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 기억은 짓무른 살점처럼 벗겨져 있다. 뭉개진 홍시처럼 시어터진 냄새를 풍긴다.
105 인간의 언어란 정말 대단했다. 본질을 감추고 외피를 만드는 데 언어만큼 적당한 건 없었다. 진실하다는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따라붙는 무수한 수식어는 정말 놀라운 지경이었다.
341 여기 ‘다른 사람’이 되기 위해 기를 쓰고 노력해야 했던 여자들이 있다. "누구도 함부로 대할 수 없고, 우습게 볼 수 없는 사람"이 되기 위해. 상처받지 않고, 겁먹지 않는 사람이 되기 위해. 그리고 무엇보다 "절대 강간당하지 않는 사람"이 되기 위해. 이 꿈은 얼마나 슬픈 꿈인가?(윤성희)
146 화가 난 여학생 몇 명이 학교 측에 노교수를 고발하는 서명을 받았다. 나는 서명하지 않았다. 졸업 학기였다. ‘그런 일’로 피해를 보기 싫었다. 여자들은 불리할 때만 차별이라고 말하지. 이전 회사에서 상사를 성추행 혐의로 고발한 여직원이 있었다. 나는 도와주지 않았다. 내 일이 아니었으니까. 더 중요한 일이 있는데 사소한 사건으로 회사 분위기를 망치는 유난스러운 여자로 보이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랬으면서. 그런 주제에. 부끄러웠다.
155 미래 계획에 타인을 꼭 들여놓지 않아도 괜찮은 이들이 있었다.
219 소설의 (괄호)가 묘사하는 건 피해자의 고통이 아니었다. 가학의 정도였다. 가학성의 핍진함이 그 묘사를 생생하게 만들었다. 지독하게 끔찍한 장면들. 그건 피해자의 고통이 어떤 것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알기는 알겠지. 나쁘다는 것도 알겠지. 그러니까 나쁜 놈들을 더 나쁘게 그리는 거겠지. 나쁜 놈들에게 비난을 쏟기 위해 (괄호)를 퍼붓는 거겠지. 하지만 정말로 알까. 신체의 어느 한 부분이 억지로 벌어지고, 찢겨나가고, 으스러질 때의 그 물리적 느낌을 정말로 알까? 몸에서 가장 부드럽고 예민한 부위가 상처 입을 때의 그 고통을 정말 알까? (괄호) 이후에는 오직 아팠다,라는 묘사만 등장한다. 그건 오줌 쌀 때 며칠 아픈 걸로 끝나는 경험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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