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일러 경고  : 이 영화는 제목만 알고 가서 봐야합니다. 
 * 내내 공포감을 조성하는 드르륵 드르륵 소리의 정체는 극장에서 확인해보시길

  공포영화의 계절이 돌아오는가. 겨울의 기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일찌감치 공포영화들이 채 녹지도 않은 땅을 헤집고 하나 둘 머리를 내밀고 있다. 얼마전 <엑소시스트>가 다시 나오더니, 이번엔 <뎀>이다. 여기서 말하는 뎀은 'THEM'. 영어로 '그들'이다. 범인의 이름을 대신해 '그들'이라는 칭호가  사용되었고 거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하는데 과연 어떤 이유일까?

  개봉한지 이제 이틀된 따끈따끈한 영화다. 프랑스 영화사 스튜디오 까날에서 비밀리에 만들어진 영화로, 베를린 국제 영화제 필름 마켓에서 처음 소개되었다. 범인을 칭하길 '그들'이라고 하질 않나 영화를 몰래 만들질 않나. 도대체 왜?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2002년 나는 군대에, 사람들은 전국 곳곳 거리에 나와 대~한민국을 외치던 그 때, 지구 반대편 루마니아에서는 충격적인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2002년 10월 7일을 시작으로 일주일간의 수사끝에 범인은 밝혀졌고, 루마니아 국민들은 모두 충격에 휩싸였다. 이 사건은 불과 4년 밖에 되지 않았지만 루마니아 언론은 이 사건에 대한 기사를 모두 검색에서 삭제했다.



* 어두운 지하터널로 숨어봐야 소용 없다. 여긴 '그들'의 아지트다. 결코 빠져나갈 수 없다.



* 그렇게 달렸건만 내가 머물 곳은 여기구나. 밤새도록 달려 이른 새벽 도착했으나 나를 봐주는 이는 없다. 뒤에선 '그들'이 달려오고 있다. 여기서 끝이구나.

  교사 클레멘타인은 퇴근 후 소설가인 남자친구 루까를 만나러 그의 숲 속 깊은 곳의 그의 집으로 향한다. 아무도 없는 조용하고 큰 별장에서 두 사람은 둘만의 오봇하고 사랑스런 시간을 보내고 잠든다. 새벽 한 시가 넘은 시각, 클레멘타인은 학생들의 시험지를 채점하기 위해 홀로 1층 쇼파에 앉아있었으나 잠의 적막을 틈타 들리는 수상한 소리. 무시하고 남자친구의 품 속에서 잠을 청하지만 새벽 3시. 침묵을 깨는 또 다른 수상한 소리, 빛.

 드르륵. 드르륵. 드르륵. 드르륵. 도대체 어디서 들려오는 소리일까. 무슨 소리일까. 알 수 없는 소리가 커다란 집을 휘감는다. 누군지 확인하러 간다는 루까와 뒤를 다르는 클레멘타인. 아니 무슨 남자가 이렇게 겁도 없어. 아무런 무기도 지니지 않은 채 성큼성큼 계단을 내려가는 루카. 하지만 겁도 없는 건 그때뿐이다. 상황은 순식간에 돌변하여 루까는 다리에 상처를 입고 돌아오고, 손잡이는 막 돌아가고, 기분 나쁜 소리는 계속 들려오고, 밖에선 누군가 돌아다니고 있다. 한 명이 아니다! 도대체 몇명이나.

  인간의 공포는 매우 사소한 곳에서 시작된다. 악령을 소재로 하여 공포를 전해주는 <엑소시스트>나 <오멘>과 같은 작품도 있지만, 대개의 공포영화는 매우 사소한 곳에서 출발한다. 평소엔 신경쓰지도 않던 티비소리, 하지만 아무도 없는 조용한 방안에서 갑자기 들려오는 티비소리는 내겐 공포다. 삐이걱. 어릴적 아무도 없이 집에 혼자 있는 때가 있었다. 바람에 살며시 문이 열리는 것이었건만 그 소리는 나를 공포로 몰아넣었고 나는 손에 무기를 들고 조그만 우리집을 화장실, 안방, 내 방 하나하나 조심스레 문을 열고 무기를 들이밀곤 했다.

  때로 공포는 거울에서 오기도 한다. 아무도 없이 혼자 있을 때, 거울 속에 비친 나는 꼭 내가 아닌 것만 같다. 손을 살며니 내밀고 나를 향해 다가올 것만 같다. 내가 찡그렸을 때 갑자기 거울 속 내가 기분나쁘게 웃기라도 한다면?

  영화 <뎀>에서 보여지는 공포 또한 매우 사소한 부분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그것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숲 속 한 가운데 숨어있는 커다란 저택. 전화 끊기도, 전기 끊기도, 누가 현관문을 부수고, 밖에서 조명을 쏘아대고, 드르륵드르륵 이상한 소리를 내며, 갑자기 달려든다면 이 상황에서 견딜 수 있는가 누가 있겠는가.

  잔머리 굴려 저택에서 빠져나오긴 했지만 그런다고 도망갈 곳이 있는건 아니다. 달려도 달려도 숲뿐인 것을. 나는 도망치고, 그들은 쫓아온다. 여러명이 사방에서 나를 조여온다. 그들은 그걸 즐기고 있다. 내가 공포에 질린 것을 즐기고 있다. 있는 힘을 다해 달렸지만 막다른 골목이다. 아 죽는구나. 그래 죽는거다 그렇게. 공포에 질린 채로.

***

  범인은 밝혀졌다. 그리고 루마이나는 충격에 사로잡혔다. 국가적 패닉상태를 맞이했다. '그들'은 10살에서 15살의 어린 청소년들이었다. 그들은 그렇게 말했다. 왜 그랬어요? 재밌잖아요. 재미삼아 사람을 공포에 몰아넣고 찌르고 잔인하게 살해했다. 그들은 그것을 즐겼다. 살인이 목적이 아니었다. 살인은 그저 한참 재미본 뒤에 마지막에 오는 결과물일 뿐이었다. 상대를 위협하고 공포에 몰아넣고 쫓으며 상처 입히고 때로는 풀어줬다가 다시 또 쫓고. 그들은 그걸 즐겼다. 클레멘타인과 루카가 범행의 대상인 것은 두 사람이 그들에게 원한을 사서가 아니라 한적하고 고요한 곳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그들이 가는 주변에 있는 집이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산이 있기 때문에 오른다라고 누가 말했던가. 그들은 거기에 숲이 있고 거기에 집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을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 그들에게 '왜?'라는 질문은 무의미 하다. 그런 멍청한 질문도 없다. 재미인 것을 어쩌랴. 재밌는 것을 어쩌랴. 왜 라는 질문은 행위의 목적이 있을 때 성립하는 물음이다. 그들에겐 목적이 없다. 왜 라는 물음에 굳이 답변을 내놓는다면 그냥, 정도가 가장 훌륭한 대답일 듯 하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가? 사람들이 충격에 휩싸인건 그들이 어린아이들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아이들이 그렇게 교활하고 못될 수가 있는가. 세상의 때가 채 묻기도 전에 어떻게 그런 일을 저지를 수 있단 말인가. 청소년 범죄는 점차  심각해지고 있다. 전북 익산이었던가. 우리나라에서 중학교 남학생들이 한 여학생을 대상으로 집단 성폭행한 사례가 있었다. 한번이 아니었다. 그런 사례는 끊임없이 나왔다. 아버지가 돈이 있는데 안내놓는다고, 어머니가 혼냈다고 찔러죽인다. 영화 <공공의 적>에만 나오는 일이 아니다.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다. 실화다. 신문에 오르내리는 실화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가. 그래선 안되는 거다. 정말 그래선 안되는 거다. 청소년들이 저지르는 범죄는 성인의 범죄보다 더 한 경우들이 많다. 성인들은 죄를 저지르고 잘못한 것이라도 알지, 범행을 저지른 청소년들은 그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도 모른다. 그들의 잘못을 알지도 못한다. 이런 아이들을 어리다고 내보내고, 기껏해야 소년원에 잠깐 머무는 정도로 끝내서는 안된다. 사회의 책임이라고? 아니다. 사회의 탓으로 돌리지 말자. 어른들이 교육을 잘못 시킨 탓이라고? 그러지 말자. 사회에도 어른들에게도 잘못은 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그들의 잘못을 사회나 어른들의 잘못으로 환원할 수는 없다. 그들은 죄 값을 치뤄야 한다. 루마니아의 '그들' 은 다수가 풀려났고, 일부는  소년원에 있다 했다. 그래서는 안된다. 우발적인 잘못이나 실수에 대해선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이건 계획된 잔혹한 범죄다. 이유도 없다. 이유도 없이 사람을 대상으로 장난치고 데리고 놀다(?) 죽인다. 그들도 그들이 저지른 행위에 맞먹는 대가를 치뤄야만 한다.

  <뎀>은 그냥 공포영화로 끝낼 영화는 아니다. 이 영화는 그저 이미 끝난 사건에 대해 감독이 재구성하고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다. 실화다. 영화에서 보여지는 범행의 과정은 그저 '추측'일지 모르지만 내용은 '사실'이다. 사실이지만 사실이 믿어지지 않기에 너무나 충격적이기에 영화로 만들어진 것이다. 영화는 흥행을 목적으로 하고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를 원한다. 감독은 그저 있었던 일을 영상으로 만들어냈을 뿐이다. 그리고 관객에게 던져줬다. 그리고 관객들은 이 영상을 본다. 그리고 충격받는다. 이 영화는 공포영화로서가 아니라 그 사실로서 모든 이들이 봐야 할 영화다. '그들'과 비슷한 연배의 청소년들이 봐야 할 영화다. 어떻게 그렇게 잔혹할 수 있는지. 그렇게 아무런 생각 없이 그런 일을 저지를 수 있는지.

 

***

<루마니아 살인 사건의 전모>

2002년 10월 7일 오후 5시 35분 루마니아 부쿠레슈티 근교 스나고브 지역의 외진 국도에서 모녀로 추정되는 시체 2구와 심하게 훼손된 차량 한 대가 발견되었다. 차량 안에는 10대로 보이는 소녀가 목이 졸린 채 숨져 있었고, 얼마 떨어지지 않은 도로 옆의 수풀 속에서는 흉기에 난자 당한 중년 여성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사건 당일 갑자기 내린 소나기로 범인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고, 수사는 미궁으로 빠졌다.

2002년 10월 11일 오후 1시경 부쿠레슈티 경찰서로 클레멘타인이라는 여교사의 실종 신고가 접수되었다. 경찰은 실종된 여교사의 집을 찾았고, 찾아간 집안에서 진흙 묻은 여러 발자국과 혈흔을 발견, 곧장 주변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수색 결과, 집 안의 모든 전기선과 전화선이 잘라낸 듯 끊겨져 있었고, 곳곳에는 깨진 유리 파편과 핏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2002년 10월 12일 오후 3시 경 주변 수색을 펼친 지 하루가 지나 저택 부근의 숲속에 폐쇄된 지하 수로에서 남녀의 사체가 발견되었고, 두 사람은 실종 신고 된 여교사 클레멘타인과 그녀의 남자친구인 루까로 밝혔졌다. 부검 결과 두 사람은 사망한 지 5일 정도 지난 것으로 밝혀졌다.

2002년 10월 15일 경찰은 비슷한 지역에서 닷새 간격으로 시체가 발견된 것으로 미루어 동일범의 소행으로 판단, 수사망을 좁혀갔고 마침내 여교사의 집 바닥의 발자국과 주변의 증거물을 토대로 범인검거에 성공했다.

이후 경찰의 사건보고 발표로 ‘그들’이 범인이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2002년 전 유럽은 혼란에 빠졌고, 그 해 10월은 루마니아에서 잊을 수 없고, 잊혀지지도 않는 가장 충격적인 달로 기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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