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로그 digilog - 선언편
이어령 지음 / 생각의나무 / 2006년 4월
절판


시루떡은 사람 손으로 일일이 공들여 만든 것으로 집마다 그 맛이 다 다르다. 하지만 공장에서 다량으로 생산된 스팸 통조림 맛은 백이든 천이든 그 맛이 똑같다. 무엇보다도 시루떡은 잔칫날처럼 어쩌다가 만들어먹는 별식인데 비해서 스팸은 값싸고 장기간 보존이 가능하여 미군 부대에서 매일 같이 먹는 대표적 군용 식품이다. 그래서 시루떡을 보면 "왠 떡이냐?"하고 놀라지만 스팸을 본 병사들은 "어제도 스팸! 오늘도 스팸! 내일도 스팸! 다음주도 스팸!"이라고 투덜댄다고 한다.

...중략...

그러므로 스팸이란 말은 벽에 부딪힌 오늘의 정보사회의 실상이 어떤 것인지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같은 것만 되풀이해서 먹으면 금세 식상해진다. 그리고 시장이 반찬이라는 말이 있듯이 배가 고프면 음식 맛을 더 잘 느끼지만 반대로 배가 부르면 산해진미라도 그 맛을 알 수가 없다. 스팸은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정보포식'상태와 그러한 정황 속에서 우리가 잃고 있는 디지털의 '정보현실감'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36-37쪽

숟가락은 주로 국문을 떠먹는 것으로 음에 속하는 것이고, 젓가락은 양에 속하는 것으로 고체형 마른 식품을 집는데 사용된다. 건식에 편중되어 있는 서양의 식기가 접시 위주로 되어 있는데 비해 습식 문화의 한국 식기는 종기 뚝배기 사발 등 움푹 팬 것들이 많다. 그러니까 같은 동북 아시아권 가운데서도 '음양 조화'의 문화를 가장 철저하게 생활화한 것이 바로 한국 문화라고 할 수 있다. -62쪽

"정보가 샌다" "정보를 흘린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정보를 물과 같은 액체로 생각한 것이다. 물꼬를 자기 논에다 대던 농경시대적 개념이다. 그러나 "정보를 캔다" "정보를 묻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정보를 무슨 석탄이나 노다지 같은 것으로 알고 있는 산업시대인에 속한다. 그런가 하면 "정보가 환하다" "정보에 어둡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는 정보는 액체도 고체도 아닌 빛이다. 만화에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전구를 그려놓듯 에디슨 시대의 유물인 것이다.
"정보를 맡았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사냥꾼들이 사냥감을 추적할 때 짐승이 지나간 채취를 통해 추적하던 원시적 감각의 산물이다. 정보는 이렇게 수렵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잠재의시의 산물이기도 하다. 이 모든 것이 우리가 지식 정보의 새로운 기술을 옛 패러다임으로 읽고 있다는 증거다.
정보기술을 새 패러다임으로 비유하자면 그것은 액체도 고체도 아닌 '공기'라고 말할 수 있다. 공유는 해도 독점할 수 없는 것이 공기이며 지식이다. 사용을 해도 없어지지 않고 순환하는 것 또한 공기의 속성이며 정보의 특성이다. 그러므로 '가치'는 있어도 '가격'은 없는 것이 공기이며 지식정보다. -130-1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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