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류시화 지음 / 푸른숲 / 1991년 9월
평점 :
절판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을 먼저 접하고,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를 뒤에 접했다. 내가 이 책을 구입했을 때가 아마도 99년쯤 인 듯. 대학 2학년 이었을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들어온 나는 한동안, 꽤 오랫동안, 쑥맥이었다. 좋아하는 여자 앞에서 좋아한다 말도 못하고, 가슴 속으로 앓아야했던 바보 같은 놈이었다. 어쩌다 좋아하는 여인이 나와 함께 있을 때는, 말도 제대로 못하고 그저 마음 속으로 만족했던 그런 때, 채이기도 많이 채였지. 모든 걸 다 떠나서 그렇게 말도 제대로 못하는 넘을 어떤 여인이 좋아하겠는가. 그래서 혼자 가슴앓이 하면서 - 뭐 채인게 대단한 건 아니었다. 호감이 있어 데이트 했고 조심스럽게 소극적으로 좋아한다 말했다가 상대의 별로 인 반응, 뭐 그런거 - 나름대로 분위기 잡고 아픔을 달랜답시고 음악도 듣고 조용히 글도 쓰고 그랬던 때가 있었다. 이런 청승맞은 넘.  

  이 시집은 아마 그때 산게 아닌가 싶다. 지난 세월의 흔적으로 별로 읽지도 않았던 책이 먼지가 쌓이고 때가 묻어 약간 거멓게 변했다.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제목만으로도 참 가슴 울컥 하게 만든다. 사랑하는 이가 곁에 있다는데 왜 그대가 그리워. 이해가 안갈 법도 하지만, 이해 간다. 그 느낌 안다.

 

   
물 속에는
물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는
그 하늘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내 안에는
나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 있는 이여
내 안에서 나를 흔드는 이여
물처럼 하늘처럼 내 깊은 곳 흘러서
은밀한 내 꿈과 만나는 이여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사랑하는 이는 나의 마음 속에 들어가 있지만, 그대는 내 곁에 없다. 그대는 분명 내 곁에, 내 마음 속에 있지만, 그대는 내 곁에 없다.  

  이 시집에 담겨있는 시들은 참 우울하고 슬프다. 참고 또 참고 끝내 못참고 가슴 울컥하며 눈물 한 방울 뚝 떨어질 것만 같은 시들이다. 사랑해서, 그리워서, 보고싶어서, 하지만 그래도 참았다. 참고 참았는데 그래도 난 당신이 그립다. 사랑의 아픔을 달래기 위한 딱 좋은 시다. 사랑하는 이로부터 거절당했을 때, 사랑했던 옛 여인의 향기가 그리울 때, 어둑어둑한 방안에 달랑 스탠드만 켜놓은 채 쭈그리고 앉아 한 편 시를 낭독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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