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바다 - 풍림명작신서 17
헤밍웨이 / 풍림 / 1993년 1월
평점 :
절판


 


 

 

 

 

 

미국의 소설가. 자연주의적인, 또는 폭력적인 테마나 사건을 무감정의 냉혹한 자세로 불필요한 수식을 일체 빼버리고 신속하고 거친 묘사로 사실만을 쌓아 올리는 하드보일드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다. 1953년 퓰리처상을 받고 1954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헤밍웨이의 집 /

플로리다주 키웨스트에 있는 미국의 대표적인 하드보일드 문학가 헤밍웨이의 집.

 

 <노인과 바다>는 어니스트 헤밍웨이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고전 중의 고전으로 분류되어 각종 추천도서에 오르내리는 작품이며 이 책을 읽은 사람은 많지 않더라도 이 책의 이름이나 헤밍웨이를 모르는 이는 없다.

 내가 이 책을 구입한 것이 중학교 시절로 추정된다. 나는 책을 구입하면 구입한 날짜를 적어두는 습관이 있는데 그것은 내가 본격적으로 책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면서였고,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책을 읽지 않는 학생이었기 때문에 가끔 구입한다고 하더라도 날짜나 이름을 적지는 않았다. 이 책엔 아무런 기록이 없는 걸로 봐서 내가 중고등학생이었을 때 구입한 것이고, 책의 출판년도가 1992년 판본인 것으로 추정, 중학교 시절이라고 생각된다. 물론 1992년은 내가 초등학생일 때지만 초등학교 땐 책을 사질 않았다. 따라서 그 후 몇년후인 중학교로 추정하는 것이다.

 어찌되었건 이 책은 내가 구입한지 10년이 넘은 지금에야 나의 손에 다시 들어왔다. 집에 켜켜히 쌓아둔 보지 않은 여러 책들 중에 한권으로 묻혀 지내다 이제야 나의 손길을 받게 된 것이다.
 
 읽었던 기억은 난다. 하지만 읽다 만 것으로 생각된다. 꼬마아이가 등장하는 앞의 몇 장면들이 눈에 선하지만 바다위의 전투는 내 기억에 없기 때문이다. 다소 지루한 면이 있고 생동감이 떨어지는 이 책이 어린 학생의 눈에 쉽게 들어올리 없었을 것이다. 아마도 수면제쯤으로 생각되었겠지. 사르트르의 <구토>를 읽듯이.

 헤밍웨이는 <노인과 바다>로 인해 1953년에 퓰리처상을, 1954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았다고 한다. 1899년 7월 21일에 태어나 1961년 7월 2일에 생을 마감하다. 62세의 삶을 살았으니 당시로는 살만큼 산 것으로 생각되지만 그는 자살로서 목숨을 끊었다. 늙어 죽은 것이 아니라 엽총으로 자신을 쏨으로써 죽었다. 그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엽총으로 자살한 것으로 그것도 '추정'될 뿐이다.

 낚시와 스포츠를 좋아하는 의사인 아버지와 음악을 좋아하고 종교심이 있는 어머니를 두었던 그는 아마도 예나 지금이나 사회의 존경을 받으며 부유한 삶 또한 누릴 수 있는 의사라는 직업을 둔 아버지 밑에서 자라며 풍요로운 생활을 누리지 않았을까 싶다.

 경제적 풍요로움은 항상 문화적 풍요로 직결되지는 않지만 문화적 풍요를 누릴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준다. 헤밍웨이가 대학을 가지 않고도 기자로  활동한 것이나 소설가로서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이런 여유로움이 어느 정도 작용하지 않았을까? 물론 노벨문학상을 받기까지는 그의 타고난 혹은 끊임없는 노력에 의한 글발이 주요 요소였겠지만 말이다.
 
 아버지와 함께 낚시를 한 경험을 바탕으로 <노인과 바다>는 탄생했을 것이다. 어쩌면 그의 소설 속에서 나이든 어부는 그의 아버지를 모델로 한 것은 아니었을까. 물론 의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낚시를 취미로 삼는 그의 아버지의 이미지와 소설 속의 힘겨운 할아비의 이미지는 선뜻 일치하지 않지만 말이다.

 <노인과 바다>에는 등장인물이 몇 없다. 노인, 아이가 주인공이고, 곁가지로 동네 어부와 마지막에 어떤 여인네만이 등장한다. 아이의 아버지는 실제 등장하진 않고 대화 속에서 언급될 뿐이다. 그러니 영화로 찍자면 아이의 아버지는 등장하지 않는다. 초저예산 영화가 될 법하다. 다른 배경도 필요없다. 그냥 허름한 바닷가 근처의 집과 바다, 허름한 배만이 필요할 뿐.

 노인이 배를 이끌로 사흘 밤낮으로 사투를 벌이며 커다란 고기를 잡고 돌아오는 길, 상어떼의 습격(?)을 받아 어렵게 잡은 고기를 빼앗기고 만다. 사흘 밤낮의 수고가 허물어지는 순간이고 맥빠지는 순간이다. 잠도 자지 않고 오로지 이 고기를 잡기 위해 사투를 벌였건만 노인은 실패했다. 내가 죽을지언정 이 고기를 빼앗길 수는 없다는 신념으로 상어떼들을 하나 둘 물리치지만 떼로 몰려드는 이들을 힘없는 노인이 홀로 막아낸다는 것은 불가능해보인다.

 이 소설은 다소 따분하다. 하지만 그 따분함은 어쩌면 삶에 있어서의 고독과 삶에 내던져진 단독자로서의 마주함이다. 앞서 이 따분함을 또다른 바다 건너편의 나라 출신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장 폴 사르트르의 소설 <구토>에 비교했지만 이들은 정말 비슷한 정신세계를 바탕으로 소설을 그려내고 있다.

 그 고독함과 쓸쓸함, 힘겨움은 한낮 바다 위의 노인과 고기의 싸움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는 우리가 삶에서 마주해야 할 고난을 표현한다. 우리는 그 노인이고 고난은 고기와 상어떼다. 하나의 고난을 겨우 이겨냈다 할지라도 뒤이어 닥치는 또다른 시련은 우리를 지치게 만든다. 그렇다고 나 죽었소 하고 무기력하게 있으면 정말 죽는다. 연속되는 시련을 이겨내고 돌아오는 길. 비록 이득없는 헛된 승리라 할지라도 그것은 하나의 소중한 경험이고 삶의 자산이다. 우리는 다음에는 그러지 않을테니까. 다음에는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당하지 않을테니까.

 나는 헤밍웨이의 다른 소설들을 읽지 않았다. 아직은. 하지만 <노인과 바다>로 인해 다른 소설들에도 눈길이 가는 것은 사실이고, 아마도 또 기약없이 '언젠간'이라는 말로 대신해야겠지만 그의 소설을 접해볼 것이다. 그때 다시 만나자. 헤밍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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