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 괴물이 된 이십대의 자화상 지금+여기 3
오찬호 지음 / 개마고원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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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대는 불안하니까 자기계발 담론을 받아들여 위기를 넘어서려 하지만, 불행히도 그 불안한 상태는 계속 유지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도돌이표 처럼 갇혀버리는 것이다.모두가 이 자기계발의 수행에 동참하면 그 어마어마한 참여자들 덕택에 성공하는 ‘하나의’ 사례는 또 발견될 것이고,이는 ‘기능성'의 객관적 증거로 활용될 것이다.그리고 이렇게 희박한 성공의 기능성이 표면화될 때,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 수천수만의 사례는 노력 부족이리는 말로 간단하게 정리 처분된다.이렇게 좌절하는 자아가 많아질수록 자기계발서 시장은 더 커진다는 건 두 말하면 잔소리. 노골적으로 말해, 자기계발서를 읽었다는 건 낚였다!’의 다른 말인 것이다.-34쪽

이십대는 불안하니까 자기계발 담론을 받아들여 위기를 넘어서려 하지만, 불행히도 그 불안한 상태는 계속 유지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도돌이표 처럼 갇혀버리는 것이다.모두가 이 자기계발의 수행에 동참하면 그 어마어마한 참여자들 덕택에 성공하는 ‘하나의’ 사례는 또 발견될 것이고,이는 ‘기능성'의 객관적 증거로 활용될 것이다.그리고 이렇게 희박한 성공의 기능성이 표면화될 때,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 수천수만의 사례는 노력 부족이리는 말로 간단하게 정리 처분된다.이렇게 좌절하는 자아가 많아질수록 자기계발서 시장은 더 커진다는 건 두 말하면 잔소리. 노골적으로 말해, 자기계발서를 읽었다는 건 낚였다!’의 다른 말인 것이다.-38쪽

오동철: 너 아직도 노냐?
한세진: 예? 노는 게 아니라.....
오동철: 요새 취직하기도 힘들다는데.....불황 아니냐, 불황. 우리나라 백수 애들은 착해요. 텔레비전에서보니까 프랑스 백수 애들은 일자리 달라고 다 때려 부수고 개지랄을 떨던데, 우리나라 백수 애들은 다 지탓인줄 알아요. 지가 못나서 그런 줄 알고. 아휴~새끼들 착한 건지. 멍청한 건지. 다 정부가 잘못해서 그런 건데~~ 야! 너도 너 욕하고 그러지 마. 취직 안 된다고. 니 탓이 아니니까. 당당하게 살어! 힘내 씨발!
-50쪽

시간을 ‘나처럼’ 보내지 않은 사람을 결코 ‘나와 같은 급’으로 인정해서는 안 된다. 다 같은 노동자라고? 큰일 날 소리다. 나보다 ‘덜’ 노력한 사람은 그만큼 ‘덜’ 대우받아야 한다. 이렇게 ‘엄격한 시간관리'만이라도 평가받길 원하는 것이다.-82쪽

개인이 시간을 어떻게 사용했느냐를 기준으로 모든 세상사를 다시 보게 만드는 것이다. 자기계발을 수행해야만 하는 상황이 세상을 바라보는 이십대의 눈을 만들어버렸고, 그 이십대의 눈은 곧 자기계발서 자체가 되어버렸다. 문제는 이십대 스스로 그 시각에 갇혀, 결국은 다시 자기계발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악순환에 빠진다는 것이다. 이십대가 자기계발을 하는 이유는, 자신들이 인정하지 않던 바로 ‘그 사람들’이 되기 싫어서다. 이것이 자신을 자기통제적인 자기계발로 몰아붙이게 하고, 덩달아 ‘시간관리’에 대한 신념은 더욱 강화되며, 이 신념은 타인을 평가하는 고정관념이 되어버린다. -83-84쪽

고통이란, 한 개인이 특정한 현상에 반응하는 지극히 주관적인 감정 상태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자기계발서는 고통을 객관적으로 비교 가능한 것으로 해석한다. 즉 A가 아파할 때 그보다 더 심한 고통을 이겨낸 B가 있다면 A의 고통은 참아야 되고, 이겨내야 하고, 사회적 요인과 무관한 것이 되어버린다. -91쪽

흥미로운 건, 앞선 장에 등장한 이십대들은 한편으론 취업을 못 하고 있는 자신들의 고통을 알아달라고 호소하면서 또 한편으론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 요구에 반대한다는 점이다. 이런 이율배반이 또 어딨는가. -92쪽

기실 ‘공감’이란 단지 함께 느낀다는 점에서 중요한 게 아니라, 이를 시작으로 한 개인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의 오류를 발견할 수 있게 되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권장된다. 그래서 타인의 상황을 깊고 넓게 이해할수록 당연히 타인을 섣불리 이렇다 저렇다 재단할 수 없는 이유를 발견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바로 이렇게 되는 걸 일컬어 ‘공감대가 넓다’고 하지 않는가. -93쪽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자기계발은 사람들을 성공으로 이끌지 못하고, 그런 좌절 속에서 사람들이 겪게 되는 아픔은 ‘힐링’으로는 힐링되지 않는다. 그래서도 지금 필요한 것은 바로 자기계발 권하는 사회, 그 자체를 치유하는 일이다. -189쪽

이십대의 상황을 분명한 사회문제라고 다들 동의하면서도, 이들에게 한다는 조언에는 어째서 하나같이 개인은 사회를 바꿀 수 없다는 전제가 깔려 있는가. 자기계발이 개인에게 다가가 기어코 얻어내고 마는 대답이 실상 ‘나는 사회를 바꿀 수 없다. 그러니 나부터 이기고 보자!’ 아닌가.-192쪽

인류가 여성에게 참정권을 부여하고 어린이를 교육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장애인의 권리를 인정하고 인종차별을 부당하게 여겨 철폐하고… 이런 변화는 기존의 사회가 문제 많다는 걸 직시한 개인들의 노력에서 시작된 일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다만 그것이 왜 문제인지, 또 문제라면 이를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를 모를 때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원래의 것이 옳은 듯 착각할 뿐이다. 그러나 착각이 깨지면 그 사회는 절로 좋은 쪽으로 구성원들을 이동시킨다. 사회는 그렇게 ‘개인들’로 인해 변하는 것이다. -192-193쪽

사실 어떤 현상에서 나타나는 문제점을 논할 때 "그래서 대안이 뭔데?"라고 묻는 것이 문제제기 자체를 봉쇄하는 효과가 있다는 점이다. 효율적으로 시간을 관리하라는 자기계발 담론에 따르자면 가급적 기존의 룰에 충실한 것이 개인에게 훨씬 이득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사회를 바꾸는 건 힘들고 불확실한 일이기 때문이다. 될지도 안 될지도 모르는 일에 자신의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는 건 개인에겐 큰 손해다. 자연히 자기계빨이 성행하는 사회에서는 확실한 대안이 없으면 굳이 문제제기하지 않는 태도가 일상화된다. -194쪽

그저 사람답게 살기 위해 ‘초인’이 되어야 하는 사회는 무능하기 짝이 없는 사회다. 그런데도 초인적 노력으로 사회구조의 장벽을 뚫은 그 미세한 확률에다 사람을 몰아넣는 자기계발의 이야기들이 판치고 있는 세상이다. ‘자기계발서’라는 렌즈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 이십대들은 자기통제의 고통을 참아내고자 스스로에게 방어막을 친다. 자신이 경험하는 차별이 부당하다고 말하는 순간 ‘자기계발의 패배자’로 낙인찍히는 사회를 살아야 하는 이십대들은, ‘사회적 차별’을 수능할 수밖에 없다. 그 차별에 자신이 당하는 것을 인정할 뿐만 아니라, 자신이 남을 차별하는 것 역시 정당화한다. 그렇게 위계화된 학교서열에 대한 집착은 이십대에게 가장 통속적인 자기 방어기제가 되었다. -2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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