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숑숑 계란탁'인가, '파송송 계란탁'인가? 영화사진을 찾으려고 검색을 하는데 '파숑숑'이라 하니 안나온다. 그래서 다른 사이트에서 찾았더니 그래도 안나온다. '파송송'이라 치니 그제서야 사진이 나온다. 나는 왜 이 영화 제목을 '파숑숑 계란탁'이라고 생각을 했을까 라고 잠시 생각해봤다.

결론은 영화 속에서 쬐그만 꼬마아이가 계속 혀짧은 발음으로 '파숑숑~ 계란~탁' 하고 말하고 다녔기 때문에 나는 영화 제목을 '파숑숑 계란탁'으로 인지했던 것이다. 숑숑이건 송송이건 어쨌든 파 썰어내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니 같다 봐야지.

대학 때 한창 음악한답시고 깝치다가(?) 지금은 짝퉁음반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 26살 청춘의 대규. 여자꼬시기를 특기이자 취미로 하고 있는 그가 여자를 낚아서 집에 데려갔는데 딩동~ 하는 소리. 문을 여니 웬 9살 꼬마가 지집드나들듯 냉장고 문을 열고 물을 마시고 침대에 앉는다. 아니 이런 황당한 놈이 있나.

아홉살 꼬마 맞아?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 정도로 당돌하고 발랑 까진(?) 이 놈을 어찌한다. 아니 소설 <아홉살 인생>에서 나오는 아홉살과 이 아홉살은 왜 이리도 다르단 말인가? 정신의 조루증이냐?

이 아이를 대규가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영화적 설정. 아이가 갑자기 쓰러지고 뭐 무슨 죽을병에 걸려서 고작 길어야 2-3개월 산다고? 대규로 하여금 동정심을 이끌어내 아이를 받아들이게 하려는 감독의 술책.

오상훈 감독은 <위대한 유산>으로 감독으로서의 데뷔를 했다. 그때의 위대한 유산은 찰스 디킨스의 유명한 소설 <위대한 유산>이 아니어라. 김선아 주연의 코미디가 바로 이 영화여라. 오상훈 감독은 파숑숑 을 만들때 이런 생각을 했다 한다. 어디선가 내 아들이 자라고 있다면? 이라는 가상설정을 해봤단다. 이런 사고는 어디서 비롯되는가? 오상훈 감독이 여기저기 씨뿌리고 다니는 농사꾼이라고 된단 말인가? 나야 그런적이 없으니 나는 당연히 어디서도 내 아들이 자라고 있을리 없다. 당연히 딸도 있을리 없다. 자기자신이 그렇다 라는 말을 돌려서 이렇게 영화적 설정을 해버리는 감독.

국토종단을 하고 싶다는 이 얼마 살지 못할 놈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갑자기 대규는 마음착한 천사가 되어 땅끝마을부터 걷기 시작한다. 결국 중도에서 아이는 쓰러지기를 몇번.

영화는 장르구분에 따라 지극히 휴먼코미디다. 인간적인 눈물을 짜내게 하는 감동과 그 안에 깃든 자잘한 코믹스러운 행위들. 라면을 좋아하는 아이를 위해-라면을 좋아하는건지 돈이 없어 라면을 먹는건지 모르지만- 또 파와 계란이 없으면 라면을 먹지 않는 아이를 위해 없는 돈 쪼개 파와 계란까지 샀다. 파 숑숑 썰고, 계란 탁 깨뜨려 첨벙. 꿀꺽. 침 넘어간다.

한편의 감동적인 코미디. 두번 볼만한 영화는 아니지만 한번은 볼만한 영화. 감동의 눈물 한방울 라면에 떨궈 드실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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