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은 미쳤다! - LG전자 해외 법인을 10년간 이끈 외국인 CEO의 생생한 증언
에리크 쉬르데주 지음, 권지현 옮김 / 북하우스 / 2015년 7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꽤 판매된 걸로 아는데, 제목 덕이다. 한국인 또는 한국 문화에 대한 외국인의 외국의 평가에 대해 한국인은 민감하게 반응한다. 관심이 많고, 어떤 이야기들이 오가는지 궁금해 한다. 이런 책은 이전에도 있었고, 읽어보면 대개 지적하는 내용은 비슷하다. 한국의 경직되고 수직적인 문화, 화를 잘 내고, 빨리빨리를 외치는 문화, 그것이 실제 성과와는 전혀 관계없더라도 윗선에 잘 보여야 하는 문화 등등. 저자 에리크 쉬르데주의 글은 지금까지 나왔던 외국인의 한국인에 대한 평가를 반복한다. 


한국인이 외국인의 한국인에 대한 평가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무엇일까? 혹시 다른 국가에서도 그 나라 사람들이 다른 문화의 사람들의 그 나라 또는 그 나라 사람에 대한 평가에 관심을 가질까? 관심은 있더라도 이 정도로 관심이 많을까? 내가 이 책을 사서 읽은 이유도 이와 같다. 내가 잘 모르는 웬 외국인이 한국 기업에서 일하면서 느꼈던 바를 책으로 냈다더라 하는 지점. 나는 왜 한국인 또는 한국 문화에 대한 잘 모르는 외국인의 평가에 관심이 있는 걸까? 


물음은 많은데 책을 다 읽은 뒤에도 이 물음은 해소되지 않는다. 책에서는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을 수도 없을 뿐더러 애초 들어 있으리라 기대하지도 않았다. 기대해서도 안 되고. 그 물음에 대한 답은 이 책을 내도 팔릴 수 있겠다고 마케팅 포인트를 잡은 출판사와 이 책을 그만큼 팔아준 소비자와, 이 책을 읽은 독자들에게서 구해야 한다. 


10년 간 한국 기업 엘지 고위직을 지낸 한 프랑스인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이야기를 자신의 경험담으로 들려준다. 에피소드가 있고 그래서 재밌다. 가볍게 읽을 수 있다. 그는 프랑스인의 입장에서 당황스럽고 어이없는 경험을 들려주지만, 한국에서는 늘상 있는 일들이다. 우리는 일상에서 아무렇지 않게 경험하고 있고, 그 일을 시키는 사람이기도 하고, 누가 시켜서 실행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싫으면서도 하게 되는 건, 그게 한국 기업 문화의 관행이기 때문이다. 관행에 물음을 제기하면 기업에서 찍힌다. 동료들에게도 찍힌다. 그 사람 이상하더라, 왜 그런대? 


변화는 물음을 던지고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일어나지만, 애초 물음과 문제 제기가 없기에 일어날 수 없다. 그래서 십수 년 전 한국인과 한국 문화에 대한 외국인의 평가와 오늘 이 프랑스인의 한국인과 한국 문화에 대한 평가는 다르지 않은 것이다. 기업 문화가 바뀌고 있다고? 수요일을 가정의 날로 정해 정시 퇴근하자고? 원래 퇴근은 정시에 하는 거고, 가정의 날로 지정해서 정시 퇴근을 해야 하는 회사라면 제정신이 아닌 것이다. 굳이 비슷한 날을 잡는다면 야근의 날을 한 달에 하루 정하는 게 정상이다. 일이 있으면 야근하는 거고, 개인의 일은 개인이 알아서 조정하고 해내면 되는 거다. 일이 없거나 다른 개인 사정이 있는데도 가정의 날을 제외하고 야근을 주야장천해야 한다면 정상이 아니다. 


만약 저자가 프랑스인 아니고, 일한 기업이 엘지와 같은 대기업이 아니고, 직책이 부사장이 아니었다면, 책은 나올 수 있었을까? 프랑스인과 엘지와 부사장이 결합해서 이 책에 담긴 이야기는 팔릴 텍스트가 된다. 평사원인 한국인이 한국 기업에서 일한 경험을 책으로 낸다면 출판사는 내줄까? 낸다 해도 팔릴까? 안 팔린다. 늘상 우리가 기업에서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일한 예외가 있었다. 사회평론에서 2011년 나왔던 “삼성을 살다”라는 책이다. 평사원인 여자 직원이 삼성에서 일하면서 겪은 일을 책으로 냈다. 팔렸다. 왜? 삼성이니까. 앞으로도 이 예외는 통할 것이다. 다만 삼성과 함께 한 가지 포인트가 더 있어야 한다. 이 책의 포인트는 성추행이었다. 


이 책을 사거나 읽겠다고 마음먹었다면 한국인과 한국 문화에 대한 외국인의 익숙한 평가 이상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딱 그만큼을 여러 에피소드를 곁들여 즐기고 싶다면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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