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랐다. 이 영화 다 끝날 때까지 실화인줄. 주인공이 죽은 뒤 장례식에서 그의 생몰연도가 나오기 전까진. 그냥 허구라고 해도 이렇게 슬픈데, 실화라니. 잔인하다. 아 슬프다. 무슨 멜로 영화도 아닌 걸 보면서 또 눈물 흘리다니, 자꾸만 눈물 흘러 손으로 한번 훔치고 두번 훔치고.

 요새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나 책을 계속해서 접하게 된다. <인 콜드 블러드> 도 조그만 평온한 마을의 선량한 일가족 살인사건을 다루고 있고, 최근 봤던 영화 <뎀> 역시 2002년 루마니아 살인 사건을, <드리머> 역시 한 소녀의 말에 대한 사랑을 담아낸 실화다. 실화는 확실히 감동을 배가 시켜준다. 더군다나 그것이 실화란 걸 모르고 접했던 영화나 책의 경우, 끝에 가서 실화임을 알게 되면 정말 감정이 북받쳐 오른다. 내내 울컥 울컥하며 참아낸 슬픔이 터져나온다.

 <래더49>는 미국의 한 소방서의 이야기이다. 소방관을 소재로 한 영화는 꽤 많지만 같은 소재라고 할지라도 모두 각기 다른 내용을 담고 있고, 그때마다 각각의 영화를 보면서 각기 다른 점들을 느끼게 된다. <분노의 역류> <리베라메> <볼케이노> 등등.



* 동네 슈퍼에 만난 수습대원 잭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다. 둘은 10년이 넘는 결혼 생활동안 싸우기도 했지만, 그것조차 서로의  사랑 때문이었다. 가정을 이루고 아름답게 살아가는 두 사람을 보며 내 마음도 따뜻해졌다.

 수습으로 들어와 어리버리대던 시절부터 10여년의 세월 동안 함께 했던 동료와 그의 상사 소방서장 마이크 케네디는 그를 보내며 말한다. "사람들은 묻는다. 모두 불길을 뛰쳐 나올 때 어떻게 그 속으로 뛰어들 수 있는지... 그것은 바로 용기이다. 잭이 지금까지 구한 사람들, 잭이 지금까지 지켜낸 건물들은 셀 수 없습니다. ... 잭의 인생을 축복합시다."

  영화를 통해 본 잭은 누구보다 생명을 지켜내고자 하는 의지가 강한 사람이었으며, 그의 상사 마이크의 말마따나 소방관이 천직인 사람이었다. 그는 누구보다 용기있었으며, 자신의 동료가 구조대원(구조대원은 제일 먼저 화재 현장에 나가 사람을 구출해내는 역할을 맡는다. 불을 끄는 것은 밖에서 할 수 있지만 구조대원은 불길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으로 활약하다 죽자, 그 자리에 자신이 들어간다. 결국 그는 그의 동료의 뒤를 따라 구조대원으로 활약하다 생을 마감했다. 1971년에 태어나 2003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나이 불과 서른 셋. 그에겐 이쁜 딸과 귀여운 아들이 있었으며, 사랑하는 아내가 있었다.

  아내는 언제나 잭을 걱정했다. 잭이 다칠까봐 항상 잭을 걱정하고 염려했다. 그가 소방관 생활을 시작한지 10년이 넘는 동안, 결혼한지 10년이 넘는 동안 그녀는 잭을 보아왔고, 주변의 죽어가는 동료를 봐왔다. 걱정은 당연하고, 어쩌면 잭의 죽음을 조금은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은, 그동안의 마음의 준비 때문일 것이다. 집앞에 도착한 차에서 잭이 내리지 않고, 그의 동료와 신부님이 내리자 그녀는 순간 눈물을 흘린다. 하지만 대놓고 엉엉 울지는 않는다. 속으로 참고 참고 또 참고 마지못해 나오는 눈물이다. 감당하기 벅찬 슬픔이다.   잭이 남들보다 더 열심히 더 앞서서 사람들을 구조하고, 뉴스에 나오고, 표창을 받을 때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런 날이 오리란 것을.



* 잭은 저 잔해더미 속에서 결국 구조되지 못한 채 숨을 거두었다. 2003년의 어느날. 그를 살리기 위해 노력한 그의 동료들, 그의 상사 소방서장 마이크는 어디에 있는지 알지만 그를 구출 할 수 없었다. 그들의 아픔이야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

  한 여자만을 사랑했던 좋은 남편이자, 두 아이의 친절하고 자상한 아빠였으며, 언제나 웃음을 선사해주는 좋은 이웃이었으며, 그 누구보다 믿음직스러운 소방대원이었던 잭은 그렇게 사람들에게서 떠나갔다. 오직 사람들의 머리 속에 그에 대한 좋은 기억만을 남겨둔채.

  영화에서는 2003년 불타는 건물 안에 갇혀 죽은 잭을 담아냈지만, 어디 위험한 일을 하다 사라진 목숨이 한둘이랴. 강도와 맞서다 죽은 경찰관들, 잭과 같이 불더미 속에서 사람을 구조하려다 죽어간 소방대원들이 셀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 지금껏 그렇게 자신의 사명을 다 하다 죽어간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모른다. 평소에 그들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않으니까. 영화가 그려낸 잭의 삶은 목숨을 살리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모든 소방대원을 대표한다. 그들에게 경의를.  

***
소방서장 마이크와 주인공 잭의 얼굴이 눈에 익었다 싶었는데 찾아보니, 마이크 역을 맡은 사람은 존 트라볼타. 영화 <페이스 오프>에서 형사로 나왔던 인물이다. 잭은 호아킨 피닉스로 영화 <앙코르>에 나왔던 쟈니 캐쉬, <글래디에이터>의 못된 왕 코모두스로 나왔던 인물이다. 그의 경우엔 영화마다 너무나 다른 이미지를 가지고 있어서 처음엔 못알아봤다. 어떻게 <글래디에이터>의 코모두스가 <래더49>의 잭이 될 수 있는지. <앙코르>의 쟈니캐쉬도 너무나 다른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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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6-04-23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분노의 역류 보면서 극장에서 통곡을 했답니다...

마늘빵 2006-04-23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분노의 역류>도 슬프죠. ㅠ-ㅠ 메피스토님도 눈물이 많으신가봐요. 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