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칼이 될 때 - 혐오표현은 무엇이고 왜 문제인가?
홍성수 지음 / 어크로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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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의 자유는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찾고자 하는 모든 이들의 문제, 특히 소수자의 문제다. 그래서 표현의 자유에 관한 논란이 ‘자유 확대’가 아니라 ‘자유 축소’로 귀결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설사 ‘아주 공평하게’ 진보와 보수, 강자와 약자, 좌파와 우파의 표현의 자유를 모두 축소하는 방향으로 흘러간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서로 하고 싶은 말을 제약받는 정도가 커질수록 이득을 보는 쪽은 강자다. 서로 할 말을 못 하는 상황은 ‘현상 유지’를 바라는 강자의 입장에서 그리 나쁘지 않다. 반면 소수자의 입장은 정확히 그 반대다. 소수자에게는 더 많은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그래야 현재의 부당한 현실을 바꿀 수 있고 그들의 권리가 보장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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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해보자면, 혐오표현이란 "소수자에 대한 편견 또는 차별을 확산시키거나 조장하는 행위 또는 어떤 개인, 집단에 대해 그들이 소수자로서의 속성을 가졌다는 이유로 멸시, 모욕, 위협하거나 그들에 대한 차별, 적의, 폭력을 선동하는 표현" 정도로 그 개념을 정의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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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남성이라서 남성을 일반화하여 비난하는 발언을 들으면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 하지만 남성에 대한 차별적, 모욕적 표현이 난무한다고 해서 내가 차별과 성폭력의 피해자가 될 것을 걱정하지는 않는다. 그저 좀 언짢을 뿐이다. 하지만 여성 혐오는 여성을 열등한 존재로서 차별하는 것을 넘어 일상적인 공포를 야기하기도 한다. 열등한 존재인 여성을 대상화하고 종속화하는 남성 지배 문화에서의 여성을 폭력의 대상으로 삼기도 한다.

80-81
월드론은 혐오표현이 어떤 사회적 환경이나 상황을 창출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혐오표현이 만연한 환경에서는 소수자들이 ‘이 사회에서 평등한 대우를 받으며 살 수 없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적대, 폭력, 배제의 위협을 받지 않는다는 ‘확신’을 가질 수도 없다. 또한 월드론은 존 롤스의 정치철학에 바탕해 질서정연한 공정한 사회에서 각 개인들은 서로가 서로를 어떻게 대우하고 대우받을지에 관한 확신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모든 이들은 평등한 인간이고, 인간성의 존엄을 가지며, 모든 이들은 정의에 관한 기초적인 권한을 가지며, 모든 이들은 폭력, 배제, 모욕, 종속의 가장 지독한 형태로부터 보호받을 자격이 있음에 관한 확신"하는 것이 정의의 중요한 기초인데, 혐오표현은 이 기초를 붕괴시킨다는 것이다. (...) 만약 혐오표현이 소수자를 사회에서 실질적으로 배제하고 청중들을 차별과 배제에 동참하도록 유도하는 등의 현실적 해악을 가지고 있다면 평등과 인간 존엄 등 다른 헌법적 가치의 수호를 위해 혐오표현을 규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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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속을 들여다볼 수 없기 때문에 편견 자체가 규제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편견을 해소해야겠지만 이것은 편견에 대한 직접적인 규제가 아니라 편견이 싹틀 수 없도록 사회문화적, 정치경제적 배경을 조성하는 것으로 접근해야 할 문제다. 편견을 밖으로 드러내면 그것이 바로 혐오표현이다.


150-151
표현의 자유는 원래 ‘소수자’의 권리로서 의미가 있는 것이다. 다수자나 강자는 자유자재로 표현의 자유를 누릴 수 있지만 소수자에게 표현의 자유는 자신의 인권을 실현하기 위한 핵심적 가치다. 생존권, 평등권, 참정권, 노동권 등 모든 권리의 실현을 위해 소수자는 자신의 권리를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표현의 자유는 다른 권리의 실현을 위한 전제조건인 것이다. 그래서 소수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하여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최대한 신중해야 한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규제 총량이 증가하는 것은 언제든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음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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