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속사회 - 쉴 새 없이 접속하고 끊임없이 차단한다
엄기호 지음 / 창비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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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내가 글과 말을 팔아먹고 살면서 중요하게 여기게 된 것은 ‘곁’과 ‘이야기’다. ‘곁’은 말하는 자리가 아니라 ‘듣는’자리에 가깝다.

7
지금 우리 곁에는 말을 듣는 사람이 점점 사라져가고 자기 말을 들어달라는 사람만 가득하다. 자기 말은 호소하고 싶은데 남의 말을 듣는 것은 힘들어지면서 사람들은 힐링이니 상담이니 하는 사적이고 상업적인 자리라 재빠르게 몰려갔다. 누군가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반응하며 구체적인 도움을 주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 반응은 꼭 친절하지 않아도 좋다. 오히려 호통치고 야단칠수록 마치 그것이 애정의 표현이고 관심이며 깨달음을 주는 죽비소리인 듯 여겨진다. 말할 수 있는 곁이 사라지자 이처럼 돈 내고 야단맞으러 가는 세상이 되었다.

49
하승우는 일제 식민 권력이나 이후 독재 정권이 가장 두려워한 것이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었고 회의하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말 많으면 빨갱이’라는 표현도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말을 많이 한다는 것은 곧 이견을 제시한다는 것이고, 이견을 제시한다는 것은 자신이 지금 ‘불편하다’는 것을 공공연하게 표현하고 힘을 모으는 과정이었는데, 그동안의 권력은 그것을 불온시해왔다.

57
사람은 말하는 것을 통해서만 정치에 참여할 수 있다. 이 ‘말’을 체계적으로 구성하면 바로 ‘의견’이 된다. 의견을 제시하는 대신 침묵해버리는 것, 이로 인해 사회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정치적 행위는 결정적으로 타격을 받는다.

75-76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는 순간까지 우리 사회에는 이미 정해진 길이 있다. 성취와 발달이라는 이름의 이정표다. 몇살까지는 뒤집기를 해야 하고 몇살까지는 옹알이를 해야 한다.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는 연애도 하지 말고 오로지 공부만 해서 대학에 들어가야 한다. 대학 이후의 삶에서도 언제까지는 집을 마련해야 한다는 식으로 성취요건별 시기가 통념화되어 있다. 이 발달의 이정표를 따르지 못하면 낙오자, 실패자가 된다.

109
개인이 된다는 것은 다른 사람과 구분되는 것이다. ‘나’라는 개인은 다른 누구하고도 다른 자기만의 독특함을 지닌다. 이 독특함은 다른 어떤 특성으로도 환원되지 않는 것이어야 하며 다른 것으로 강제로 환원하려는 순간 사라져버린다.

110
우리는 기본적으로 ‘네’하며 순종하는 주체가 아니라 ‘아니오`라고 반발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네`라고 말하는 순간 나는 그 말을 한 사람에 종속되는 부차적인 존재가 된다.

125-126
관계도 사라지고 프라이버시도 없는 이 공간에서의 삶을 버티게 하는 것은 오로지 아파트의 자산가치다. 단독주택이나 다른 주거는 값이 오르지 않는 데 반해 아파트만 값이 올랐다. 그러니 ‘입주자’로서의 의식보다는 ‘소유자’로서의 의식이 더 강하다. 그 결과 사생활을 대신한 것은 소유 의식이다. 소유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사생활을 누린다고 착각한다. 주거지가 아니라 자산가치로서의 아파트는 그 어떤 괴로움도 참을 수 있게 한다. 여기서 살 것이 아니라 언제든 값이 오르면 팔아치우고 이곳을 탈출하여 ‘더 좋은 곳’으로 가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이다.

141
‘함’이 지나칠수록 인간에겐 생각할 틈이 줄어든다. 생각할 공간, 즉 내면 따위는 사라진 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함이 과잉된 인간에게 내면의 풍요, 즉 ‘행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함을 통해 만족을 얻는 것이 전부다. 이처럼 행복이 아니라 만족이 삶의 목적이 된 존재는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소비를 통해 만족을 추구하는 삶에 질문이 들어설 여지는 없다.

187~188
대다수의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에서 보편성을 발견하려 하기보다는 개별적인 상담만을 추구한다. 사적인 것을 공적인 것으로 전환하는 것이 아니라 사적인 것을 사적인 것으로 남겨놓은 채 개별적인 해결책만을 바란다. 그렇다면 이 ‘힐링과다’ 시대에 멘토란 뭘 하는 사람들일까. 그들은 개별적인 경험을 보편적인 것으로 이끌어내는 안내자가 아니라 어쩌면 개별적인 맞춤형 상담사에 불과한 것 아닐까.

236~237
점검하는 삶은 자신의 확신을 괄호로 묶고 타인의 말을 경청하는 삶이다. 배움에 주저함이 없는 삶, 배움을 위해 타자와의 만남에 주저함이 없는 삶이 바로 이 ‘점검하는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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