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수, 화가에게 말 걸다
최병수.김진송 지음 / 현실문화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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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자유로운가.
그렇다면 그대는 행복한 것이다.
그대는 행복한가.
그렇다 해도 나는 그대가 자유로운지 아닌지 모르겠다.

- 김용석, 두 글자의 철학 中 -

 

  영혼의 자유를 꿈꾼다며 어디서 주워들은건 있어가지고 이런 글귀 하나 옮겨다가 내 홈페이지에 걸어놓은지도 꽤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난 안다. 내가 영혼의 자유를 꿈꿀 수는 있어도, 영혼이 자유로운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그러기엔 난 너무나 세속적이고 계산적이며 사회의 때가 묻었다. 그래서 난 영혼의 자유를 꿈꾸지만, 언제나, 영혼이 자유로운 사람이 될 수는 없다. 영혼의 자유로움은 마음의 자유로움을 전제로 하고, 마음의 자유로움은 관계로부터의 벗어남에서 시작한다. 난 너무나 많은 곳에 얽매여있고, 그곳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하지 않는다.

  최병수는 진정 영혼이 자유로운 자이다. 그는 어느 곳에 정착하지도 않으며,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일지를 신경쓰지도 않으며, 돈이나 기타의 물질에도 연연하지 않으며, 그저 한 몸뚱이 건강하게 살 수 있다면, 동시에 자신이 원하는, 또한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세계 어디든 가리지 않고 발벗고 나선다.

  그는 알고 있다. 자신이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나는 내가 누군인가를 찾기 위해 철학에 발을 들여놨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죽을 때까지 알 수 없는, 끊임없이 추구해야 하는 문제라 생각했다. 허나, 이 책을 읽고, 최병수를 접하고, 생각이 바뀌었다. 내가 내 자신이 누구인가를 안다는 것은 가능하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 최병수는 안다. 그가 누구인지를. 그리고 그가 무엇을 해야하는지를. 그는 목수이다. 그는 화가이다. 그는 철학자다.

  <목수, 화가에게 말걸다>는 목수의 인생으로 시작해 화가의 인생을 맞이한 최병수라는 사람에 대한 탐색이다. 화가의 인생으로 시작해 목수의 인생을 맞이한 김진송은 묻는다. 그와 반대의 인생을 살아온 한 살 어린 최병수라는 사람에게. 김진송은 풍요로운 가정에서 우리나라 최고 학벌이라는 서울대를 나왔고,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의 삶을 살아온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언제부턴가 그것을 버리고 그저 한명의 목수로서의 삶을 살기 시작했다. 그런 김진송이 처음부터 가난했고, 학교를 다닐 수 없었으며, 생계를 위해 안해본 직업이 없을만큼 치열하게 삶을 살아온, 그러나 언젠가부터 환경운동가, 행동주의 화가로 변신한 최병수를 만나 대화를 나눈다.   하지만 두 사람이 만나 대화를 나누는 대담집 형식으로 기획되었던 이 책은, 목수 최병수가 화가가 된 김진송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의 형식으로 바뀌었다.

  "처음 이 글을 시작할 때는 대담으로 꾸릴 생각이었다. 그러나 대담은 불가능했다. 아니 그런 형식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는 할 이야기가 많았고 나는 그에게 던져줄 이야기가 많지 않았다. 결국 이 책의 꼴은 그가 그 자신을 말하는 방향으로 선회하게 되었다. 책의 제목도 그렇게 정해졌다. 노동자였던 목수 최병수가 화가가 된 최병수 자신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말이다. '목수, 화가에게 말을 걸다'는 그런 뜻이다. 그를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되도록 내 목소리를 내지 않으려 했다. 그의 이야기를 끌어내기 위해 짐짓 침묵하고 때로 화를 돋우며 때로 맞장구를 치며 거든 게 내 일이었다."

  '목수, 화가에게 말걸다'는 그렇게 탄생했다. 제목은 두 가지를 의미한다. 하나는 앞서 이야기한 목수 김진송이 화가 최병수에게 말을 거는 것이요, 하나는 방금 김진송이 밝혔듯 애초 목수였던 최병수가 화가가 된 최병수 자신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다. 김진송은 그런 두 최병수를 매개해주는 역할을 해준다.

  최병수는 매우 할 말이 많은 남자다. 그는 한때 여자친구가 있긴 했지만 - 그 여자친구는 어떤 사람일지 궁금하다 - 결혼하지도 않았고, 부인도 없으며, 아이도 없다. 그는 언제나 혼자였다. 어린시절 부모님과 형제가 있긴 했지만, 그는 언제나 혼자였다. 홀로 공부하고 홀로 돈을 벌며 삶을 배웠다. 어린나이에 학교를 그만두고 생계전선에 나선 것은 그로하여금 더 많은 삶의 공부를 하도록 했는지도 모른다. 공부란 모름지기 책상 앞에 앉아하는 것이 아니라 몸을 움직임으로써 하는 것이다.

   군부독재시절 어느 날 번쩍 목수에서 화가로 탈바꿈한, 그것도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화가로 탈바꿈한 그는 어느날 자신을 돌아보니 환경운동가가 되어있었다.

  "목수보다는 화가라고 말하는게 더 그럴듯하고 기분 좋은거 아니냐고? 그런건 없었어. 나도 세상 물 먹은 사람인데 그런 게 별거 아니라는 건 알지. 그래서 둘이서 30분을 버티고 앉아있었어. 그 형사도 이상한 고집을 피우대. 나를 화가로 적지 못하면 자기도 못나가고 나도 못 나간다는 거지. 그렇게 서로 버티다가 우스운 생각이 들었어. 저쪽에서 친구들이 담배를 피우며 기다리고 있기도 했고, 그래서 어차피 별 것 아니니까 "그럼 마음대로 하시오" 그랬더니 형사가 조서에 '화가' 이렇게 찍었지. 그래서 사람들이 농담을 섞어서 나보고 관제화가라고들 했지. 나를 화가로 만든 건 경찰서야. 난 정부가 인증한 공식화가라고."

  최병수는 어쩌면 그 형사에게 고마워해야 할런지도 모른다. 목수에서 화가로 강제로 직업이 바뀌어버린 그는 사다리 짜주고 못질만 하다가 "그거 개나리요? 아니 왜 진달래는 없소?" 라는 딴지 하나로 진달래 한 송이 그림으로써 화가로 데뷔하여 <한열이를 살려내라><노동해방도><장산곶매><펭귄이 녹고 있다><떠도는 대륙><야만의 둥지> 등의 그림을 그리며 점차 자신의 영역을 넓혀나갔다. 그러나 그것은 그가 자신의 출세를 염두에 둔 계획된 행동이 아닌 그저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을 찾아 떠돌다 얻게 된 결과일 뿐이다. 미술대학은커녕 중학교로 제대로 졸업하지 못한 그는 어엿한 화가가 되었고, 제 5회 교보 생명 환경문화상 환경문화예술 부문 대상을, 2004년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민족예술상 개인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이런 감투들이 그에게 무슨 쓸모가 있으랴. 욕심 하나 없는 그는 그저 자기가 할 일을 열심히 했을 뿐인 것을.

  1960년생인 그의 나이 이제 서른 일곱. 아직 젊디 젊은 나이다. 하지만 그는 정말 치열하게 삶을 산 덕 분에 그의 나이에 걸맞지 않은 일들을 해냈다. 평균 수명의 반도  살지 않은 그가 앞으로 또 어떤 일들을 벌여나갈지 세계 어느 곳에서 활약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마도 그 자신도 자신의 앞으로의 삶에 대해서 알 수 없으리라. 그는 언제나 계획되지 않은 삶을 살았고, 정처없이 떠돌았다. 유목민은 나에겐 꿈이지만, 그에겐 현실이다. 그런 그가 이제는 정착하고 싶다 한다. 주민등록도, 의료보험도 없는 그가 이제 주소지를 정해놓고 정착하고 싶다 한다. 순박하고 깨끗한 아이들을 가르치며 살고 싶다 한다. 화가가 되기 전까지 19개의 직업을 전전한 그는 이제 화가에서 교육자로 옮겨가고 있다. 또 모른다. 교육자에서 언제 무엇으로 옮겨갈지는. 그의 삶에 박수를, 그의 자유에 박수를 보낸다.

  "이 책을 마무리하면서 그는 그가 내뱉은 말들 중에서 거두어들이고 싶어 하는 이야기들이 적지 않았다. 혹시 자신의 말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상처받거나 함께 일해 왔던 사람들에게 누가 될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런 부분에 대해서도 짐짓 모른 척 했다. 나는 그의 말을 다듬고 내 글을 덧붙이면서 하나의 원칙을 적용하려고 했다. 그건 솔직함이다. 때로 사실과 감정과 논리가 거칠게 드러나고 논리적 모순과 감정의 충돌이 그대로 표출 될 수 있다. 또한 솔직함은 객관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객관을 앞세워 논리의 균형을 맞추고 시각의 틈을 조정하며 주변의 정황이 고려되는 타협은 이 글의 원칙을 벗어난다. 그러니 너무 많은 분노를 드러내고 험악스러운 말이 많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 글에 허물이 있다면 그가 아니라 그를 바라보는 원칙을 허물고 싶지 않았던 나의 탓이다. 하지만 적어도 최병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로 인해 그에 대한 신뢰를 벗어버리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믿는다. 왜냐하면 최병수의 투명하고 솔직한 행동거지가 그를 미워하고 동시에 사랑하게 되는 이유라는 것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김진송의 말마따나 최병수의 솔직함은 그의 삶의 바탕이 되었고, 행동의 실천으로 옮겨졌으며, 사람들로부터 미움과 사랑을 동시에 받는 근본이었다.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고 해서 그의 말이 잘못되었다, 틀렸다 라고 말 할 수는 없다. 그가 거침없이 내뱉는 말들은 논리를 벗어나 삶에 천착하고 있고, 그것은 그 어떤 논리보다 현실적이고, 옳음을 지향한다. 마음을 비우고 그를 접하자. 이 책을 읽기전 난 최병수가 누구인지 몰랐다. 소개글을 보고 아 화가구나 싶었다. 그러나 난 지금 인간 최병수를 만났다. 그리고 그가 너무나 존경스럽다. 그리고 내가 너무나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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