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책이라고 하는 것은 믿음의 대상으로 삼기보다는 새로운 탐구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것으로 삼는 것이 옳다. 서책을 대할 때는 서책이 하는 말을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그 뜻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는 성서의 주석서 저자들이 늘 우리들에게 가르치는 것이기도 하다. 서책의 뜻은 우리에게, 일각수는 도덕적 진실, 비유적 진실, 우화적 진실을 나타내고 있음을 가르친다. 그러나 순결이 고결한 미덕이듯이, 이 서책이 드러내는 의미 또한 진실이다. 그러나 나머지 세 가지 진실을 지지하는 언어적 진실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어떤 경험이 이러한 표현을 부여했는지를 한번 따져 보아야 한다. 아무리 그 뜻이 고상하다고 하더라도 언어적 관념이라는 것은 반드시 논의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 법이다. -588쪽
우리는 <우리는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되 모든 것을 사용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아퀴나스께서는, <필요로 하는 자가 있거든 쓰게 하라, 이는 자비가 아니라 의무이니라> 이렇게 말씀하셨다. -642쪽
나는 <탐구>라고 하지 않고 분명히 <보존>이라고 했습니다. 무슨 까닭인가요? 하느님께 속하는, 지 식이라는 재산은 완전한 것이고, 태초부터 완전한 것으로 정제된 것이고, 말씀의 완전함 안에서 스스로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중략... 지식의 역사에는 발전이나 진보가 있을리 없습니다. 오로지 연속적이고 더할 나위 없이 고귀한 요점 약설이 있을 뿐입니다. 인류의 역사는 창조에서 부활을 거쳐, 구름 위에 좌정하시고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이르기까지 눈에 띄지 않게 변합니다. 그러나 인간적인 지식, 지상적인 지식은 이런 길을 걷지 않습니다. 난공불락의 성채같이 단단한 이 지식은, 우리가 겸손하게 귀를 기울일 때만 우리가 걸을 길을 예언하고 우리에게 우리가 마땅히 따라야 할 길을 내어 줍니다. 그러나 이 길이 지식을 변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유대의 하느님께서는, <내가 바로 그 길>이라고 하셨고, 우리 주님께서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여러분도 알아야 합니다. 지식이라고 하는 것은 이 두 진리의 무서운 주석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장미의 이름' 호르헤 수도사) -7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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