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줄라 - 몬태나 대학교 성폭행 사건과 사법 시스템에 관한 르포르타주
존 크라카우어 지음, 전미영 옮김 / 원더박스 / 2017년 12월
평점 :
품절


17
여성을 자신의 행동을 책임질 수 있는 자주적인 존재로 봐야 할까? 당연히 그렇다. 하지만 책임을 지는 것과 강간을 당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여성들은 술이나 약물에 취해 강간을 당하는 게 아니다. 조심하지 않았기 때문에 강간을 당하는 게 아니다. 여성들이 강간을 당하는 건 누군가 그들을 강간하기 때문이다.

51
"단순히 나는 보가 내게 한 짓을 인정하기 싫었던 거예요. 지금은 알겠어요. 사실을 인정하면 거기에 대처해야 하고, 그러면 그게 현실이 되어버리니까요. 충격적인 경험을 마음의 구석방에 넣어두고 빗장을 지른 채 아예 생각을 하지 않으면 마음이 편안하죠. 뭔가가 그 빗장을 열기 전까지는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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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자들(미국 해군신병)은 거리낌 없이 연구에 참가했다. "왜냐면 그들은 공통적으로 이런 생각을 갖고 있거든요. 복면을 하고 칼을 휘두르면서 여성을 덤불로 끌고 들어가는 게 강간범이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들키지 않았던 이 강간범들은 마스크를 쓰지도, 칼을 휘두르지도, 여성을 덤불로 끌고 가지도 않았어요. 그래서 그들은 자신이 강간범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자기들의 성적 행동에 대해 얘기하는 걸 즐겼습니다." 리삭이 인터뷰한 대학생들 대다수는 또래들로부터 강간 따위를 저지를 리 없는 괜찮은 남자라는 평판을 받았고, 그들 자신도 스스로를 같은 식으로 인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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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 쪽에 서면 만사 편하다. 모든 가해자와 방관자들에게 요구하는 건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해자는 악을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않으려는 보편적 욕구에 호소한다. 반대로 피해자는 방관자들에게 고통 분담을 요구한다. 피해자는 행동, 개입, 그리고 기억을 요구한다. ...
죄의 책임에서 벗어나려는 가해자는 망각을 위해 전력을 다한다. 비밀과 침묵은 가해자의 첫 번째 방어벽이다. 비밀의 벽이 무너지면 이제 가해자는 피해자의 신뢰성을 공격한다. 피해자를 침묵시키는 데 실패하면 누구도 그 말에 귀 기울이지 않게 만들려고 한다. 그래서 가해자는 일련의 논쟁거리를 만들어낸다. 노골적 부인에서 정교하고 고상한 합리화에 이르기까지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극악무도한 행위를 저지른 가해자들은 뻔한 사과를 한다. 그런 일은 없었다, 피해자가 거짓말을 한다, 피해자가 부풀린 것이다, 피해자가 자초한 것이다, 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과거를 잊고 앞으로 나아가자고 한다. 가해자의 힘과 특권이 클수록 그런 주장은 더 확실히 먹힌다. (주디스 루이스 허먼, "트라우마")

317
노(no)는 분명히 노를 의미합니다. 마찬가지로 예스(yes) 또한 예스를 의미합니다.

336
"실제로 성적인 공격을 받은 여성 대다수는 저항하지 않습니다. 공포에 압도당합니다. 무력감을 느끼는 경우도 많습니다. 저항하면 더 심하게 다칠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의식적으로 저항하지 않는 쪽을 선택하기도 합니다."

336
"솔직히 말해 강간에 관해 우리 대부분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이겁니다. 머리에 총을 겨눈 것도 아니고, 칼을 들이댄 것도 아니고, 말로 위협을 가한 것도 아니거든요. 하지만 그건 그 행위 자체가 엄청난 공포와 위협을 주기 때문입니다. ... 성폭력과 여타 폭력 사이에는 다른 점이 한 가지 있습니다. 성폭력은 매우 은밀하고 사적인 폭력이라는 점입니다."

454
강간범들은 피해자의 침묵을 이용해 책임에서 벗어난다. 자기 이야기를 밝히면서 그런 침묵을 깨는 것만으로도 피해자들은 강간범에게 강한 일격을 날릴 수 있다. 전면에 나선 많은 피해자들이 불신을 경험한다. 법정에서 정의가 실현되지 않는 일도 부지기수다. 하지만 드러내어 말함으로써 그들은 다른 피해자들에게 자기 이야기를 하라고 격려하는 역할을 하며, 그 과정에서 스스로가 치유됨을 느끼기도 한다. 그림자 속에서 벗어나 성폭행이 얼마나 만연해 있는지를 밝히는 피해자들이 늘어날수록 그들의 힘도 커진다. 이 집단적 강인함이 모든 피해자에게, 너무 두려워 자기 이야기를 하지 못하는 피해자에게도 힘을 준다. 그들이 느끼지 않아도 될 수치심은 대개 고립 속에서 자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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