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의 이름 창작노트 - 양장본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윤기 옮김 / 열린책들 / 2002년 3월
절판


풀섶에서 자라는 붉은 장미여,
빛에 씻긴 진홍 색깔과,
그 농염하고 향기로운 자태를 자랑한다만,
아니다. 내 바르게 이르거니와,
너의 불행은 목전이다.

-후아나 이네스 데 라 크루스 -7쪽

화자는 자기 작품을 해석해서는 안된다. 해석하고 싶다면 처음부터 소설을 쓰지 말 일이다. 소설이라는 것은 수많은 해석을 발생시키는 기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화자가 작품을 해석하지 않는다는 이 고결한 원칙을 지키는 데엔 한 가지 장애가 있으니 그것은 모든 소설에는 제목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10쪽

소설의 작가가 누릴 수 있는 위안 가운데 가장 으뜸 가는 위안은, 자신은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썼는데도 불구하고 독자의 이해를 통하여 전혀 다른 독법을 발견하게 되는 일이다. 학문적인 논문을 썼을 경우, 서평자에 대한 나의 자세는 법관의 판단 만큼이나 명쾌하다.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을 그가 정확히 이해했는가, 혹은 하지 못했는가? 그러나 소설의 경우 상황은 전혀 다르다. 나는, 작가가 타인에 의해 발견된 독법을 잘못된 것으로 여기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설사 그런 것을 알았다고 하더라도 침묵을 지켜야 한다는 말이다. 침묵을 지킴으로써 다른 독자들에게도 텍스트 자체를 통해 그 잘못된 해석에 도전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15쪽

작품이 끝나면 작가는 죽어야 한다. 죽음으로써 그 작품의 해석을 가로막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19쪽

나는 중세에 <대해서> 쓰고자 결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중세<에서> 쓰기로 결심했다. 말하자면 그 시대 연대기 작가의 입을 통하여 중세라는 <시점>에서 이야기를 풀어 나가기로 결심한 것이다. -35쪽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소설의 세계를 구축하는 작업이다. 이렇게 소설의 세계를 구축해 놓으면 언어는 거기에서 필연적으로 따라온다. Rem tene, verba sequentur, 즉 <주제를 붙잡으라, 그러면 언어가 뒤따라온다> 인 것이다. 시의 경우는 Verba tene, res sequentur, 즉 <언어를 붙잡으라, 그러면 주제가 뒤따라온다>. -43쪽

저자는 책을 쓸 때 마음 속에 어떤 경험적인 독자를 상정하고 쓴다. 근대 소설을 확립한 리처드슨, 필딩, 디포 같은 작가들(출판업자와 자기네 마누라를 위해서 쓴)도 그렇게 썼다. 그러나 그들만 그랬던 것은 아니다. 조이스 역시, 불면증에 시달리는 이상적인 독자를 상상하면서 소설을 썼다. 작가가 자기 작품을 기다리고 있는 대중을 위해서 쓰건, 돈을 위해서 쓰건, 아니면 새로운 독자를 만들기 위해서 쓰건, 글쓰기라는 것은 곧 텍스트를 통하여 자기 나름의 독자를 확보하는 작업이다. -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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