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농장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
조지 오웰 지음, 도정일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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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지오웰의 <동물농장>. 2002년 초겨울에 처음 읽었고 2005년 초여름에 다시 읽다. 난 <동물농장>을 두 번 읽었다. 3년의 차이를 두고 읽어서 그런지 내용들이 새롭다. 물론 전체적인 구도는 파악하고 있지만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됐었는지는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의 기억력은 매우 나쁘다. 나는 책을 읽으면 도대체가 기억하는게 없다. 그래서 또 읽고 또 읽고 해야한다. 지난달에 읽은 책도 난 기억하지 못한다. 내용이 뭐였는지도 기억하지 못한다. 다만 확실한 사실은 내가 그 책을 읽었다는 것뿐. 혹자는 내게 그런 말을 한다. 너의 삶의 현실이 그 책을 읽을 때 맞물리지 못해서 그렇다라고. 그때는 나도 그런가보다 했다. 그런데 그건 아닌거 같다. 내게는 정말 뭔가가 문제가 있는거 같다. 도대체가 여지껏 읽은 책들을 줄거리 조차 기억하지 못할 수가 있단 말인가. 나는 현실을 살지 않는 사람인가? 어떤 책은 기억나고 어떤 책은 기억나지 않고 하면 나도 그 '혹자'의 말에 동감하겠는데 그렇지 않으니 문제다. 내가 책을 읽고 흔적을 남기는 건 나의 기억력에 의존해서는 그것들을 보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서론이 길었다. <동물농장> 말 안해도 다 아는 고전이다. 대개의 고전은 재미가 없기 마련인데 이 책은 완전히 이솝우화다. 그래서 아무나 읽어도 무방하다. 내가 가르치고 있는 중학교 2학년의 도덕교과서에도 <동물농장>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흑백논리를 가르치면서 <동물농장>에 나오는 나폴레옹 돼지의 7가지 계명을 언급한다. "네 발은 좋고 두 발은 나쁘다"

 중학교 아이들에게 이 책을 아느냐고 물어보면 그들 중 소수는 이 책을 이미 봤다고 한다. 허. 이런. 놀라워라. 요즘 아이들에게 독서가 강조되고 있기는 하지만 얘들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엄청나게 책을 읽어대고 있었다. 무섭다. 아이들 수준에서 너무 어려운 책들을 읽히는건 아닌지 걱정도 되지만. <동물농장> 정도는 중학생에게 읽혀도 이솝우화정도로 읽히니깐 상관은 없을 듯 하다.

 조지오웰. 에릭 아서 블레어라는 본명을 가지고 인도의 뱅골만에서 태어났다고 하며, 영국의 이튼스쿨을 다녔다. 캠브리지 대학에 진학할 기회가 있음에도 신분을 이유로 포기, 버마에서 대영제국 경찰을 했다. 이후 접시닦이, 노동자, 거지 등의 하층생활을 전전하다 초등학교 교사를 했다. 참 어렵게 삶을 살아온 듯 하다.

 1947년에 낸 책, <동물농장>을 통해서야 비로소 경제적인 압박감에서 벗어나지만 폐병이 악화되어 병원을 왔다갔다 결국 1950년에 사망. 이제야 빛을 보는가 했는데 죽음을 맞이했다. 47세의 나이로.

 내가 <동물농장>을 접한 것은, 그의 또다른 작품 <1984년>을 접한 뒤였다. 그리고 두 작품을 통해 난 그의 매니아가 되었고, 영남대 법학과 박홍규 교수가 쓴 <조지오웰>이라는 책까지 사서 보게 되었다. 이 책 역시 무슨 내용인지는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동물농장>에는 사람이 별로 등장하지 않는다. 온갖 농장의 동물들이 판을 친다. 그중 돼지가 으뜸이다. 흔히 멍청하다고 알고 있는 돼지가 이 소설에서는 가장 뛰어난 지능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농장 주인 존스가 놔두고 간 책을 통해 글을 익힌다.

 메이저 라는 늙은 돼지의 유언으로 농장의 혁명은 성공, 스노볼이라는 젊은 돼지가 집권한다. 그러나 곧 스노볼은 나폴레옹에 의해 쫓겨나고 나폴레옹 집권기가 되자  혁명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나폴레옹과 스퀼드, 그리고 9마리의 사나운 개들은 다른 동물들을 위협한다. 메이저가 유언하고 스노볼이 주창한 동물들의 평등은 이제 없다.

 스노볼과 나폴레옹은 혁명이 성고한 뒤 다음과 같은 계명을 만든다.

 1. 무엇이건 두 발로 걷는 것은 적이다.
 2. 무엇이건 네 발로 걷거나 날개를 가진 것은 친구이다.
 3. 어떤 동물도 옷을 입어서는 안된다.
 4. 어떤 동물도 침대에서 자서는 안된다.
 5. 어떤 동물도 술을 마시면 안된다.
 6. 어떤 동물도 다른 동물을 죽여선 안된다.
 7.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하지만 스노볼이 쫓겨나고 나폴레옹이 집권한 뒤에 일곱 계명은 변질된다. 예를 들어,
 
 "어떤 동물도 침대에서 자서는 안된다"라는 계명은 "어떤 동물도 시트를 깔고 침대에서 자서는 안된다"라는 계명으로 변질되고, "어떤 동물도 술을 마시면 안된다"라는 계명은 "어떤 동물도 지나치게 술을 마셔서는 안된다"라는 계명으로 바뀌며, "어떤 동물도 다른 동물을 죽여서는 안된다"라는 계명은 "어떤 동물도 이유없이 다른 동물을 죽여서는 안된다"라는 계명으로 변질된다.
 
 계명이 변질된 이유는 나폴레옹 자체가 계명을 어겼기 때문이고 이를 합리화 시키기 위해 법칙을 바꿨던 것이다. 글을 모르는 동물들은 물론이고 글을 알지만 이상하게 생각함에도 불구하고 사나운 개들과 스퀼러의 설득력에 취해버린 모든 동물들은 원래 계명을 자기들이 잘못 알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농장의 생산물은 나폴레옹과 스퀼러를 비롯한 돼지들에게 돌아가고 나머지 동물에겐 가난과 핍박뿐이다. 그러나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조지오웰의 <동물농장>은 사실 구소련의 볼셰비키 혁명 이후를 그리고 있다. 그 자신이 사회주의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우파진영과 좌파진영 양쪽으로부터 오해를 받았는데 그 이유는 우파에게는 오웰이 좌파를 비판한 것으로 비춰져 우파로 오인됐고, 좌파에게는 좌파임에도 불구하고 좌파를 공격했다고 비난받은 것이다.

 오웰이 사회주의자였던 것도 사실이고, 오웰이 좌파를 비판한 것도 사실이지만, 그것은 진실된 의미에서의 사회주의자의 혁명이후의 잘못된 방향에 대한 비판이었던 것이다. 자기진영을 향해 쓴소리를 내뱉은 격이라고 봐야할까.

  오웰은 <나는 왜 쓰는가>라는 장을 통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 책을 쓰는 이유는 내가 폭로하고 싶은 어떤 거짓말이 있기 때문이고 사람들을 주목하게 하고 싶은 어떤 진실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의 일차적 관심은 사람들을 내 말에 귀 기울이게 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글  쓴다는 것이 동시에 미학적 경험이 아니라면 나는 채을 쓰지 못하고 잡지에 실릴 글조차도 쓸 수가 없다. 누구든 내 작품을 검토해 보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내가 쓴 것들 중에 전적으로 선전적인 책의 경우에조차 본격 정치인의 눈으로 봤을 때는 어울리지 않는 요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오웰이 사회주의의 잘못된 흐름에 대한 비판을 위해, 그 거짓에 대고 진실을 말하고 싶었던 이유는 이 책을 쓰게 된 동기이며, 또한 다른 동기는 미학적 경험을 위해서다라고 말하고 있다.

 오웰이 이솝우화와 같은 재미난 구성과 형식을 통해 이렇게 무거운 메세지를 전달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진실을 말하고 싶었던 것과 동시에 미학적 경험도 추구했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이 책은 어렵게 출판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출판과 동시에 엄청나게 팔려나갔으며 지금까지도 고전의 베스트셀러로 자리잡고 있다.

 그가 <동물농장>을 통해서 말하고 싶었던 진실은, 민중의 무지와 무기력함이 권력의 타락을 방조하고, 독재와 파시즘은 지배 집단 혼자만의 산물이 아니다. 또한 권력을 맹종하고 아부하는 순간 모든 사회는 이미 파시즘과 전체주의로 돌입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 메세지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우매한 다수의 민중들의 암묵적 동의는 권력의 타락을 불러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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