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륜과 남미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5년 8월
장바구니담기


현대인은 많은 사람을 만나니까, 연애를 하지 않기가 오히려 더 어렵다. 특히 쌍방이 일 때문에 바쁜 경우에는 불륜도 쉬 오래간다. 환경 탓으로 돌리고 있는데, 바로 그 환경이 이런 연애를 가능하게 하는 한, 환경에도 책임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어쩔 수 없는 일이 벌어져서...... 예를 들어 나 또는 부인이 임신을 하거나 부인의 부모가 죽거나 내가 다니는 회사가 망하거나, 그런 외적인 힘이 가해지면 사태가 변하겠지, 하고 생각했다. 아직은 젊고 어린 마음이 어떤 외적인 힘에, 진짜 인생의 무게에 다소 변하지 않을 수 없는 순간이 오겠지 하고 생각했다. 어린애 같다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성장의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을 뿐이었다. 그때의 자신을 생각하고, 어떤 식으로 받아들일지를 믿고, 맡기려 했다. 특히 현대에는 연애나 결혼이나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다. -23쪽

나는 전혀 불륜 체질이 아니었다. 자기 체질이 아니라는 것은 해보지 않고서는 잘 모른다고 하는데, 정말 그랬다. 토요일 아침에 그 사람이 돌가가면 늘, 아침 햇살 속에 떠다니는 빛나는 먼지의 입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생각했다. 방금 전까지 똑같은 맛의 커피를 마셨고, 같은 접시에 담긴 계란 프라이의 맛을 놓고 얘기를 나눴는데, 지금은 없다. 아까 틀어놓은 CD도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이미 연락을 취할 수도 없다. 이런 상태는 죽음과 거의 다르지 않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 외로움의 껄끄러운 질감이 나는 그저 거북할 뿐이었다. -51쪽

나는 젊은 사람과도 몇번 사귄 적이 있지만 그 활기를 견딜 수가 없었다. 아무리 즐겁게 시간을 보내도 내 관심은 유리창에 비친 어둠과 날아가는 새가 하늘에 녹아드는 모습과 나방이 날개를 퍼덕거리며 바람을 견디는 모습에 옮아가고 말았다. 처음에는 그런 나의 마음을 따스하게 감싸주던 사람들도 끝내는 "당신과 있으면 쓸쓸하고 따분해져."라면서, 또는 말하지는 않아도 말하고 싶어 하며 떠나갔다. -95-96쪽

슬픔이란 결코 치유되지 않는다. 단지 엷어지는 듯한 인상을 주어 그것으로 위로 삼을 뿐이다. -123쪽

혼자가 아닌 여행의 가장 좋은 점은 이렇게 고독을 까맣게 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책임질 것은 자신의 목숨뿐, 늘 지니고 있는 것을 하나도 갖고 있지 않은데 혼자가 아니다. 이렇다 할 것 없는 가장 평범한 시간을 이렇게 공유할 수 있다. -154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