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후에 오는 것들 - 츠지 히토나리 사랑 후에 오는 것들
츠지 히토나리 지음, 김훈아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5년 12월
평점 :
품절


 

  뻔하디 뻔한 연애소설. 연애소설이란게 다 그렇다. 뻔하고 뻔한 이야기들을 우려먹고 또 우려먹는 게 연애소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극장에서 매년 몇편씩 상영되는 멜로영화를 보고, 매년 수도 없이 쏟아지는 연애소설을 골라 읽는다. 왜냐면. 연애는 언제나 현재 진행형이니까. 또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사항이니까.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은 <냉정과 열정 사이>로 익히 알려진 츠지 히토나리와 우리나라 소설가 공지영씨가 서신을 주고 받으며 만들어낸 또하나의 합작품이다. 츠지 히토나리는 <냉정과 열정 사이> 를 통해서도 일본의 에쿠니 가오리라는 소설가와 함께 이와 같은 형식의 연애소설을 쓴 바 있다. 한쪽은 남자의 시선으로, 한쪽은 여자의 시선으로, 둘이 함께 경험하고 겪은 연애사를 풀어낸다. 남자의 그것과 여자의 그것은 분명 다를 것이며, 두 사람 사이에 문제가 생겼다면 그것은 두 사람이 함께 겪은 일에 대한 각자의 관점과 생각이 달랐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하나의 줄거리를 가지고 있는 연애소설을 두 사람이 남자와 여자의 편에서 해석하고 풀어본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

  이 소설은 책으로 나오기 전에 한겨레 신문사의 지면을 통해 소개된 바 있다. 하지만 그 때 신문에 실렸던 제목은 소설의 제목과 달랐다고 한다. 본인 한국일보를 보는지라 한겨레에서 어떤 제목을 달고 나왔는지는 모르겠다. 찾아보면 또 알 수 있으련만 그것은 나의 귀차니즘을 배반하는 일이다.

  소설이 씌여지기 전부터 '한일 양국의 우호관계를 위함'이라는 역사적 사명(?)을 띠고 기획된 소설이기에 소설 속 두 남녀 주인공은 한국와 일본을 오간다. 한국인 여자 홍, 일본인 남자 준고. 준고는 작가이고, 작가로  성공하기 전 출판사에 근무하는 일본여자 칸나를 사귀었다. 하지만 칸나는 준고를 찼고, 준고는 이후 한구여자 홍과 교제했다. 그러나 7년의 세월이 흐르고, 칸나는 준고에게 다시 돌아오려하고, 준고는 돌아가려 하지 않는다. 준고가 7년의 세월을 걸쳐 좋아했던 여자 홍은 그녀를 좋아하는 또다른 남자로부터 청혼을 받았다.

   소설은 커다란 사건으로 극적인 반전을 이루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저 잔잔하게 묵묵히 이야기를 진행시킬 뿐이다. 그래서 대단한 기쁨과 환희, 슬픔과 이어지는 눈물을 경험하지는 못했다. 허나. 이 소설을 읽으면서 준고와 칸나가 주고 받는 대화, 준고와 홍이 주고 받는 대화 속에서 나의 지난 기억들이 아련히 떠오르며 잠시나마 그때의 우리의 상황과 참 비슷하구나 하는 느낌을 받을 수는 있었다.

  "행복과 같은 양만큼이의 불안도 있었다. 그 불안을 뛰어넘을 수 있느냐 없느냐는 행복의 질에 달려있다. 그날 내 곁의 홍이는 틀림없이 행복 안에 있었다. 행복은 평생 이어지는 것이라고 그 날의 우리 두 사람은 믿으려 했다." (P70)

  준고과 홍은 함께 있는 그 순간 행복했다. 그러나 지금의 행복에 대한 불안을 각자의 가슴 속에 느끼고 있었다. 모든 연애가 그렇다. 모든 사랑이 그렇다. 함께 있는 순간 이 사람과의 영원한 행복을 꿈꾸지만 가슴 한편에는 정말 영원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내재하고 있다. 그것은 불안으로 그치지 않는다. 시간이 흐르고, 다투는 일이 잦아지고, 서로의 마음이 멀어졌음을 느끼며, 불안감은 현실로 마주한다. 그리고 두 사람에겐 이별이 찾아온다.

"헤어져야만 하는 이유를 분명하게 말해 주지 않으면 난 앞으로 살기 힘들거야."

"널 사랑할 수 없게 된 것 뿐이야. 더 이상의 이유는 없어."

"이유는 나도 몰라. 갑자기 식어 버렸어. 더 이상 널 사랑할 수 없다는 느낌이 든 것 뿐이야. 그런 느낌 또한 진실이고."

"그건 말도 안돼."

"그래. 준고. 말이 안돼. 이런건 이유가 없으니까. 누군가를 사랑하는 건 말로 설명할 수 있는게 아니고, 또 더 이상 사랑할 수 없게 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야."

(P114-115)

  준고과 칸나는 그렇게 이별을 고했다. 칸나의 일방적인 이별 통보를 준고는 받아들여야했다. 지금까지의 행복했던 순간들, 사랑했던 순간들은 칸나의 냉정한 한 마디에 대기 속으로 사라졌다. 이별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자는 이별을 고하는 자 앞에 이별의 원인을 묻는다. 그러나 원인이란 건 없다. 칸나의 말은 너무나 차갑고 쌀쌀맞게 느껴지지만, 그것이 진실이다. 이별의 원인은 없다. 어느 순간 느껴진다. 아 이별의 순간이 왔구나, 하고. 이별을 받아들이는 자 역시 안다. 느낀다. 하지만 받아들이고 싶지 않을 뿐이다. 칸나의 말마따나 "누군가를 사랑하는 건 말로 설명할 수 있는게 아니"듯이, "또 누군가를 더이상 사랑할 수 없게 된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사랑했던 순간은 행복했지만, 이별하는 순간은 불행하다.

  소설은 지나치게 한일양국간의 우호를 다져야만 한다는 사명감을 의식하고 있는 듯 했다. 츠지 히토나리는 한국에서 본 광경들을 소설 속에 묘사하며 담아내려했고, 그것은 때로 이야기의 진행을 매끄럽지 못하게 한다는 느낌을 주곤했다. 자주 언급되는 윤동주며, 한국의 이런저런 모습들. 공지영의 다른 한편은 아직 읽지 않아 모르겠지만, 순수한 연애소설만의 역할을 해줬으면 더 좋았지 싶다. 두 사람이 각기 한국인과 일본인이라는 것을 의식하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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