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광화문에서는 집회가 한창일 터이다. 평택 대추리 사태를 뻔히 알고 있으면서, 침묵하고 있는 내 자신이 원망스럽고 미안하다. 그저 현장의 사태를 알리는 신문 기사 몇 개 퍼다놨다고 내 할 일이 다 끝난 것이 아니란 걸 알면서 이렇게 내 방에 조용히 침묵하고 있는 자신에게 미안하다. 발마스님과 바람구두님은 아마도 그 현장에서 여러 사람들과 함께 하고 있을 것이다. 평택 대추리의 진실과 국가 공권력에 대한 분노를 표하는 글을 쓰고, 현장에 나가 있는 그 분들은 참된 지식인이다. 알고 있지만 침묵하고 있는 나는 실천하지 못하는 지식인이다. 이렇게 글로 끄적인 것으로 나의 죄를 사면받을 생각은 없다. 그래도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내가 싫어질 것 같아 끄적인다.
할 일이 많다는 핑계는 통하지 않을 것 같다. 지난 수요일부터 쉬기 시작했고, 다음주 월요일까지 쉰다. 비록 그 사이 출장도 다녀왔고, 내일은 하루종일 시험감독에 투입된다고는 하지만 말이다. 평일에 이만큼 쉬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근 일주일간의 연휴 속에서 부지런을 떨면 내가 해야 할일 다 할 수도 있었다. 그러지 못했더라도 지금 당장 내가 해야 할 일은 대학원 발제지를 만들고, 레포트를 쓰고, 책을 읽고 서평을 쓰는 것이 아닐 터이다. 그것은 부차적이고 사소한 것이다. 내가 대학원에서 공부를 하고, 책을 읽고, 서평을 쓰고 하는 모든 행위들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무엇을 위해 난 지금 이런 사소한 짓거리를 하고 있는가.
많이 죽었구나 싶다. 예전엔 집회에 참가하지 않더라도, 시위에 동참하지 않더라도,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시위문화에 대한 고민, 집단에 소속됨으로써 개인이 무시되는 상황에 대한 거부감 등등. 그러나 지금은 이러한 조금은 과격한(?) 시위문화도 최후의 수단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개인이 집단에 소속됨으로써 무시되어버리는 상황 또한 소속된 집단의 주장과 크게 반대되지 않는 한 무난하게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예전엔 현장에 나가지 않더라도 글을 써서 내 생각을 발표하고 주위 사람들과 토론이라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마저도 안하고 있다. 편안했던 대학생 신분에서 돈벌이에 나선 직장인 신분으로 껍데기를 바꾸었다고 하지만 이는 지금의 나의 행태에 대한 변(辯)이 되지 못할 듯 하다. 미안하다. 내 자신에게. 미안하다. 나를 아는 모든 이들에게. 미안하다. 지금 현장에 있을 그들에게.
하지만 시시덕거리는 페이퍼 한장 쓰면서, 댓글 달면서, 레포트 쓰면서, 현장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이 이내 신경쓰였고, 지금 앉아있는 자리가 불편했다는 것으로 작은 변명을 늘어놓고자 한다. 다음달 초면 계약이 끝나는, 다시 또 새로운 자리를 찾아 떠나야 하는, 다음 대학원 등록금을 또 걱정해야만 하는 처지에 놓인 비정규직 직장인으로서, 또 졸업이 한참 남은 대학원생으로서, 지금의 짧은 안락함을 현실이 안겨주는 삶의 고단함과 스트레스로부터 도피하려는 나의 작은 몸짓이라고 굳이 변명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