨기 전의 그는 밥벌이의 수단으로, 혹은 알려지기 위한 수단으로 글을 썼기에 그와 같은 느낌이 오는지도 모르겠다. <몽타주>를 통해 박찬욱을 알기엔 많이 부족했지만, 조금이나마 내가 좋아하는 그에게 더 다가갈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동시에 나온, 하지만 조금 더 비싼, <박찬욱의 오마주> 도 곧 사보지 않을까 하는 예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