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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어도 11월에는
한스 에리히 노삭 지음, 김창활 옮김 / 문학동네 / 2002년 11월
평점 :
<늦어도 11월에는> 이후에는 어떤 말이? 지인의 소개로 접하게 된 연애소설이다. 예전에는 연애소설은 다 통속적이고 3류 소설이라 치부했었다. 멋 모르던 시절에는. 본래 소설류를 잘 읽지도 않았고, 그중에서도 환타지와 연애소설은 더욱 세련되지 못한 소설이라는 편견이 있었다. 읽어보지도 않고선. 지금 난 어떤 종류의 책에도 편견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아. 단 하나. 처세술에 관련된 실용서적들은 하등의 책으로 분류한다. 대개 그런 서적들은 잘 팔리기 위해 제목이 명령문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꼭 그걸 안하면 안될 것만 같은 분위기를 품고 있다. 대개는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유행따라 급속제작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책은 책으로도 안본다. 나머지 다른 책들에 대해서는 환타지건 만화건 상관없이 나름대로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다. 그래서 학교에서 학생들이 환타지 소설이나 만화 책을 탐독(?)하고 있더라도 뺐거나 혼내지 않는다. 그 아이들도 나중에는 다른 류의 책들에 관심을 갖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만화나 환타지 소설을 통해서도 얻을 수 있는 것은 있다. 다만 흔히 말하는 양서로 분류되는 책들에 비해 더 적을 뿐이다.
2005년 내가 읽은 연애소설 베스트는,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우리는 사랑일까> 와 왕원화의 <끝에서 두번째 여자친구> 그리고 한스 에리히 노삭의 <늦어도 11월에는>이다. 뭐 이것들을 제외하곤 읽은 연애소설도 없는 것 같지만 정말 알짜배기 연애소설만을 추천받아 읽었다. 그분들께 고맙다는 인사를 드린다.
알랭 드 보통의 연애소설이 장면의 전환 없이, 또 주인공 두 남녀의 출연만으로 모든 것을 꾸려나가는 반면 왕원화의 소설은 장면전환이 빠르고, 여러 등장인물의 여러 형태의 사랑을 보여주면서, 각각의 상황에서 사랑을 느끼게 해준다. 한스 에리히 노삭의 소설에도 등장인물은 많다. 하지만 왕원화의 소설처럼 드라마나 영화와 같이 장면이 급속히 진행되기보다는 좀더 호흡이 길고 천천히 페이드 아웃되며 전환된다. 또한 알랭 드 보통의 소설처럼 수많은 철학자들의 말을 동원해 깊이있는 사색을 하게 만들지는 않으면서도 이들의 대화를 따라가면서, 또 전환되는 각 상황마다 흠... 하고 생각의 나래를 펼치게 만든다.
"당신과 함께라면 이대로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남편 회사에서 주관하는 문학상의 수상자인 묀켄은 마리안네를 보자마자 이렇게 말한다. 진실된 마음에서 나오는 말이거나 - 첫눈에 반했다는 - 그렇지 않다면 선수들이 사탕발림으로 하는 말이 아니고서야 보통의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녀가 문학상을 주는 회사 사장의 사모님이라는 것도 알았을텐데 말이다. 진실된 마음에서 비롯되어 나온 그와 같은 발언이라면 듣는 여성 입장에선 - 그녀가 저 말이 진심인지 아닌지를 분별할 기준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 이보다 더 황홀할 수는 없을 것.
마리안네도 보통 여성은 아닌 듯 하다. 그말을 하는 묀켄을 따라 남편을 떠나 그를 따라가고, 그와 함께 생활한다. 그러나 그에게 방해가 되는 것은 아닐까 매일 속으로 생각을 하며 불안해 한다. 그리고는 또한 평범치 않은 시아버지의 설득에 집으로 다시 돌아가고, 후일 집으로 그녀를 찾아온 묀켄을 따라 또 떠났다가 함께 사고를 당해 죽는다. 그 어느 하나 평범한 이야기가 없다. 묀켄도 이상하고, 그를 따라간 마리안네도 이상하고, 집나간 며느리 찾아온 시아버지도 이상하고, 집에 들어왔다 다시 가출한 마리안네며, 그녀를 찾아온 묀켄이며, 이둘을 가만놔두는 남편하며 모두가 정상이 아니다. 하지만. 겉으로 볼 때 이 소설의 줄거리는 정상이 아닌 듯 하지만 책을 읽다보면 이해가 된다. 각각의 등장인물들의 심리에 수긍하게 되는 자신을 발견한다. 어디 가당키나 한 일인가. 라는 반응을 보였다가 그래 그럴 수도 있지. 음음. 으로 바뀐다.
작가 한스 에리히 노삭은 이 소설에서 집나간 다시 집으로 들어온 또다시 집나간 마리안네의 심리를 정말 잘 묘사해주고 있다. 마치 여성작가가 쓴 소설인 것처럼. 이런 점에서는 알랭 드 보통과 비슷하다. 알랭 드 보통의 소설 또한 등장하는 두 남녀의 심리를 정말이지 꼭 자신이 그런 경험을 한 것처럼, 자신이 여성이 된 것처럼 잘 묘사해주고 있다. 알랭 드 보통의 그것과 한스 에리히 노삭의 그것은 느낌이 좀 다르지만 그런 부분에서는 두 사람이 공통점을 보이고 있다고 말해도 될 듯 하다.
보통씨와 왕원화는 살아있는 젊은 작가다. 그들의 작품은 앞으로 더 기대를 해봐도 될 듯 하지만, 한스 에리히 노삭은 1977년 사망했다. 그래서 지금 빠져버린 그의 또다른 작품을 기대할 수는 없다. <늦어도 11월에는>은 내가 지금껏 읽은 최고의 연애소설 중 하나라고-최고는 하나여야 하지만 '매우 좋은'의 의미로 해석하자 - 당당히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