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답게 사는 즐거움
이덕무 / 솔출판사 / 1996년 7월
평점 :
절판


 이 책이 절판 된 것은 매우 유감이다. 인터넷 서점에 '절판'이라고 뜬다고 해서, 오프라인 서점에도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절판'이라는 빨간 두 글자는 한국의 학술과 출판 문화를 대변하는 듯 해서 안타깝다. 대학원 과제 때문에 접하게 된 책이지만, 그래서 도서관에서 빌려본 책이지만, 책을 읽고나서 이 책을 구입하고 싶어졌다.

  '사소절' 이라고도 칭해지는 <사람답게 사는 즐거움>은 조선시대 선비 이덕무가 쓴 책이다. 이 책에서 그는 어린이의 예절과 여성의 예절, 선비의 예절에 대해 몇몇 덕목으로 나누며 각자가 어린이답게 살기 위해, 여성 답게 살기 위해, 선비 답게 살기 위해 지켜야 할 덕목들이 무엇인가를 알려준다. 이것은 그들이 사람답게 살기 위한 도덕지침이다. 조선시대 도덕교과서라고나 할까.

  조선시대 유학자가 쓴 도덕교과서인지라 우리가 얼핏 알고 있듯 남녀차별이 드러나는 지침들도 있고, 지나친 형식과 격식을 차리며 엄격함을 유지하라는 지침들도 많이 눈에 띈다. 각 항목들의 지침은 지나치게 구체적이고 또한 엄격함을 요구하고 있어 그대로 실천하기는 매우 어렵다. 만일 이대로 실천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정말 도의 경지에 도달한 자이다. 모든 사람이 이 책의 지시에 따라 산다면 그 사회는 더없이 평화롭고 조용한 사회가 될 것이다. 행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러나 그것을 그대로 행하지 않더라도 그 안에 들어있는 마음가짐만은 우리가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그 몇몇 대목을 가볍게 살펴보자.

 어린이의 예절에 관한 대목의 일부분이다.

 17절
교활한 자제에게는 글을 익히게 해서는 안된다. 지혜를 넓혀주면 반드시 도적이 된다. 날뛰는 자제에게는 무술을 배우게 해서는 안된다. 포학을 길러주면 반드시 사람을 죽인다.

  될성부른 나무는 새싹부터 알아본다고 교활한 어린이에게는 글을 익히게 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이 대목에서 정말 동감. 동감. 나의 평소의 교육에 관한 생각과 일치한다. 싹쑤가 노란 놈은 애초 배우지 말아야 한다. 지능이 높고 공부에 소질을 보인다고 해서 고등교육을 시켜서는 안된다. 싹쑤가 노란 놈은 애초 잘라내야한다. 교활한 자가 교육을 받으면 기필코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자로 자라난다. 매일같이 신문을 도배하는 온갖 범죄기사들에서도 볼 수 있듯 배운놈들이 문제다. 그러나 '배운놈들이 문제다' 라는 문장에서 '배운놈' 앞에 놓이는 수식어는 '교활한'이다. 배운놈이 다 문제는 아니다. 심정이 바른 배운놈은 사회에 기여한다. 허나 심정이 바르지 못한, 교활한 배운놈은 거꾸로 사회에 악을 불러온다. 어릴 때 교활함이 눈에 보인다면 배움을 중단하고 그 교활함을 잘라내야 할 것이다. 오늘날의 교육은 교활한 놈이건, 바른놈이건 다 똑같이 배운다. 돈있는 놈은 더 배우고, 돈없는 놈은 덜 배운다. '교활함'이 교육의 기준이 아니라 '돈'이 교육의 기준이다. 이건 아니다.

  다음 대목은 여성의 예절에 관한 부분이다.

24절
상추쌈을 입에 넣을 수 없을 만큼 크게 싸서 먹으면 부인의 태도가 크게 아름답지 못하니, 매우 경계해야 한다.  

15절
남자를 엿보고 그가 살쪘느니 여위었느니, 잘생겼느니 못생겼느니 평론하지 말라. 그런 행동은 남자가 여색을 이야기하는 것과 어찌 다르겠는가?

 아주 사소한 부분까지도 지시를 내려주고 있다. 상추쌈을 먹을 때 크게 싸먹지 말 것이며 이를 '매우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남자를 보고도 평을 해서는 안된다. 오늘날처럼 지나가던 여성이 "어 쟤 몸 좋은데?!" "야 근육 한번 만져보자" "키크다" "얼굴이 무기다" "배가 남산만하네" 등의 평가를 내려서는 안된다고 한다. 남자도 여색을 이야기해서는 안되지만, 여자 역시 남자를 평가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옛사람이나 지금 사람이나 지나가던 아리따운 여성을 보고, 또 잘생기고 멋있는 남성을 보고, 속으로 감탄하고 평가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이것을 겉으로 표현해서는 안된다고 하니 얼마나 답답할고. 이쁜 것을 향해서는 이쁘다, 멋있는 것을 향해서는 멋있다 표현하는 지금의 자유로움이 난 더 좋고나.

  마지막으로 선비의 예절 부분을 조금만 살펴보면,

25절
책을 읽을 때는 손가락에 침을 묻혀서 책장을 넘기지 말고, 손톱으로 줄을 긁지도 말며, 책장을 접어서 읽던 곳을 표시 하지도 말라. 책머리르 말지 말고, 책을 베지도 말며, 팔꿈치로 책을 괴지도 말고, 책으로 술항아리를 덮지도 말라. 먼지 터는 곳에서는 책을 펴지도 말고, 책을 보면서 졸아 어깨 밑에나 다리 사이에 떨어져서 접히게 하지도 말고, 던지지도 말라. 심지를 돋우거나 머리를 긁은 손가락으로 책장을 넘기지 말고, 힘차게 책장을 넘기지도 말며, 책을 창이나 벽에 휘둘러서 먼지를 떨지도 말라.

  이런. 지금 나 같이 책을 읽어서는 안된단다. 손가락에 침을 묻혀도 안되고, 손톱으로 줄을 긁지도 말며, 책장을 접어도 안되고, 책머리를 말지도 말것이고, 베지도 말 것이고, 괴지도 말 것이다. 어렵다. 책을 자기 서방님과 아내와 같이 섬기라는 말일진대, 나 같이 책을 접기도 하고, 베고 자기도 하고, 괴기도 하고, 밑줄을 긋기도 하고, 가끔 메모를 하기도 하는 자는 책을 소중히 다루지 않는 것이 된다. 선비로서의 자세가 아니라 한다. 선비가 아닌 것은 맞지만 나는 지금과 같이 책을 읽는 것이 더 좋소이다. 그게 더 책을 아끼는 자세라 생각하오이다.

61절
내가 가지고 있는 기물이나 서책을 남이 와서 빌리거든 인색하게 굴지 말고 빨리 빌려줄 것이다. 내가 그 사람에게 빌릴 때 그 사람이 혹시 빌려주지 않거든 성내서는 안되고, 후일에 그 사람이 또 와서 빌리거든 또한 그전에 빌려주지 않았다고 해서 같이해서는 안된다. 만일 부형이 빌려주지 않으려 할 경우엔 처음에 반드시 부형에게 여쭙고, 여쭈어도 끝내 들어주지 않거든 굳이 남에게 빌려주어서는 안된다. 그리고 "부형이 빌려주지 않으려 한다"고 말할 필요는 없다.

64절
남의 책을 빌렸을 경우, 다 읽고 나면 마땅히 먼지를 털어 차례대로 정돈하여 보에 싸서 돌려보내야 한다. 법서를 빌려 임모할 경우에는 다른 책보다 훼손되기 쉬우니 더욱 정성을 들여 보호해야 옳다.

68절
갚을 때의 마음이 빌릴 때의 마음과 완급의 차이가 있어서는 안된다.

남이 내게 빌림을 요청할 때는 재빨리 빌려줄 것이며, 내가 남에게 뭔가를 빌릴 때는 지나치게 요구하지 말 것이다. 나에게 엄격하고, 남에게 관대하라 라는 지침이다. 갚을 때의 마음이 빌릴 때의 마음과 완급이 차이가 없어야 한다는 말은 정말 새겨들어야 한다. 빌릴 때는 내가 궁하여 숙이고 들어가고, 갚을 때는 빌린지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시간개념없이 허송세월하다 상대의 수차례의 요구끝에 돌려주는 이런 불성실함을 보여서는 안된다. 나는 누군가에게 뭔가를 거의 빌리지 않으니 합격이요, 남이 요구할 때 비록 꺼려하기는 하나 쉬이 빌려주니 합격이다. 허나 나의 기본적인 생각은 빌려주지도 말고, 빌리지도 않는 것이 가장 최선이라 생각한다. 물건이든 돈이든 뭔가가 오고 가다 보면 어느 한쪽은 걱정하고, 어느 한쪽은 성실치 못한 태도를 보이기 마련이며, 인간관계에 해가 된다고 본다.

  사소절의 그 어느 한 대목도 쉽게 봐서는 안된다. 비록 자유로운 지금 이 시대가 아닌 엄격함과 자기절제가 요구되는 유교 사회에서의 도덕 지침이라고 하나 그 자세와 마음가짐만은 오늘날도 지켜나가야 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기본 에티켓이 될 터이다. 도덕적이 되려고 노력하지는 못할 망정, 사람간의 기본 예절도 되어 있지 않는 사람들이 매우 많다. 나 또한 부족한 점이 많다. 이 책은 그런 사람들이 곁에 두고 자주 펼쳐보아야 할 기본서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