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견학을 통해 배운 바에 의하면, 결국 그 '집'이라는 건 세상 어디에든 있었다. 다만 그것이 자신에게 기쁨이나 슬픔을 안겨 주는 그런 '집'이기를 바란 것이 착각이라면 착각이었다. -25쪽
모든 소망은 영원히 이루어지지 않는 것에 진정한 의미가 있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모든 성취란, 결국 또다른 의미의 실망만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36쪽
현실은 무엇이 '단순히 있다'는 사실 외에, 그것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의식'이 전제될 때에만, '실현'될 수 있다는 이 말의 의미를 내가 제대로 이해했다면, 그 '현실의 성질'은 '의식의 성질'에 의해 좌우된다고 대담하게 추론해 볼 수 있다. 특히 후자, '의식의 성질'은 모든 민족, 모든 인간들 사이에 큰 차이가 있으므로, 이 지구상의 수없이 많은 장소엔 그 숫자만큼이나 다양한 현실이 존재할 뿐 아니라, 한 장소에도 여러 현실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가정이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다. -102쪽
그는 이제 자신을 '길잡이'라는 의미의 '인디카비아'라 칭했다. 사람들이 이 이름의 뜻을 물어오면 그는 습관처럼 이렇게 설명하곤 했다. 길잡이 노릇을 하는 이정표는 비바람이 부서지고 썩기까지 해서, 그 자체론 아무 가치도 없는 나무 한토막에 지나지 않는다. 이 나무 토막은 자신의 몸 위에 무엇이 씌어 있는지 스스로 읽을 수 없다. 설사 그것을 읽을 수 있다하더라도 그게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고 자신이 안내하는 그 목적지에는 결코 가 볼 수도 없다. 하긴 자신이 세워져 있는 그곳에 머무르는 게 그의 존재 목적이기도 하다. 이정표는 자신이 가리키는, 바로 그 목적지만 빼곤 어느 곳에나 있을 수 있으며, 그곳이 어디든 그의 가치는 충분히 발휘될 수 있다. 목적지야말로 이정표가 아무런 쓸모도, 아무런 의미도 없는 유일한 장소인 것이다. 그리고 인디카비아 자신은 지금 자신이 안내하려는 그 목적지에 있는게 아니므로, 그 길을 찾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리라고 말이다...-3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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