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에 관한 짧은 우화 - 반 룬 전집 2
헨드릭 빌렘 반 룬 지음, 김흥숙 옮김 / 서해문집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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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헨드릭 빌렘 반 룬. 그는 지금 이 세상에 없지만 그가 생전에 썼던 책들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는 이유는 그것이 담고 있는 메세지가 유효하기 때문일터. 반룬 전집 중에서 제 2권 <코끼리에 관한 짧은 우화>를 봤다. 사실 반룬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그가 쓴 <관용>이라는 책인데, 미리 찍어놓은 이 책은 아직도 구입하지 않고 되려 재밌어 보이는 제목의 <코끼리에 관한 짧은 우화>를 먼저 읽게 되었다.

  아프리카의 젊은 동물들이 서구사람들의 문명을 부러워하는 등의 분위기가 형성되자 아프리카에서는 현자인 지둠-지둠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그로부터 받은 답변은 "화상 입은 아이는 불을 무서워한다. 젊은이는 경험을 통해 배워야 한다. 궁금한 자가 직접 찾아 나서게 하라." 누굴 보낼 것인가를 고민 중 냉철한 기린을 통해 코끼리가 좋겠다는 답변을 얻어 젊은 코끼리인 존 경은 영국을 통해 미국으로 떠난다. 서구사회의 가장 전형적인 국가로 미국을 지목한 것. 그곳에서 바라본 미국사회는 너무나도 화려하고 발달되어 있었다. 당연히 우리가 배워야만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찾아온 두 손님. 강아지와 고양이에 의해 뒷면의 숨겨진 진실을 알게 되고 이어 누군가에게 납치당하는 코끼리.

  책의 두께는 210페이지 가량으로 두껍지도 얇지도 않지만 안의 내용은 별로 없어서 출퇴근길에 다 읽을 수 있다. 한쪽은 짧은 글, 한쪽은 재미난 그림으로 구성되어 나이 어린 아이들이 봐도 재밌을 듯. 그림이란게 매우 단순하고 대충 그려졌지만 각각의 줄거리에 시기적절하게 떨어져 맞음으로써 시너지 효과를 낸다. 줄거리 파악도 쉽고 머리 속으로 만화식으로 그림을 상상하며 읽을 수도 있다.

  결국 이 책에 주는 메세지는 문명사회에 대한 비판이다. 그건 이미 코끼리가 미국으로 떠난 때부터 예감했던 바다. 하지만 결과를 알고 봤음에도 불구하고 재밌다. 코끼리를 도와주는 사람들 조차도 문명사회의 그것으로부터 벗어나지는 못한다. 그를 괴롭히는 사람들은 당연한 거고.

  존 경은 온갖 고초를 겪고 아프리카로 돌아온 뒤 4개월에 걸쳐 보고서를 작성하는데 보고서 전문은 다음과 같다.

  "인간의 문명은 훌륭하고 장대하며 화려하고 놀랍다. 여러 가지 면에서 그것은 정신이 단순한 무생물 위에 이룬 가장 위대한 승리이다. 삶의 현실적인 면에 관한 한 거의 모든 면에서 그것은 측량 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의 방식보다 우월하다. 그러나 깊이 연구한 끝에 나는 인간의 방식에 무언가가 결핍되어 있으며, 그들의 영광스러운 승리 한복판에 조만간 비참하고 수치스러운 패배를 가져올 재앙의 요소가 있다는 유감스러운 결론에 도달했다. 안됐지만 그 '무언가'가 무엇인지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것만은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즉 우리 동물들은 우리의 백인 이웃들을 흉내내선 안된다는 것이다. 인간이 오래 전에 잊어버린 무언가를 우리들은 아직 알고 있다. 그건 진실하고 도리에 맞는 삶은 존재의 궁극적 실체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을 때만 실현 가능하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인간은 자연의 기본 질서에 순응하기를 거부한다. 그 결과 인간은 파멸하게 되어 있다."

  그리고 보고서를 낭독한 뒤 마지막에 남은 늙은 고릴라 한마리가 머리를 긁적이며 한숨쉬고 "구사일생이야!"라고 외치는 대목은 인간문명에 대한 비판에 쐬기를 박아준다.

  뻔하디 뻔한 이야기, 뻔하디 뻔한 결말이지만 부담없이 쉽게 재밌게 읽은 한편의 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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