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만 어깨를 빌려줘 - 이용한 여행에세이 1996-2012
이용한 지음 / 상상출판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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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성에 대한 숭배는 항상 뭔가 더 나은 것이 미래에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믿는 일종의 탐욕이다. 하지만 가능성의 마법은 미래에 마법을 거는 대가로 현재에 대한 환멸을 요구한다."(마이클 폴리, "행복할 권리")-17쪽

티베트에서의 시간은 말과 야크가 걷는 속도로 흘러가고, 몽골에서의 시간은 낙타가 걷는 속도로 흘러간다. -24쪽

빨리 달린다고 해서 하루가 더 빨리 가는 것도 아닌데, 우리는 왜 그렇게 속도를 내지 못해 안달인지 모르겠다. 사실 속도라는 것은 에너지의 사용량과 비례한다. 더 빨리 가기 위해서는 더 많은 에너지를 사용해야 한다. 이를테면 자동차가 한 시간을 달리려면 최소한 몇 리터의 기름이 필요한 법이다. 하지만 당나귀와 함께 한 시간을 걷는 데 필요한 에너지는 당나귀가 소화한 한 묶음의 건초만 있으면 된다. -24쪽

"세계의 절반은 너무 많이 생산해서 가난하고 나머지 절반은 너무 적게 소비해서 가난하다."(버트런트 러셀, "런던통신 1931~1935", 너무 적게 소비해서 가난한 것을 비난하지 말라.)
-25쪽

관광이라는 것은 필연적으로 현지의 자연과 문화와 삶에 영향을 미치고,
결정적으로 그것을 파괴하는 힘을 지녔다.
이것은 또 다른 침략이고,
그곳을 여행하는 나 또한 어쩔 수 없는 침략자일 수밖에 없다.
-47쪽

카오산의 수많은 여행자도 떠나기 전에는
우리처럼 평범하게 출근하고 노동하고 퇴근하던 사람들이었다.
잠깐씩 친구도 만나 수다 떨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모두 떠나는 순간 여행자가 되었고,
이곳에서 자유인이 되었다. -53쪽

여행은 ‘지금 이곳’의 나를 ‘여기’가 아닌 곳으로 잠시 데려가는 것이다. 여행이란 더 이상 한가한 한량이나 부유한 계급의 특권이 아니다.
-55쪽

여행은 이제 일상이고 실천이며, 실현 가능한 로망이고, 언제든 복귀 가능한 일탈이다. 거긴 너무 위험해, 거긴 너무 멀고 거긴 너무 힘들어, 라고 미리부터 핑계 대기 시작하면 여행은 점점 어려운 불가능의 문제로 남게 된다. 처음부터 망설이면 망설이다가 끝나고 만다. 일단 저지르고 보는 것이다.

모든 생을 통틀어 오늘이 당신의 가장 젊은 시간이다. 만일 여행을 가기로 마음먹었다면, 오늘이 바로 최적의 순간이다. 내일이 되면 당신은 오늘 하지 못한 것들을 후회하게 될 것이다. 여행은 평생처럼 순간을 사는 일이다. 짧지만 눈부신 순간을. 지금 이 순간에도 전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어딘가로 떠나서 어딘가를 여행하고 있다.-55쪽

"시간은 사람을 성숙하게 만든다고 한다. 나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 시간은 사람을 두렵게 만들며, 두려움은 사람을 타협하게 만든다."(버트런트 러셀, "런던통신 1931~1935")
-55쪽

대개 남자들은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터무니없는 약속을 한다. 여자들의 어리석음은, 내 남자만은 그 약속을 지킬 것이라고 믿는 데 있다. -61쪽

"잠 못 드는 사람에게 밤은 길다. 피곤한 사람에게 길은 멀다."("법구경")-69쪽

어느 쪽이 더 불행한가, 행복한가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어느 쪽이 더 아름다운가도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불평과 불만, 불안 속에 놓여 있지 않다는 것이다.
고작해야 게르 한 채에 양 떼 50마리를 키우며 살아도
언제나 우리보다는 그들이 더 행복해 보인다.
언제나 부족을 느끼며 더 많이 가지려는 쪽은 우리다.
언제나 남을 딛고 올라서 이기려는 쪽도 우리다.
도대체 우리는 왜 무엇 때문에 그토록
눈에 불을 켜고, 입에 칼을 물고 사는 걸까.
세상에는 분명 멈추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다. -70쪽

"현대 세계에는 여가라고는 거의 없다...... 그 결과 영리한 사람은 많아졌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줄어들고 있다. 지혜란 천천히 생각하는 가운데 한 방울 한 방울 농축되는 것인데 누구도 그럴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버트런드 러셀, "런던통신 1931~1935")-83쪽

"사진을 찍으면 어떤 장소의 아름다움을 보고 촉발된 근질근질한 소유욕을 어느 정도 달랠 수 있다. 귀중한 장면을 잃어버릴 것이라는 불안은 셔터를 누를 때마다 줄어든다. 아니면 아예 우리 자신을 물리적으로 아름다운 장소에 박아놓을 수도 있다. 우리 자신이 그 장소 안에 좀 더 확실하게 존재한다면, 그 장소도 우리 안에 좀 더 확실하게 존재할 수 있을지 모르니까."(알랭 드 보통, "여행의 기술")
-97쪽

"당신을 스쳐 간다면 난 모든 것을 스쳐 가는 거야!"(레오 카락스, 영화 ‘나쁜 피’)

"사랑은 오래된 언덕 같은 거라서 닳아지게 마련이야!"(영화 ‘소년, 소녀를 만나다’)

"우린 만우절 날 헤어졌고, 난 농담만 했다. 헤어지더라도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사라지지 않길 바라며, 그 후 유통기한이 5월 1일인 파인애플 통조림을 모았다. 파인애플은 그녀가 좋아하는 과일이고, 5월 1일은 내 생일이다. 30개의 통조림을 살 때까지 그녀가 오지 않으면 우리의 사랑도 끝날 것이다. 만약에 사랑에도 유통기한이 있다면 나의 사랑은 만년으로 하고 싶다."(영화 ‘중경삼림’)

"언젠간 그를 사랑하지 않는 날이 올 거야. 그리고 언젠가는 나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겠지."(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134쪽

"역사상 그 어느 때도 자유민이 이토록 전적으로, 일이라는 한 가지 목적에만 온 에너지를 바친 적은 없었다."(에리히 프롬)
-155쪽

느닷없이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소나기가 쏟아졌죠.
빗방울은 차창을 투닥거리고, 지프는 길 위에서 투덜거렸죠. -164쪽

"그래야 한다면 그래야 한다."(베토벤)

"자유기고가는 두 종류야. 자유만 있되 기고가 없거나, 기고는 있되 자유가 없는."(시인 김경주)-174쪽

"정말 이상해. 포기하는 건 지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하나도 분하지 않아.", "얻는 것이 크면 그건 패배가 아닌 거야. 그리고 그건 포기해보지 않고는 알 수 없지."(오가와 야요이, "너는 펫")-175쪽

확실히 시간이 추억을 미화시킨다.
현재의 불만족과 상관없이 옛날은 옛날이기 때문에 아름답다.
기억은 늘 지루하고 불쾌한 순간들을 증발시키고,
기쁘고 행복한 순간들만 남겨 놓는 경향이 있다.
알랭 드 보통의 말을 빌리자면,
"현재는 너무 결함이 많기 때문이다."
-183쪽

그림자는 내가 이 세상에 던져진 사실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하나의 단서이며, 반영체이다. -191쪽

"모든, 닿을 수 없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품을 수 없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만져지지 않는 것들과 불러지지 않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건널 수 없는 것들과 모든, 다가오지 않는 것들을 기어이 사랑이라고 부른다."(김훈, "바다의 기별")
-263쪽

그리움 씨로부터

마음을 멈추고 당신을 본다.
괜찮다고 말하고 싶지만,
괜찮지 않은 밤은 온다.
창밖의 나무는 고요가 무성하고
아주 괜찮은 듯 서 있다.
당신은 언제나 떠나고 있고,
돌아오지 않을 것을 안다.
‘아프지 말아요’라고 말하던 그리움은
아프게 입술에 남아서
버릇처럼 ‘걱정 말아요’를 중얼거린다.
지나친 것들은 지나치게 나를 괴롭혔다.
가벼운 구름의 열망과
헐거운 방랑의 열정도
내내 길 위에서 시들었다.
늦은 밤, 늦어서 미안한 빗방울만이
토닥토닥 창문을 위로한다. -3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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