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깊은 이성 친구 (작은책)
장 자끄 상뻬 글 그림,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5월
품절


그때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나는 언어의 신뢰성이라는 문제에 대해 갈피를 잡을 수 없게 된다. 낸시를 만났을 때, 나는 그녀에게 홀딱 반해서 이런 말을 되뇌곤 했다. <이런 사람이 세상에 존재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어.> 그녀가 가혹하다 할 만큼 홀연히 나를 버리고 떠났을 때, 나는 <이런 사람이 세상에 존재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어>라고 되뇌다가, 예전에도 내가 그와 똑같은 말을 했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34쪽

그녀는 내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자기가 알아야 할 게 하나있어. 당연한 얘기지만 나는 자기를 만나기 전에 하나의 삶을 살았어. 그것을 하나의 삶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말이야. 하지만 심각한 일은 아무것도 없었어. 이젠 모든 게 그림자로 여겨질 뿐이야. 어쨌든 당신만한 남자는 단 한 사람도 없었어.>-42쪽

나는 집안에 틀어박혀 지냈다. 실연의 아픔은 홀로 견뎌야 한다. 실연의 아픔이란 참으로 묘한 것이다. 그것은 얼굴의 특성까지도 바꾸어 놓는다. 내 얼굴은 수척해졌다. 그러자 내 표정이 진중해 보였고 심오한 분위기 마저 풍겨 났다. 그 달라진 인상에 나 자신이 놀라곤 했다. 그건 그다지 놀랄 일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그녀가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자기는 슬픔에 젖어 있을 때면, 얼굴이 수척해 지고 눈길이 내면으로 쏠려 있는 것처럼 보여. 그 눈길은 불가항력으로 사람의 마음을 빨아들여.> 불가항력으로 사람의 마음을 빨아들인다는 말이렸다......
그런 얘기는 비단 그녀만 한 것이 아니었다. 로랑스도 내게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었다.
실연의 아픔은 홀로 견뎌야 한다. 하지만 집 안에 틀어박힐 필요는 없다. 오히려 사람들 속에 있을 때 자기가 혼자라는 느낌을 더욱 뼈저리게 실감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7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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