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 콜드 블러드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트루먼 카포티 지음, 박현주 옮김 / 시공사 / 2006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진실 혹은 거짓, 픽션 오어 논픽션. 트루먼 카포티의 <인 콜드 블러드>를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허구를 다루는 소설의 형식을 빌어 사실을 전달해주고 있는 새로운 장르의 책이다. 간략히 줄여 '논픽션 노블'이라고 불리우는 이 기법은 저널리즘의 방법론과 소설의 작법을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소설이지만 소설로 그칠 수 없는, 저널이지만 저널로 그칠 수 없는 '글'이다.

  1959년의 미국 캔자스 주의 작고 조용한 동네 홀컴에서는 일가족이 무참하게 피살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도대체 왜. 이 작고 조용한 마을에, 더군다나 마을 주민들로부터 신망을 받고 있는 좋은 분들이 모두 살해당했다. 뉴욕타임즈의 기사를 보고 <앵무새 죽이기>의 저자 하퍼 리와 함께 이 작은 마을로 달려온 트루먼 카포티는 이곳에 머물며 사건의 진행과정을 보게된다. 그들이 이 마을에 머무는 사이 두명의 범인이 체포되었고, 그들은 두 살인자의 살인동기와 과정, 삶에 대해서 인터뷰를 하고, 보고 듣고 겪은 모든 것을 기록하였다. 음성 녹음을 통해 재생하지 않고 카포티는 오로지 자신의 기억에 의존해 사건의 시작과 끝을 엮어냈다.

  책의 분량은 가벼운 추리소설로 생각하고 읽어나가기엔 꽤나 두껍다. 본문만 526쪽에 달하는 이 소설(?)은 카포티가 이 책에서 밝히고 있듯 100% 사실만을 바탕으로 하여 꾸며진 소설이다. 있는 사실 그대로를 조합하여 하나의 줄거리가 있는, 마치 실제로 사건 현장에서 카포티가 직접 사건을 목격이라도 한 듯한 이 소설은, 살해장면이나 배경의 세밀한 묘사와 살인범들의 내면에 숨어 엿보는 듯 자세한 심리묘사로 사건의 현장감을 더해주고 있다. 마치 카포티의 눈을 빌려서 사건현장에서 그들을 몰래 지켜보는 듯 하다. 카포티는 비록 마을에 체류하며 이런저런 객관적인 정보들을 수집하고, 범인들과 인터뷰를 함으로써 풍부한 자료수집을 했다고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이미 상황종료된 사건에 대해 이만큼 실감나게 재현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으리라. 마치 영화를 보는 듯 하다.

  살인은 왜 일어났을가? 누가 이들을 살해했을까? 

  책을 읽는 내내 마치 하나의 영화를 보는 듯한, 하나의 잘 만들어진 추리소설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은 것은 비단 나 뿐만이 아니리라. 책장을 넘기면 넘길수록 더 많은 의문이 생기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더 빨리 눈을 돌리며 한편으로 머리 속에서 지금까지 읽은 내용을 가지고 나름대로 또 사건을 재결합해보며 궁금증을 해소하려 애썼다. 카포티가 그 나름대로 이 책을 쓰기 위해 자료를 수집하고 머리 속에서 사건을 연결하려했다면 나는 카포티가 내게 던져준 정보들을 가지고 내 나름대로 사건을 재구성하는 작업을 했다고나 할까.

  이 책을 통해서는 여러가지 분야의 다른 주제들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하나는 사형제도에 관해서. 사형제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반대의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과연 이와 같은 무자비한 자들에게도 사형을 면케해주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을 내 자신에게 다시 던져볼 기회를 주었다. 우리사회에서 발생하는 흉악 범죄 행위들에 대해 신문쪼가리의 작은 기사를 통해 접하게 되는 그 사건의 체감온도는 제로에서 왔다리갔다리. 그러나 현장에 있었을 피해자에게는 체감온도 200도 였으리라. 그럴 때보면 기본적으로 사형제 반대다 라는 입장은 너무나 쉽다. 내가 직접 당하지 않았으니까.

  왜 살해 당햇을까, 살인 동기가 무엇일까, 라는 질문은 사건을 체험하지 않은 자들이 당연히 갖게 되는 첫번째 궁금증이지만, 현장에 있었을 피해자들에겐 쓸데 없는 질문이라는 것. 그것은 무의미하다.  

  두번째는 앞서 이야기한 허구를 담고 있는 소설이란 장르와 객관화된 사실을 담아야 할 리포트 혹은 기사의 어울리지 않는 조합. 이런 책은 처음이었다. 아 이렇게 조합도 가능하구나 하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 책.

  세번째는 인간의 性에 관한 물음. 섹스가 아닌 성품에 관한 물음. 인간은 선한 존재인가, 악한 존재인가. 아주 오랜 시절부터 시작되어온 고리타분한 질문이지만 아직도 모를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 중 한 가지. 두 범인의 가정환경과 배경으로 보아 두 사람의 잘못이라기보다 사회의 잘못이라고 탓을 해야하는 걸까. 사회의 잘못을 인정한다면 그것은 어디까지인가, 하는 등등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

  <인 콜드 블러드>는 단순히 소설로서 내게 다가오지 않았다. 그것은 내용면에서 형식면에서 내게 많은 충격을 주었고, 새로움을 경험하게 하였다. 그리고 또 많은 주제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제공해주었다. 이 책 그 자체만으로 놓고보았을 때도 그 작품성은 인정되지만 나 개인에게 있어서도 의미있었던 책이다.

  카포티 자신은 네 살 부모의 이혼을 겪었고, 이후 어머니의 재혼으로 트루먼 카포티란 이름을 갖게 되었다. 학교를 다니다 열 일곱살에 중퇴를 했고, 신문사 사환으로 일했으며, 독특한 옷차림으로 주목을 받기도 했다고. 소설이 서서히 여러 잡지에 소개되기도 했고, 사교계에서도 한 인물 했으며, 연극, 영화, 전기, 뮤지컬에도 관심과 재능을 보였던 그다. 그리고 <인 콜드 블러드> 이 책으로 대박을 터뜨려, 그는 부와 명예를 한꺼번에 쥐게 되었다. 그러나 약물중독의 합병증으로 생긴 간질환으로 생을 마감하다. 그의 나이 61세. 다양한 일을 하며 또 사교계에서 재미도 맛보며 인생을 즐겼던 그는 작품 하나를 남겨두고 떠났다. 대개 '작품'이라 칭송받는 작가들이 사후에 그 업적을 인정받아 살아생전에 이런저런 명예와 부의 즐거움을 맛보지 못하는 반면, 그의 경우는 모든 것을 다 누리고 갔으니 후회없으리라. 영화 <카포티>에서는 저자가 직접 나서서 이 책을 집필하게 된 과정을 보여준다고 하니 카포티 개인에게 관심이 있는 사람은 - 나를 포함하여 - 영화를 보면 그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듯 하다.

  

 ***
초반에 사건이 발생하기 전까지의 각각의 등장인물들에 대한 묘사와 평온한 일상의 삶을 그려낸 부분은 지루했으나 이 역시 르포르타주로서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부분이라 생각한다. 사건 발생 이전의 그것은 카포티가 임의로 만들어낸 허구에 가까운 부분이겠지만, 그것은 뒤에 일어날 평온을 깨는 반전을 위해서는 필요한 부분이었다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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