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조너선 사프란 포어 지음, 송은주 옮김 / 민음사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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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라 말하기 어렵다. 감동적인 신파극 하나 읽어냈다면 눈물 뚝뚝 떨구며 아 감동적이야 어떻게 이럴수가, 그럴테고, 자기계발서를 읽으며 매번 이번에는 괜찮기를 하고 매번 기대해보지만 번번히 나를 실망시킨다면 쉣, 이러면 그만이고, 내용은 별반 없지만 신나고 재미난 유쾌한 소설작품 하나 읽어냈다면 여전히 속으로 큭큭큭큭 거리며 재밌어할테지만, 이건 뭐냐. 어째 읽고 난 뒤에 아 탁월해, 정말 천재같아, 혹은 정말 재밌다, 아 참 쓰라리다, 뭐 기타 등등의 이런 감정의 반응이 나타나지 않는다. 뭐지. 뭐지. 굳이 표현하자면, 뭐 어쩜 이럴수가. 이런 정도랄까.

  말하기 굉장히 애매하면서도 그렇다고 '기대보다 실망작' 리스트보다는 '누군가에게 추천해주고픈 작품' 목록에 올리고픈, 하지만 딱히 뭐시기한 느낌은 없는 지금 이 상태. 패닉상태도 아니고, 그냥 멍한 상태다. 뭐냐. 너무 뛰어나서 멍하니 빠져있는 것이 아니라 읽고 난 뒤의 애매모호한 이 느낌. 거참 제목만큼이나 또 표지그림만큼이나 애매한 느낌을 주는 소설이다. 누런 바탕에 빨간색(혹자는 빨간바탕에 누런색이라고 할지도)  오른손바닥을 그려놓고는 제목이랍시고 붙여놓는다는 것이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이라니. 뭘 말하려는거지. 특정단어를 삽입한다거나 주의주장성 문구를 삽입하는 것도 아니고, 뭔지 알 수 없는 애매모호한 수식어를 제목으로 붙여놓는다니. 그것도 서로 어울리지도 않는 것을. 어쩌면 제목을 너무 잘 붙인건지도 모르겠다. 그냥 한 눈에 보기에 뭘 말하는지 모르겠는 저 긴 제목과 빨간 오른손바닥은 이 소설의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다. 바로 그 느낌이야. 이 책을 읽고 나와 같은 '멍함'을 느꼈다면 다시 한번 책을 덮고 제목과 표지사진을 보라고. 딱 그거지 않아?

  소설의 배경은 미국의 911 테러 사태라고 하는데, 절대로, 네버, 절대로, 네버, 소설의 배경이 911사태에요 라는걸 모른 채 본다면 절대로 911을 떠올릴 수 없을테다. 단지 미리 알고 봤기 때문에 소설의 중간중간의 대화 속에서 911 사태를, 또 뒤에 나와있는 연속만화와 같은 사진들을 후루룩 훑어보면서 911을 떠올릴 뿐이다. 911 사태는 전 세계인에게 복합적인 감정을 불러일으켰고 (미국에 대한 적대적인 사람들은 어떤 쾌감을, 다른 한편으로 또 죄없이 죽어나간 수많은 개인들에 대한 애도의 감정을), 지금 생각해도 CNN 화면에 비춰진 두 비행기의 추락과 소리없는 아우성은 끔찍하지만, 이 소설에선 전혀 그런 냄새조차 맡을 수 없을게다.

  911 사태로 높은 빌딩에서 어떻게 죽어갔을지 모르는 아버지를 잃은 어린 소녀의 성장일기라고 하면 그나마 소설의 내용을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을게다. 왼손바닥엔 예스, 오른손바닥엔 노라고 써있는 사진이 자꾸만 떠오른다. 그럴 목적이 있었던건지 아니면 그냥 디자인상인지 모르겠지만, 표지그림에는 분명 오른손바닥이 그려져있고, 그렇다면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NO 일터. 무엇에 대한 NO일까. 그날의 보지 못한 악몽을 부정하는 것? 아버지의 죽음을 부정하는 것? 아니면 뭔가 또다른 것에 대한 부정. 이 모든 것들이, 이 책 속에 들어있는 모든 것들, 제목하며, 표지그림하며, 안에 삽입된 수많은 흑백사진들 하며, 또 소설 표현 기법하며, 그러한 모든 것들이 다 하나의 목적성을 가지고 있다면 난 이 소설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모두 우연이고, 별다른 메세지를 품고 있지 않다면 - 내가 보기엔 그것이 이 소설과 어울린다 - 이 책에 가벼운 키스를 해주고 책장에 고이고이 넣어둘테야. 가끔씩 꺼내 표지그림을 보고선 또 그 애매모호한 감정을 가질테지만. 아 다시 보니 뒷표지에는 왼손바닥이다. 그렇다면 별 의미 없는거.

  그랬다. 살만 루시디와 존 업다이크와 같은 그들의 작품은 아직 보지 못했지만 이름만 들어도 거대한 그네들의 찬사와 각종 매체와 저널들의 찬사를 받고 있는 이 소설, 불과 나보다 두 살 많은 조너던 샤프란 포어라는 이 작가, 부럽다. 얘도 또 철학전공이야. 나도 쓰고싶다. 예전엔 작가가 되겠다는 생각 따위는 안해봤다. 그런데 그런데 언젠가 나는 책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리고 시간이 지나며 그것은 이네들과 같은 한편의 뛰어난 작품을 내고 싶다는 생각으로 굳혀지고 있다. 스위스 철학자 알랭 드 보통, 이젠 미국 철학자 조너던 샤프란 포어, 다음엔 또 누구. 그저 막연한 기대와 희망.

   "<호밀밭의 파수꾼>의 콜필드보다 명민하고, <양철북>의 오스카보다  사랑스러운 아홉살 소년의, 슬픔과 사랑에 관한 퍼즐 같은 이야기." 라는 뒷페이지의 삽입문구는 이 소설이 어떤 것인가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역시나 이 소설을 읽으며 내가 느낀 것도 <호밀밭의 파수꾼>의 콜필드였으며- 하지만 이 소설의 주인공 소녀는 콜필드 만큼이나 세상에 부정적이고 툭툭 혼잣말로 욕설퍼붓는 까칠한 녀석은 아니다 - 또 어떤 장면에서는 <어린왕자>를 떠올리기도 했다. <어린왕자> 속의 여우와 왕자의 대화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 길들인다는 것에 대해. <호밀밭의 파수꾼>보다 어렵고 두루뭉실하며 <어린왕자>와는 그것을 제외하고는 동떨어져있는 듯한 느낌. 마땅히 어떤 페이지에 밑줄을 긋고 싶다기보다, 그저 소설을 쭉 읽어내려가며 가슴에 담아두고픈 사랑과 슬픔에 대한 한편의 편평한 이야기.

  알 수 없는 제목이었던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은 마지막 장을 덮은 뒤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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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영엄마 2006-11-05 0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당신은 믿을 수 없겠지만 >이란 책 제목만큼이나 긴 제목이군요..^^;;

마늘빵 2006-11-05 0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그 책은 뭔가 또 궁금해지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