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분
파울로 코엘료 지음, 이상해 옮김 / 문학동네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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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울로 코엘료에 맛들렸나보다. 내친김에 그의 유명작들을 다 읽고 있다. 그래봐야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연금술사>에 이어 지금 읽은 <11분> 이렇게 세권이 고작이지만 말이다. 어쨌든 내가 다른 책을 미루고 그의 책만 연속적으로 읽는 것은 그가 꽤나 매력적인 글을 써냈다는 증거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코엘료를 다 읽고 아 드디어 코엘료라는 한 작가를 내 머리 속에 꾀어찼다는 어떤 만족감을 충족시키기 위함도 있으리라. 에니아그램 5번형인 나는 지식 쌓기를 즐기니깐.

 애초 내가 코엘료를 오해했던 <11분>이라는 책은 역시나 경영실용서는 아니었다. 11분안에 뭐 끝내기 이런게 아니라 남녀가 성관계를 지속시키는 시간을 의미하는 11분이었던 것이다. 11분? 코엘료 이전에 어떤 작가, 1970년에 미국에서 어빙 월리스라는 작가가 <7분>이라는 섹스에 관한 책을 썼다가 검열을 받았다고 한다. 윌리스는 섹스지속시간을 7분이라고 생각한 반면 코엘료는 7분은 너무 짜다? 고 생각하여 11분으로 늘렸다고 한다. 둘 모두 과학적 근거는 없다.

 이전의 다른 소설들은 코엘료 자신의 험한 인생담을 담고 있는데 비해 이 책은 그의 이야기가 아니다. 실제 브라질 출신의 한 여성이 쓴 글을 통해, 그녀와 이야기함으로써 작가의 머리에 완성되어 간 것이다. 그녀의 경험을 자신의 손을 통해 드러낸 것이다. 하지만 코엘료는 그렇더라도 그것은 자신의 이야기라고 한다.
  
 한 기자의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그렇진 않다. 나는 우연한 기회에 그 브라질 여성의 이야기를 들었고, 실제로 그녀를 스위스에서 만났다. 소설의 얼개와 분위기는 그 여성의 이야기이지만 그건 곧 나 자신의 이야기, 나 자신의 실수를 쓴 것이다."

 그는 또 "성 정체성에 대한 충돌이다. 많은 사람이 얼굴을 마주칠 땐 결코 즐겁지 않으면서도 즐거운 척하고, 몸과 마음이 서로 일치되지 못한 상태로 거짓말을 한다. 몸과 마음이 일치되는 성(性)의 신성함이 내가 말하고 싶었던 주제이다." 라고 집필의도를 밝힌다. 

 소설 속에서 마리아가 나중에 쓰고자 마음 먹었던 그리고 그녀가 계속해서 도서관에서 섹스에 대한 책을 찾았던 책이 바로 코엘료의 <11분>이다.
 
 소설 속에서 겨우 11분을 위해 모든 세상이 돌아가고 있다는 마리아의 말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 프로이드 식의 어거지 논리를 들이대자면 그리 볼 수도 있겠다 싶다. 프로이드는 모든 것을 성적인 잣대로 분류하니까. 우리가 화장품을 바르고, 좋은 옷 입고, 좋은 음식 먹고, 운동하고, 거울을 보는 행위는 모두 11분을 위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자기만족이나 타인에게 잘 보이기 정도를 넘어 섹스로 까지 연결되는지는 모를 일이다. 그건 개개인마다 다 다를테니까.

 <11분>은 섹스에 대한 소설이지만 순전히 섹스를 위한 소설은 아니다. 오히려 이전의 코엘료의 다른 소설들과 같이 자아찾기에 대한 소설인데 단지 '섹스'를 통했을 뿐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듯 하다. 마리아는 어린나이에 섹스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경험이 많은 여자가 됐지만 그녀는 그곳 생활을 정리하고 다시 돌아가 전에 자신이 꿈꿨던 일들을 실행하려 한다. 소설의 처음과 끝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섹스'지만 궁극적인 도달점은 '자아찾기'다.

 코엘료가 "몸과 마음이 일치되는 성(性)의 신성함이 내가 말하고 싶었던 주제이다"라고 말한 것도 섹스를 말했다기보다는 사랑을 말했다고 봐야겠다. 섹스는 마음이 없이 몸으로 가능하지만 사랑은 마음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사랑은 나를 향한 것이건 타인을 향한 것이건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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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 현상 2005-02-24 0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저도 베로니카만 읽으면 되겠네요 저는 두 소설이 내용이나 짜임새에 큰 불만은 없지만 책을 덮고 떠오르는 단어를 한마디로 하면 '피상성'인 듯해요^^ 두 소설 다 저는 지극히 상식에 기대어서 읽었다 할까요? 물론 건전한 상식의 파격 정도를 놓고 소설을 평가하는 것 자체가 근대문학 '하는 사람들'의 틀에 갖힌 것일 수 있지만^^

마늘빵 2005-02-24 1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확실히 강하게 독자를 사로잡는 뭔가가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그냥 무난하게 은근히 매력적인 맛은 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