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열정
아니 에르노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01년 6월
평점 :
절판


 

  이것을 소설로 볼 것인가, 아니면 불륜에 관한 자서전으로 볼 것인가? 분명 '장편소설'이라는 딱지를 달고 있지만, 이것을 소설로 보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다. 소설이라는 것은 허구가 들어가야하는데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에서는, 물론 내가 그것을 구체적으로 알아낼 수는 없지만, 허구가 있을까 싶다. 그녀는 정말로 유부남과 바람을 폈고, 바람핀 동안에 자신이 느끼고 겪은 이야기들을 고스란히 활자를 통해 풀어냈다.

  한 대사관에서 근무하는 외국인. 그에게는 부인이 있다. 그는 그녀에게 연락을 취하고, 그녀는 그가 자신에게 연락해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그녀가 그에게 연락할 수는 없다. 왜냐면 그것은 내가 그와 바람을 피고 있다는 사실이 발각될 위험을 높이는 것이며, 그리되면 그는 불안할 것이고, 만에 하나 그의 부인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도 그녀도 성치 못할 것이고, 그와 그녀의 만남은 여기서 쫑 날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이라는 이름 하에 저지르는 이 불륜행각의 불행한 끝은, 그녀에게 치명적이다. 그보다는 그녀가 더 사랑하는 듯 하다. 사랑? 그것이 사랑인지 아닌지는 모른다. 나는 정식으로 결혼을 했고, 서로에게 남편과 아내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사랑이 아닐 수도 있다고 믿는 사람이며, 반대로 소설(?)과 같이 어느 한 쪽이 결혼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외간 남정네 혹은 외간 여편네와 바람을 핀다고 해서 그것을 사랑이 아니라도 말할 수도 없다고 믿는 사람이다. 따라서 작가 아니 에르노가 실제로 대사관 외국인을 사랑했는지 어쨌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녀만이 알겠지? 아니 그녀도 모를까?

  그러나 책을 통해 내가 느낀 바로는, 그녀는 그를 사랑하기보다는 집착했다. 또 그녀 또한 그와 헤어지고 시간이 어느정도 흐른 뒤 스스로가 인지를 한 듯 하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이 'passion simple' 이 되지 않았을까? 그녀가 그것을 알고 있기에. 사랑은 아니었다. 집착이었고 쾌락이었다. 두 사람은 쾌락을 즐기기 위해 만났다. 그것도 나쁘진 않다. 두 사람의 합의 하에 서로 쾌락을 탐닉한다면 그것은 나쁘지 않다.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하지만 소설 속 두 주인공, 아니 에르노와 대사관 외국인은 전제조건을 성립시키지 못했다. 두 사람의 합의하에 쾌락을 즐겼지만, 한쪽은 기혼자였다. 결혼에 대한 책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유부남을 꾀어냈고, 유부남은 그녀와 바람을 폈다. 그렇다면 두 사람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이 소설은 소설의 형식을 취하지 않는다. 많은 소설가들이 실화를 바탕으로 하여 허구를 추가해 소설을 쓰긴 하지만, 이 소설은 전부가 허구가 아닌 진실 뿐이다. 아니 에르노라는 작가는 항상 진실된 이야기만을 쓸 것이라 했다지 아마. 한 대학의 교수이자 작가인 이 여자가 연하의 유부남과 바람난 사건을 스스로 고백한 이 책. 이 사실이 알려지고도 그녀가 대학의 교수직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가능하다. 프랑스니까. 우리나라라면 문제는 다르겠지만. 마광수 교수가 실화가 아닌 야한 소설을 썼다가 사회의 질타를 받은데 비하면, 프랑스의 그녀에 대한 관용은 칭찬받을 만하다. 개인의 불유쾌한 사생활이 발각되었다고 해서 교수직을 박탈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 아 또 하나 작년인가 한 신학대 교수가 원조교제를 하다 발각되었는데 바로 교수직을 박탈당했다지? 이 경우는 좀 다른가? 왜냐면 신학대 교수이기 때문에? 소설을 쓰고 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치는 교수에 대한 관용과 신학을 가르치는 교수에 대한 관용, 과연 다르게 해석해야 할지는 모르겠다만, 판단을 유보하고라도 우리 사회가 관용의 정신이 부족한 것은 확실하다.

  이 책 이후에 그녀는 33살 어린 또다른 대딩과 이와 같은 행각을 되풀이 했다고 하는데, 흠 기대된다. 그 이야기는 그녀와 쾌락을 즐긴 프랑스의 또다른 작가 필립 빌랭의 소설 <포옹>을 통해 살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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