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지세대, 두 개의 뇌로 만들 미래 - 프랑스 현대철학의 거장 미셸 세르의 신인류 예찬
미셸 세르 지음, 양영란 옮김, 송은주 / 갈라파고스 / 2014년 2월
품절


나를 포함하여 철학자들이란 앞으로 도래할 지식과 그에 따른 실천을 예견하는 일을 본분으로 삼는 사람들이다. -57쪽

구텐베르크 이전 시대엔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투키디데스와 타키투스를, 물리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리스토텔레스와 그리스 역학자들을, 연설 기술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싶은 사람이라면 데모스테네스와 퀸틸리아누스를 모조리 암기해야 했다. 다시 말해 머리를 꽉 채워야 했다. 하지만 인쇄술의 출현으로 이와 같은 노력을 상당히 절약할 수 있게 되었다. 어떤 책이 어느 선반에 꽂혀 있는지만 기억해놓으면 되니 책 내용을 전부 외우는 것보다 얼마나 경제적인가. 그런데 이제는 그보다 훨씬 급진적으로 노력을 절약할 수 있다. 어디에 꽂혀 있는지조차 외울 필요도 없으니까. 검색엔진만 돌리면 다 알아서 척척 찾아주는 세상이 아닌가.
-64-65쪽

그러니 머리가 잘려나간 엄지세대는 가득차기보다 제대로 구조화되었다는 과거의 머리들과는 엄연히 다르다. 지식, 그러니까 바로 여기, 눈앞에 놓인 이 상자 속에 결집되어 물체화된 지식은 부팅되기만을 기다린다. 누구나 손쉽게 접근할 수 있으며, 몇 번이고 수정되어 나름대로 정확성을 확보한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할 필요가 없으니 떨어져나간 목이 남긴 빈자리를 슬며시 바라볼 여유가 생긴다.
-65쪽

지식의 민주화란 이제껏 존재한 적이 없다. 지식을 보유한 소수가 권력까지 보유했기 때문이 아니라, 지식 자체가 심지어 그 지식을 보유한 자들에게까지도 겸손한 태도, 허리를 깊숙하게 굽히는 자세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가장 겸손한 무리에 속하는 교사들조차 이 절대적이고 보이지 않는 기호, 요컨대 도달할 수 없는 지식을 곁눈질하며 강의를 했다. 여기에 매혹당한 몸들은 꼼짝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
-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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