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자키 하야오 작품의 가장 최근작. 비디오로 출시된지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초기작과 후기작에 대한 감상은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감상문에서 언급한 바 있지만 간략히 다시 이야기하면 초기작이 자연의 아름다움이나 순수함,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삶을 노래한다면 후기작들은 마법에 걸린 주인공이 좌충우돌 모험을 겪다가 마법에서 풀려나는 식의 줄거리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그 대표적 후기작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과 바로 이 작품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다. 지금까지 봤던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 중에선 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가장 재밌었고 비록 어쩔 수 없는 상황 하에서 그리 되었지만 몇번을 반복해서 봤는지 모른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반복해서 볼 때마다 처음에 보이지 않았던 장면들, 생각지 못했던 일들에 대해 더 깊이 넓게 생각할 기회가 주어졌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2004년 12월에 개봉했으니 지금으로부터 딱 1년전이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모자상점에서 일하는 소피. 어느날 왕실마법사 하울을 만나게 되고, 잠시나마 하울과 함께했다는 이유로 그를 짝사랑하는 황야의 마녀는 소피의 상점에 간밤에 들어와 그를 90살 먹은 할머니로 만들어놓고 사라져버린다. 소피는 마녀가 간 뒤 늙어 주글거리는 자신의 손을 보고, 거울을 보고, 놀라지만 침착하다. 다음날 아무도 몰래 집을 나간 그녀, 마법을 풀기 위한 모험을 시작한다.



* 소피를 늙은 할머니로 만들어버린 황야의 마녀. 그녀의 삼겹살은 정말 왕입니다요!!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소피가 마법을 풀기 위해 겪는 모험담을 줄거리로 삼고 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치히로가 마법에 걸린 엄마, 아빠를 구해내기 위해 모험을 하는 반면, <하울>에서는 소피가 자신의 마법을 풀기 위해 모험을 시작한다.



*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움직이는' 원동력이 되는 캐시퍼. 얘도 마법에 걸려 이 성에서 일하고 있다. 캐시퍼 없이 하울은 살 수 없다. 캐시퍼도 하울이 없이는 살 수 없다. 둘이 무슨 사랑하는 연인사이냐고? 그런건 아니고 정답은 영화 속에. ^^ 참 귀엽다. 고녀석.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요 바로 전작인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만큼이나 역동적이고 급속한 줄거리 전개와 사건들로 구성되어 있진 않다. 물론 신기하고 새로운 캐릭터들이 등장하긴 하지만 전작과 겹치는 부분이 많아 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화라는 것을 모르고 봐도 누구든 쉽게 알아챌 수 있다. 그것은 감독만의 개성이 그만큼 강하게 반영되어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비슷비슷한 내용과 구도를 답습하고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하울>에서의 '하울'은 <센>에서의 '하쿠', <하울>에서의 '소피'는 <센>에서의 '치히로'와, <하울>에서의 황야의 마녀는 <센>에서의 유바바에 비유할 수 있다. 등장인물들의 성격이나 개성, 역할 그리고 그들 사이의 관계가 너무나도 두 작품이 비슷하다.

  그의 초기작에 비해서는 장면 하나하나에 들어간 세심한 배려가 엿보인다. 마치 허큘리스 컴퓨터에서 286 컴퓨터로 넘어오며 흑백화면이 256 칼라로 바뀌었을 때의 그 느낌, 또 256 칼라가 지금과 같이 실물과 구분이 안될 정도의 화면으로 바뀌었을 때의 그 느낌, 화면의 치밀함과 정교함 뿐 아니라 스토리의 전개나 배경음악의 설정도 확실히 초기작에 비해 훨씬 나아졌다. 그야 당연한거 아니냐?! 그래 당연한거다. 당연히 80년대의 컴퓨터 기술과 2000년대의 컴퓨터 기술은 비교할 바가 못된다. 하지만 또 초기작 중 88년에 만든 <이웃집 토토로>의 경우에는 80년대 컴퓨터 기술치고는 참 정교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다 본 뒤에, 좀더 넓게 말하면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을 다 본 뒤에는, 마음 속 저 어느곳에 숨어있던(?) 나의 순수한 마음이 나로 하여금 살며시 미소짓게 만드는 결과를 얻게 된다. 그건 미야자키 하야오 만의 매력이고 마법이다. 그의 애니메이션을 보게 되면 우리는 마법에 걸린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도 역시 그 예외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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