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실화다. 영화가 실화라는 사실은 영화가 다 끝난 뒤에야 알았다. 해설로서 사고뭉치 불량 농구소년들이 이후에 어떻게 되었는지 보게 되면서 영화 속에서 느꼈던 감동은 실화임을 인지하는 순간 배가 되었다. 실화는 그만큼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허구로서 감동을 주는 영화들은 단지 일어날 가능성만을 내포하기 때문에 관객으로 하여금 에이 저런거야 영화 속에서나 가능한거지! 라는 식의 마음가짐을 갖게 한다. 보는 순간 감동을 받을지는 몰라도,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 아 허구지! 하고 깨닫게 된다. 감동은 줄어든다. 하지만 실화는 다르다. 실화는 '일어날 가능성'을 내포한 것이 아닌, 이미 '일어난 일'을 되살린 것이기 때문에 그 내용들의 머릿 속 가상세계에서 떠돌지 않고 나의 현실에 들어와있다. 실화는 과거의 있었던 일이기에 그것은 비록 실화라고 믿기 힘들더라도, 그것이 실화라는 건 사실이기에, 나에게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혹은 내 주변 사람이 겪었을 수도 있는 일이다 라는 생각이 이미 내 마음 속에 들어와있다. 실화는 감동을 증가시켜준다. 더군다나 허구라 생각하고 봤는데 나중에 보니 실화다. 그럼 감동은 배가 된다.

  <코치카터> 라는 영화 제목을 들었을 때 별 관심을 갖지 않았다. 뭐 영화 제목이 저래. 요즘 모든 영화들이 다 제목부터 시선을 끌게 만든다. <작업의 정석> <광식이 동생 광태> <왕의 남자> 등 확실하게 관객에게 어피할 수 있고 관심받을 수 있는 제목을 내건다. 하지만 <코치카터>는 그냥 붙여놨을 때 카터라는 이름을 가진 코치에 대한 이야기구나 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 물론 그것도 별로 끌리진 않는다 - 저게 무슨 제목이 저래 라는 식의 무관심을 유발(?)하게 만든다. 난 무슨 제 3국의 언어인줄 알았다. 아니면 내가 모르는 영어단어이거나. 그럴 경우 모르면 궁금해지는게 아니라 무관심해진다. 나만 그런가?!

  어찌되었든 <코치카터>는 카터라는 이름을 가진 코치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미리 말해두지만 실화다. 70대의 고교 농구선수로 활약하며 스타가 되었던 켄 카터는 지금은 나이들어 카터의 스포츠용품 이라는 간판으로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장사는 꽤 잘된다. 그에겐 고교 농구선수로 잘 나가고 있는 아들이 하나 있으며, 그는 명문 사립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다. 그에게 갑자기 제안이 하나 들어왔다. 출신 고등학교인 리치몬드 고등학교의 농구코치가 되어달라는 부탁이다. 망설임끝에 수락하고, 그는 두 가지 계획을 세운다. 이 가난하고 천한 환경에서 자라고 있는 사고뭉치 아이들에게 희망의 빛을 쏜다. 또 하나는 만년 꼴지인 이 팀을 우승팀으로 만든다.


  하지만 첫날부터 이 껄렁이들은 코치에게 말장난이나 하고 있다. 아 그만 두어서는 안되겠구나. 확실히 잡기 시작하면서 이들의 눈빛이 달라진다. 좀 말할때 듣지. 꼭 잡아야 듣냐. 그중 몇놈이 반항하며 나가고, 나머지 넘들은 첫날부터 기초체력훈련에 들어간다. 팔굽혀펴기 천번, 전력질주 천번? 다리가 후들후들. 불평불만이 여기저기서 쏟아져나온다. 게다가 코치는 이들에게 계약서를 쓰게 했다. 학점 2.3 이상 받을 것, 모든 수업에 항시 출석함은 물론이요 첫 줄에 앉아 수업을 들을 것 등.



* 불량청소년들의 집합.



* 코치와 농구선수들이 왜 도서관에???!!

  팀은 서서히 다듬어지고 17승 무패의 행진을 계속하게 된다. 오!! 대단하다. 이제 주목받는 고교팀 중의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결국 주 토너먼트에 올라가기까지 한다. 당연히 이 꼴통이었던 선수들은 신이 났다. 명문 사립 고교 백인 여자아이들로부터 데이트신청을 받아 거대한 집에서 즐기던(?) 도중 코치의 갑작스런 방문(?)으로 흥이 다 깨졌다. 성적은 최하위를 달리고 결국 농구장을 닫는다. 지역주민과 언론의 질타가 쏟아지고 사퇴한다. 하지만 선수들은 그를 이해했고, 공부를 하기 위해 농구장에 책상을 가지고 들어온다.

  이 감동의 순간. 코치는 단지 농구 코치로서의 역할만을 한 것이 아니라 이들의 아버지, 선생님 역할까지 하려고 했고, 선수들은 그것이 처음엔 못마땅했지만 결국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그리고 코치를 믿게 되었다.

  이 영화는 단지 엄격한 코치와 꼴통 농구선수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것은 교사와 학생의 감동적인 이야기다. 나는 교사라는 이름으로 학생들 앞에 섰지만, 또 의욕은 카터 못지 않지만, 카터와 같이 하지는 못했다. 말썽피우는 학생들, 반항적이고 대드는 아이들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 몰라 방치한 적도 있으며, 그들에게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했다. 열정은 있지만 기술이 없는건가? 잘하는 아이들을 잘하게 만드는 것은 쉽다. 하지만 못하는 아이들을 잘하게 만드는 것은 어렵다. 그 어려운 것을 하고 싶지만 잘 되진 않는다. 차차 조금씩 나아지긴 하겠지만 말야. 때로는 그 아이들이 미울 때도 있었다. 무시하고 싶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 아이들이라고 처음부터 그랬겠는가. 충분히 변화될 수 있고 바뀔 수 있는 아이들인데 난 다른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봤었다. 솔직히 정말 인간적으로 이런 나쁜 놈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드는 아이도 있다.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고, 마치 자신은 억울한 양 이야기를 한다. 나도 속아넘어간다. 하지만 경력이 좀더 많은 다른 선생님은 속아넘어가지 않는다. 그때 느끼는 그 배신감.

  코치 카터는 결국 저 불량청소년들을 모범청소년까지는 아니지만 바른 청소년으로 이끌어주었고, 그들에게 대학을 갈 수 있는 기회를 주었으며, 그들은 대학에 진학해 공부했다. 이후 얼마나 잘 되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그들은 이전의 나쁜 행동을 하는 그런 삶을 살지는 않을 것이다. 이는 학교의 교사도 못했고, 집안의 부모님도 하지 못했던 일이다. 학교와 학부모와 지역사회와 언론의 질타를 받으면서, 운영하는 가게가 습격을 받는 상황에 처하면서까지도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던 카터. 그는 누굴 위해 이렇게까지 하는가? 선수들을 올바른 길로 이끌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성공했다.

   이 영화는 농구선수와 코치가 봐야할 영화가 아니라, 선생과 학생이 봐야 할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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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따삐야 2005-12-29 2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가는 부분이 많습니다.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고 마치 자신은 억울한 양 이야기를... 특히 이 부분!
한편으론 그러니까 애들이지, 하는 생각도 들지만.
이 영화 언제 봐야겠네요.

마늘빵 2005-12-29 2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깐따삐야님. 아 영화에선 그렇게까지 거짓말하고 억울한 양 그러는 불량청년은 없었고요. 그냥 불량하게 굴어요. 그건 제 경험담이었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