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시대 - 뉴스에 대해 우리가 알아야 할 모든 것
알랭 드 보통 지음, 최민우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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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뉴스는 사회의 악행을 폭로하고 그 고통을 직시함으로써 사회를 돕는 한편, 선함과 용서와 분별력을 충분히 갖춘, 구성원들이 기여하기를 원하는 가상의 공동체를 구축하는 중요한 임무 또한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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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라인 밑에서 자신만만하고 냉정하게 자신의 중요성을 내뿜고 있긴 해도, 우리가 읽는 기사들은 천사들의 비밀회의 후 나온 초자연적인 칙령에 의해 결정된 것이 아니라 전망 좋은 사무실에서 머핀과 커피를 앞에 놓고 골치 아픈 회의를 해가며 그럴싸하게 기사 목록을 만들고자 분투하는, 보통은 다소 피곤에 절고 압박에 시달리는 편집자 집단에 의해 결정된 것이다. 기사 제목은 현실에 대한 궁극적인 설명이라기보다는, 우리와 똑같이 편견, 실수, 미혹에 시달리는 필멸의 존재인 편집자들이 무엇이 정말 중요할까라는 질문에 맨 처음 떠올린 생각을 통해 정해진다. 우리 종족에게 날마다 닥칠 수억 건의 잠재적 사건들의 웅덩이 속에서 솟아오른 어림짐작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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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개의 뉴스들 역시 뉴스 브랜드의 비호 아래 전달됨으로써 힘을 얻는다. 탁자 맞은 편에 앉은 사람이 제기했다면 우리가 보다 철저하게 검토하려 들었을 의견들이 특정한 언론사 이름 아래 있기만 하면 거의 신화적인 힘을 획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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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심은 언제나 맹렬한 도덕주의적 비판의 표적이 되어왔지만, 이는 품위 있는 삶에 꼭 필요한 감정이기도 하다. 시기심은 신중해져야 한다는 신호다. 이 감정에는 우리 인격의 혼란스럽지만 중요한 부분에서 보내온,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뒤틀린 메시지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시기심을 주의깊게 응시하는 건 우리가 진정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찾는, 고통스럽지만 꼭 필요한 발걸음을 떼는 데 도움이 된다.

시기심은 처음에는 굴욕감과 열패감을 동반하며 일어나는 감정이지만, 이를 통해 우리가 시기하는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는 근본적인 질문을 가만히 던질 줄도 알아야 하는 것이다. ‘내가 이 감정을 통해 무엇을 깨달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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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그들(유명인들)이 이런 유의 관심, 즉 저질스런 관심이라 일컬을 만한 것에 불평이라도 할라치면, 사람들은 이내 근엄한 척 굴면서 그들의 분수를 깨닫게 해준다. 대중의 환심을 얻으려 하는 자는 자기에게 어울리는 관심을 고를 수 없다는 사실을, 그러니 어떤 관심이든 감사히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다.

217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 뒤 자기 눈을 후벼판 남자의 이야기(오이디푸스 왕), 동생의 아내가 저지른 부정에 대해 복수하려는 계획의 일환으로 자기 딸을 살해한 남자의 이야기(이피게네이아), 다른 여자와 살림을 차리려는 부정한 남편의 계획을 망치고자 자기 아이 둘을 살해한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메데이아) 등을 보라.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기원전 335년경에 저술한 "시학"에서, 이런 이야기들을 고상한 사람이라면 응당 피해야 하는 기괴한 구경거리로 간주하는 대신, 이런 이야기에 끌리는 인간적 매혹을 관대하게 바라보았다. 그는 그러한 이야기들이 잘 쓰이고 솜씨 좋게 상연될 경우, 사회 전체의 정서적이고 도덕적인 교육에 결정적인 자원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거기 묘사된 잔혹행위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들은 사람들을 교화하는 힘으로 기능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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