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리타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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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리타>를 마지막으로 오늘을 기준으로 하여 지금까지 나온 그녀의 모든 소설을 다 읽었다. 무슨 니체 읽기 독파 같은 지적인 만족감을 주는 작업도 아니고 대뜸 왜 내가 그녀의 모든 소설들을 다 읽고 싶어졌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아마도 처음 읽었던 그녀의 어떤 소설이 너무나 좋았던 나머지 다른 모든 작품을 읽어야겠다고 시도했겠지만 전 권을 다 읽은 지금 처음의 그 느낌은 남아있지 않다. 그녀의 소설은 모두 판박이처럼 닮아있다. 각기 다른 등장인물과 줄거리를 가지고 이야기를 구성하는데도 마치 전에 읽은 그녀의 소설을 또다시 읽는 듯한 느낌이다. 내용은 이어지지 않는 시리즈를 보는 느낌이랄까. 그것은 그녀만의 독특함을 각인시켜주기도 하지만 지루함과 따분함이라는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일본 소설가들 중에서 한국인에게 가장 인기 있는 작가는 아마도 무라카미 하루끼와 요시모토 바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 중에서도 요시모토 바나나는 읽기에 거부감이 없고 편안하다. 그녀가 소설 속에서 펼쳐놓는 문장들은 아기자기하고 섬세하며 때로는 귀엽기까지 하다.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쓰리다. 그것은 문장이 쓰린 것이 아니라 삶이 쓰린 것이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삶이. 어찌보면 내용면에서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온갖 어두운 삶의 모습들을 들여다보기에 너무나 현실과 동떨어져있다는 인상을 줄 법도 한데 막상 그녀의 소설을 읽고 있으면 그런 생각은 나지 않는다. 근친, 강간, 이복형제, 부모의 죽음 등등 암울한 이야기들로 가득하지만 우리가 곧 그 암울함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것은 털썩 주저 앉아있는 그를 향해 손을 내미는 다른 인물들 때문일 것이다. 절망에 빠져 어두운 방구석에 처박혀 혼자 엉엉 눈물 쏙 빼고나면 정신이 맑아지는 경험이라고나 할까.

  고통과 토닥임과 치유와 정화의 과정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그녀의 소설은 이제 읽지 않아도 시작부터 끝까지의 과정이 눈에 보인다. 하지만 언젠가 내가 또 그녀의 소설을 읽은 후 리뷰를 쓰면서 언급했듯, 다 알면서도 접하게 되는 것은 그때마다 내가 안고 있는 나의 고통을 치유하고 싶기 때문이다. 홀로 된 나에게 쉽게 손 내밀어 줄 사람은 보이지 않고, 그건 내가 누군가에게 나의 고민과 고통을 털어놓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위로의 수단으로서 기분전환의 수단으로서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그들의 이야기를 찾아 함께 울어줌으로써 그도 나도 현재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마지막 소설을 읽으며 뭔가 뿌듯함을 느낄 법도 하지만 그런 것은 느껴지지 않는다. 그녀의 다음 작품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으면 눈길이 가겠지만 내가 다시 그녀의 소설을 볼지는 모르겠다. 그녀의 소설을 읽으며 별스런 재미나 감동이나 쾌락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것이 중독된 상태인지도. 다시 그녀를 찾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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