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취향이 비슷한 한 샘이 이 영화를 재밌게 봤다길래 나 또한 그와 비슷한 취향이라는 이유만으로 이 영화가 재밌을거라 믿고 영화관으로 발길을 돌렸다. 혼자서. 혼자 영화 봤다.

 날이 더워 조금만 걸어도 등이 다 젖어버리는 바깥과는 달리 영화관 내부는 매우 추웠다. 아이 추워. 더워서 속을 시원하게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콜라를 사들고 갔지만 이놈의 차가운 콜라가 나의 내부를, 밖에서는 에어콘의 차가운 공기가 나를 떨게 만들었다.

 씬씨티. 영어로 Sin CIty. 이게 뭘 의미하는거야? 그냥 도시 이름인거야? 별 다른 의미가 있는거야? 아마도 제목에는 별 의미가 없는 듯 하다.

 미국의 80년대를 주름잡았던(?) 만화를 원작으로 했다는 이 영화는 그야말로 정말 만화를 영상으로 옮겨놓은 듯 했다. 대개 칼라판으로 출판되지 않는 만화와도 같이 영화는 흰색과 검은색의 대비를 강조한 무채색 일색이었고, 간혹 빨간색과 노란색이 등장하기는 했지만 역시 주된 색채는 흰색에서 검정색까지의 무채색이었다.

 이미 다른 영화들을 통해 익히 알고 있는 말이 필요 없는 배우 브루스 윌리스와 예전에 <21그램>이라는 영화를 통해서 처음 접한 얼굴, 베네치오 델 토로가 주연이다. 그밖에도 제시카 알바라는 여인네와 미키 루크라는 남정네도 주연 명단에 오르고 있지만 그들이 누군지는 잘 모른다.

 주인공들의 이름과 배우를 짝지어 보면,
 
 *제시카 알바 - 낸시, 어린소녀에서 8년 뒤 부쩍 자란 아가씨
 *미키 루크 - 마브, 괴력의 사나이, 불멸의 사나이, 거대한 체구.
 *베네치오 델 토로 - 잭, 재밌는건 이 사람 <21그램>에서도 잭이었는데 여기서도 잭이다. 망나니(?) 경관.
 *브루스 윌리스 - 하티건, 퇴직을 앞둔 정의의 형사나리.

  영화는 전체적으로 병렬식 구성으로 되어있다. 몇개의 시나리오가 돌아가며 이야기를 진행하고 결말을 맞이한다.

 퇴직을 앞둔 정의의 형사나리는 어린꼬마아가씨 낸시를 구하기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지고(심지어는 자신의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괴력의 사나이 마브는 등치에 맞지 않게 자신과 하룻밤 사랑을 나누고 죽은 창녀의 복수를 위해 거리로 나선다. 사진작가 드와이트는 창녀를 괴롭히는 이들-아까 그 망나니 경관 잭과 그 일당를 비롯한 몇몇 놈들 - 징벌하기 위해 창녀대표 게일과 함께 거대권력에 맞선다.

 각각의 이야기는 아무런 연관관계 없이 알아서 진행되고, 이야기는 역시 예상했던대로 정의의 승리로 끝이난다.

 이 영화의 묘미는 줄거리가 아니다. 줄거리만 따지자면 사실 다른 액션 영화들과 크게 다를 바는 없다. 이 영화의 매력은 만화가 영화로 변환되면서, 만화적 색채를 살리고자 한 흑백의 대비, 잔인하고 피튀기는, 아무런 마음의 동요 없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살인행위에 있다. 어쩜 그리도 살인을 자연스럽게 행동에 옮길 수 있을까. 아무것도 필요없다. 각자가 생각하는 정의를 위해 앞으로 전진할 뿐이다. 내 앞을 가로막는자에겐 마땅한 응징이 따를 뿐이다.

 각자가 생각하는 정의. 그것이 그들이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고, 삶의 철학이다. 정의는 각자에게 각자의 몫을 나눠주는 것인데, 정의의 문제는 사람들이 적게 가지려하기보다는 더 많이 가지려고 함으로써 발생하게 된다.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에서 정의(dike)가 처음 등장하게 되는데, 이 때의 정의는 분쟁해결의 수단이고, 현대정의론에서의 절차적 정의를 의미한다.

 그 이전의 정의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와 같이 당한 만큼 돌려주는 '복수'의 개념이 정의를 의미했다.

 영화 <씬시티>에 있어서 마브의 정의는 아마도 "눈에는 눈, 이에는 이"와 같은 정의가 아닐까 생각한다. 나를 따뜻하게 감싸주었던, 사랑해주었던 창녀의 죽음. 이에 대한 복수. 그런데 다른 이들의 정의는 또 마브의 그것과는 좀 다르다. 하티건은 정말 순수하게 "정의의 이름으로 얏!" 이라고 외치는 세일러문의 나의 이익이나 손해와는 상관이 없는 순수한 의미에서의 정의라고 볼 수 있을 듯 하고, 드와이트의 정의는 직접적으로 나와 상관은 없지만 약자의 편에 섬으로써 힘을 실어주는 정의라고 할 수 있겠다. 정말 이들은 각자 정의의 개념을 다르게 인식하고 있고 자신의 머리속에 박힌 정의관대로 삶을 살아간다. 나의 생명의 위태로움을 느끼면서까지.

 정의는 일종의 명예다. 내가 인식하고 있는 정의관대로 나의 삶을 진행시킴으로써 나는 일종의 명예를 얻는다. 그것이 나의 이익과 손해와는 상관이 없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정말 나와 연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외견상 그렇게 보일뿐이지 나는 이를 통해 명예를 얻는다. arete. 덕. 탁월함. 명예. 그들은 각자의 명예를 위해, 우리의 명예를 위해 싸우고 투쟁하며 승리를 쟁취한다.

 사족
 내 평생 영화를 보다 이런 영화는 처음이다. 정말 만화책을 그대로 영상으로 옮겨놓은 듯 하다. 마치 움직이는 만화와 같다고 할까. 스크린 속에 모습을 드러낸 저들도 꼭 배우가 아닌것만 같다. 손으로 그린 만화를 빠르게 돌려놓음으로써 캐릭터의 동작을 움직이는 것만 같다. 정말 탁월한 솜씨다.

 영화의 잔인함은 뻘건피가 아닌 하얀피라는 점으로 우리의 눈으로 영상이 들어오기 전에 한 차례 걸러진다. 마치 <에일리언>에서 외계생명체가 흘리는 끈적끈적한 피와도 같은. 그래서 그 잔인함이 한층 꺾여 다가온다. 흑백영화가 아닌 올 칼라 영화였다면 아마도 몇차례 눈을 돌리거나 인상을 찌푸렸을지도 모른다. 하여튼 이래저래  새로운 방식의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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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 현상 2005-07-07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성실한 감상을 올리다니 대단해요^^

마늘빵 2005-07-07 2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읽어보면 별 내용은 없어요. ^^ 귀찮아서...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