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
류시화 지음 / 열림원 / 199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시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건 내가 시를 즐길줄 모르기 때문이다. 내가 제도권 교육에서 받은 시 교육은 일단 시를 외운다, 그리고 시를 분석한다, 이 시는 언제 누가 어떤 의도로 지은 시이고, 어떤 시대적 배경을 안고 있으며, 따라서 그 시는 이 문장 안에서 이런 의미를 지닌다, 형식은 수미쌍관 구조를 갖추고 있다, 라는 시를 느끼는 것이 아닌 시를 분석하고 해체하는 작업만을 배우는 것이었다. 내가 시를 즐길 여유는 없었고, 대학까지 졸업한 이 마당에도 나는 시를 즐길 줄 모른다. 그래서 내 책꽂이에는 시집이 거의 없다. 딱 세 권이 있는데, 둘은 류시화 시인의 것이요, 하나는 이수영 시인 전집이다. 개인적으로 이수영 시인의 '풀'이란 시를 좋아해서 그의 전집을 사버렸다. 그러나 읽진 않았다. 그저 내가 좋아하는 유일한 시인의 책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 나의 마음은 뿌듯하다.

   류시화 시인의 두 권,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은 워낙 유명한 시집이고, 자주 인용되기 때문에 도대체 어떤 시이길래 그럴까 하고 궁금증에 사본 책이다. 아마도 앞의 것은 내 돈주고, 뒤의 것은 선물로 받은 듯 하다. 그러나 이 두 시집 역시 다 읽진 않았다. 시라는 것은 천천히 음미해가며 읽어야 하는데, 난 시집을 마치 처음부터 끝까지 무슨 소설 읽듯이 읽어버리려고 달려든다. 그러면 안된다는 걸 알기에 처음에 그러다 말았다. 가끔씩 꺼내어 임의로 한 페이지를 펴고 읽고 다시 꽂아두는 식으로 읽어나가는데 훨씬 나을 듯 싶다. 하지만 이 또한 잘 되지 않는다. 그 '가끔씩'이라는 적당한 때가 거의 없기 때문에.  

 시는 마음의 평안을 얻기 위해 읽지 않나 싶다. 그런데 내가 어떤 상황에 처해있을 때 어떤 시가 가장 적합할지는, 시를 많이 읽어보지 않고서는 모른다. 마치 음악을 많이 들어봐야, 내가 우울할 때, 내가 기분이 좋을 때, 슬플 때 듣는 적당한 음악들을 골라낼 수 있듯이.  

  류시화 시인의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 너무나 유명하다. 이 시집 안에 들은 동명의 시 때문에 이 시집은 너무나 유명해졌다.  

 

  외눈박이 물고기처럼 살고 싶다
  외눈박이 물고기처럼
  사랑하고 싶다
  두눈박이 물고기처럼 세상을 살기 위해
  평생을 두 마리가 함께 붙어 다녔다는
  외눈박이 물고기 비목처럼
  사랑하고 싶다

  우리에게 시간은 충분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만큼 사랑하지 않았을 뿐
  외눈박이 물고기처럼
  그렇게 살고 싶다
  혼자 있으면
  그 혼자 있음이 금방 들켜 버리는
  외눈박이 물고기 비목처럼
  목숨을 다해 사랑하고 싶다

 

  류시하 시인의 시에는 그의 삶이 녹아있다. 어느 시인들 안그렇겠냐만은 정말 시를 쓰기 위해 쓴 것처럼 보이는 시들이 많다. 내가 시를 많이 읽어보진 않았지만 서점에서 들춰보고 느낀 바로는. 그는  한국일보를 통해 정식으로 등단한 시인이지만 다른 시인들처럼 문단에 붙어 살진 않았다. 대개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사람들은 시인이건 소설가건 그 패거리를 만들어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류시화 시인은 그러지 않았다. 문단에 거리를 두고 홀로 여행하며 사색하며 시를 쓴다고 한다. 자기 자신의 삶에서 나오는 진짜 시를  쓰는 것이다. 그래서 시는 잘 모르지만 류시화는 괜찮다. 그가 많은 대중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그의 시가 진솔하기 때문일 것이다.  

  앞으로도 나는 시를 잘 읽지 않을 것이다. 시를 즐기는 것은 누가 강요해서 된다고, 내가 그러고 싶다고 해서 되는 것은 아닌 듯 하다. 자연스럽게 저절로 언젠가 시가 좋아질 날이 있으리라 믿으면서 이대로 살아가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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