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에 강시가 있다면 서양엔 좀비가 있다. 강시는 귀엽기라도 하지 좀비는 징그럽다. 어릴적 대략 내가 중학교를 다닐 무렵까지만 해도 강시영화들이 꽤 인기를 끌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홍콩 강시영화를 본 따 영구와 머시기 하는 식의 따라하기 영화를 만들곤 했었다. 그치만 지금은, 강시는 찾아 볼 수 없다. 영화 속 강시를 따라하느라 두 손 앞으로 나란히 하고 몸 뻣뻣하게 세우고는 두다리로 통통 뛰놀던 그런 놀이는 이제 보이지 않는다. 서양의 좀비는 사람을 뜯어 먹는다. 팔, 다리, 몸통은 기본이고, 허파, 간, 심장, 뇌까지도 파먹는 이 녀석들은 그야말로 식인종이다. 사람이 아니니 '인종'이라 할 수 없겠지만.



* 영원히 좀비의 공격으로부터 안전할 것만 같았던 피들러 그린에 좀비가 습격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영리해진 좀비는 불꽃놀이에도 끄덕않고, 강을 건너는데도 두려움이 없다. 좀비 또한 '없애야 할 것'으로 여기지 말고 그들 역시 자신들이 갈 곳을 찾아 떠나는 하나의 존재로 봐야할 것이다. 사람을 공격한다고 그들에게 죄를 물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들은 그들이 하는 짓이 무엇인지 모른다. 무지에서 비롯된 잘못조차 죄로 봐야 할 것인가. 소크라테스는 무지에서 비롯된 죄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물론 그것은 후세의 철학자들에 의해 비판받았지만 '죄'가 성립되지 않음은 사실이다.  



* 내가 살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겠다. 돈 없는 마을 사람들이 그가 지은 요새를 공격하자 그들을 없애려하고, 있는 자들로부터 돈을 갈취해 부를 이룬 카우프만. 인간의 이기심의 극단에 서있는 자이다.

  무덤에서 살아난 시체들이 두 눈 게슴츠레 뜨고 흐느적흐느적 거리며 거리로 나와 사람들을 잡아먹기 시작한다. 갑작스런 기습에 한 웅큼 살점 뜯기고 나면 한 시간이면 좀비로 변신, 그 역시 또 다른 먹이거리를 찾아 나선다. 폐허가 되어버린 마을엔 사람은 없고 좀비만 가득하다. 남아있는 사람들은 두 부류로 나눠진다. 하나는 돈이 있는 자, 그리고 하나는 돈이 없는 자. 좀비가 지배하는 사회든, 그렇지 않은 현실이든 상관없이 언제나 사람들은 두 부류로 나뉜다. 돈이 있는 자의 대표 카우프만은 거대한 빌딩 안에 호화로운 집을 설계해놓고 돈을 받고 사람들을 입주시킨다. 그리고 돈이 없는 자는 좀비들의 공격에 벌벌떨며 마을에서 하루를 버텨나가는 것을 감사한다. 좀비 VS 사람의 구도 뿐 아니라 사람 VS 사람의 또다른 구도가 형성된다.

  좀비는 날이 갈수록 점점 학습능력이 강해지고, 사람들은 점점 더 두려움에 떨 수 밖에 없다. 안전하리라 여겨졌던 카우프만의 요새도 이제는 안전을 보장할 수 없게 되고, 좀비의 침략을 받자, 사람들은 무방비로 당한다. 돈 없는 자는 경험을 통해 좀비와 싸울 수 있는 능력을 키운 반면, 돈 있는 자는 언제나 보호받는 삶을 살아왔기에 무차별 공격을 당할 수 밖에 없다.

  영화 제목 '랜드 오브 데드', 죽음의 땅은 좀비가 점령해버린 폐허가 되어버린 마을을 지칭하기도 하지만, 사람과 사람이 서로 싸우며 못잡아먹어 안달인 현실을 지칭하기도 한다. 인류의 공적이 나타난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은 두 부류로 나뉠 것이다. 자기의 생존을 보장하기 위해 타인을 해치는 자와 인류의 생존을 위해 자신을 걸고 싸우는 자. 언제나 인류의 역사는 그렇게 반복되어왔고, 먼 미래에 혹시나 외계에 있을지 모를 어떤 생물체가 지구를 정복하기 위해 내려온다해도 이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삶의 터전을 죽음의 땅으로 만드는 것은 외계인도, 괴생물체도, 좀비도 아닌 바로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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