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과 김용옥 - 하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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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려운 이론서적도 아닌데 책 한권 읽는데 3일이나 걸렸다. 아주 부담없는 인물비평서인데도 말이다. 설연휴임에도 이 정도라면 나는 참 놀고 먹는 백수다. 게으름증이 뼈 속까지 스며들었나보다.

 이 책은 <이문열과 김용옥> 전 2권 중 김용옥 비판에 대해 다루고 있는 하권이다. 상권이 머리말을 제외하고는 전적으로 이문열 비판에 열을 올리고 있는 반면, 하권은 책의 절반 가량만을 김용옥을 위한 장에 할애하고 나머지는 다시 이문열에게로 돌아가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그만큼 강준만 교수는 이문열에 대해서 할 말이 많았나보다.

 상권을 읽고 쓴 리뷰에서 상권은 이문열, 하권은 김용옥을 위한 책이라고 말했지만 수정해야할 듯 하다. 김용옥 비판에 대한 글을 읽기 위해서는 하권만 읽어도 충분하지만, 이문열 비판을 위한 글을 읽기 위해선 상, 하권 모두 읽어야겠다. 단 하권의 앞 절반가량의 김용옥 부분을 제외하고 말이다.

 상권과 하권이 차이점은 또 있다. 이는 엄밀하게는 상권과 하권의 차이라기보다는 강준만의 이문열과 김용옥에 대한 시선의 차이라고 해야 옳겠다. 강준만은 이문열에 대해서는 '얄짤없다'. 하지만 김용옥에 대해서는 김용옥을 둘러싼 수많은 비판을 물리치고 그를 옹호하는 면모를 보인다. 심지어 일본 가나가와대 윤건차 교수의 책 <현대 한국의 사상흐름>에서 한국의 지식인 지도에 있어서 동일하게 '비판적 자유주의' 진영에 속해있는 진중권으로부터 가혹한 비판을 받으면서까지 강준만은 김용옥을 옹호한다.

 물론 강준만은 김용옥을 비판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의 김용옥 비판은 옹호에 비하면 매우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는 점이 특이하다. 또한 그의 이문열과 김용옥에 대한 관점은 내가 책을 읽기전에 가지고 있었던 두 사람에 대한 그것과도 별다른 차이를 보이지 않고 있어 반갑기까지 하다.

 나는 강준만 만큼이나 구체적으로는 아니지만 이문열의 정치적 언사에 대해서 심히 불쾌했었고, 김용옥에 대한 항간의 비판에 대해서는 그가 너무 불쌍하게 느껴져서 안아주고 싶었을 정도였다. 표현이 너무 너무 과장되었나? 어쨌든 나의 두 사람에 대한 시선은 이 책을 읽기전에도 강준만의 그것과 비슷했다.

 김용옥은 주변이 모두 경기고-서울대 출신인 KS 마크를 밟은 집안에서 자랐고, 홀로 지지리도 공부못하는 바보로 취급받으며 고려대 생물학과에 입학했다. SKY대학인데 바보 취급했다니 너무한다. 그래도 먹어준다는 학벌이 아닌가? 그럼 스카이도 못간 이들은 뭐가 되나? 이것도 스카이 아닌 이들에게 가해지는 또다른 '지식폭력'이다.

 어쨌든 김용옥은 한국사회 전체에서 보자면 괜찮은 학벌이지만 그 집안에서는 나홀로 돌탱이인 고려대를 들어갔고 무지하게 스트레스를 받았나보다. 그러한 집안의 지식폭력에 시달리며 그는 고려대 철학과에 재입학해 대학원을 마치고, 대만, 일본, 미국의 최고 대학들에서 학위를 받아 한국에 '당당하게' 돌아왔다. 서울대는 가볍게 제친 것이다. 그의 학벌 앞에서 서울대는 우습다. 게다가 40중반 나이에 원광대 한의학과까지 들어가 졸업하고 한의학 자격을 획득하다니. 실로 그의 공부벽이 놀랍다. 아니 학위수집벽이라 해야겠다. 

 그렇게 그는 한국사회에서 그 누구도 무지할 수 없는 막강화력의 학벌을 가지고 떵떵거리며 자신의 철학을 펼친다. 그것도 최초로 EBS 방송을 통해 전국 생방송 중계되는 2시간 넘는 철학강의를 펼치다니 실로 놀랍다. 그런데 그 사실만으로 놀라운데 더 놀라운 것은 일반 시민들이 그의 강의에 푹 빠져 헤어나오질 못하는 사이비 종교단체의 광기와도 같은 분위기다.

 바로 여기서 김용옥에 대한 비판이 거세진다. 당신은 연예인인가, 철학자인가? 를 시작으로 도올이 펼치는 노자강의가 학계에서 통용되는 정식해석방식이 아닌갑네, 니 강의 방식이 영 마음에 안든다 왜 욕설을 지껄이느냐는 등 비판도 가지가지다. 자신을 천재, 신이라고 표현한 도올이 열받을만하다.

 강준만은 이들의 모든 가지각색의 비판들을 종합해 반론을 펴고 도올을 구해준다. 하지만 그라고 도올의 모든 것을 포용하지는 않는다. 극우 언론을 비롯한 수구반동세력의 입을 빌어 글을 쓰는 것이나 노태우, 김영삼의 똥구멍을 핥는 용비어천가를 내놓은 것도 영 못마땅하다. 이점에서는 나 또한 강준만에 동의한다. 나도 도올의 이런점만은 영 못마땅하다.

 하지만 이를 제외하고는 도올이 철학을 대중화시킨 점이나 누구도 접근할 수 없는 학문을 아무나 접할 수 있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지금까지의 지식폭력으로부터 대중을 해방시키는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이다. 철학은 그들만이 언어가 아니다. 지금껏 그랬을지 모르지만 도올은 이를 거부하고 쉽게 쉽게 쓰고 일부러 재밌으라고 욕도 섞고 무당이 굿하듯 쇼도 하면서 강연을 한 것이다.

 그가 자신에 대한 비판에 답하지도 않고 오로지 자기자신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은 또다른 지식폭력이긴 하지만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던 핵심적인 지식폭력, 지식의 독점을 깼다는 점에 비하면 그의 또다른 지식폭력은 아주 사소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김용옥을 매우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그는 학문을 혼자만 소유하려하지 않았고 대중과 함께 하길 바랬으며, 그것이 비록 쇼라는 형식을 통해 온갖 욕설이 난무하는 환경에서 벌어졌다 하더라도 대단한 일임은 인정해야한다. 우박 쏟아지듯 하는 비판에 결국 방송을 그만두고 잠적해버렸지만 나는 그가 다시 나와 광기를 부려줬으면 하는 바램이다.


덧붙이며...

 나는 한국사회에서 영향력있는 SKY 학벌을 지니고 있지 않다. 나는 도올과도 같은 학벌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으며 대학을 수직서열화시키는 이 사회에 환멸을 느끼고 있다. 대학의 수직서열화는 곧 한 개인의 인생의 수직서열화로 연결된다. 학벌을 타파하자는 구호는 간혹 곳곳에서 들리고 있지만 아직 멀었다. 학벌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사라진 듯 보일 뿐이다.

 나는 서울의 중위권 학부 대학을 나와 스카이중 한 곳인 고려대 대학원으로 간다. 그러나 우리네 학벌사회에서 적용되는 것은 석사, 박사를 어디서 땄느냐보다는 학부를 어디나왔느냐다. 그 점에서 나는 비록 고려대로 가 석사를  받는다해도 학벌사회의 피해자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도올이 지식폭력의 희생자였다고 하지만 도올은 나에 비하면 상위층에서 시작해 최상위층으로 올라선 셈이다. 나는 바닥에서 시작해야한다.

 또한 서열화에 있어서 나보다 못한 대학을 나온 이들은 나보다 더 밑에서부터 그들의 인생을 시작해야한다는 점에서 나보다 더한 지식폭력을 경험한다고 볼 수 있겠다. 학벌타파가 유일한 해법이지만 학벌은 타파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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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 현상 2005-02-09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첫직장에서 이대석사가 한명 있었는데 어느날 사장이 그 사람에 대해 "학력세탁이나 한 것이 말이야"라고 하더군요. 그게 무슨 말인가 했는데 그 사람이 다른 여대학부를 나오고 대학원을 이대로 갔다 해서 한 말이더군요^^ 약간 끔찍하죠?

마늘빵 2005-02-09 1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이런 너무하네요. 대학원을 좋은데 나와도 그걸 또 세탁했다고 하는군요. 우리나라의 학벌구분이 역시 '학부'에 있다는걸 증명하는 한 사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