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근 리얼 버라이어티 강남소녀 우리 시대 젊은 만인보 19
김류미 지음 / 텍스트 / 2011년 8월
품절


애서가의 단계 중에 장서가가 존재하는 것은 ‘텍스트의 소유’가 ‘텍스트에 대한 독서’보다 쉽기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36쪽

적극성이라는 건 신자유주의 시대의 자기계발에 잘 맞는 항목이고, 그만큼 평가받기도 좋은 면이 있다. 일은 하기 나름이라, 어느 알바나 적당히 하려고 하면 편하게 일할 수 있는 구석도 있다. 보통 그런 경우를 방지하기 위해, 대기업은 시스템을 만들어 분업화시켜 놓고 소점포의 점주는 일일이 알바를 갈군다. -81쪽

"멘티가 멘토를 찾는 경우는 별로 없다. 다만, 멘토가 멘티를 고르는 것이기에, 멘토의 눈에 띄기 위해 멘티는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류미 님이 블로그에서 만난 어떤 이의 말)-171쪽

경험의 필터를 통한 발화는 모두의 긍정을 받기는 어려워도 딱히 부정을 당하지는 않는다. 의외로 악플이 잘 달리지 않았다. 늘 맥락을 정교하게 고민해 조직하려고 했었다. 글은 경험만큼의 위상을 갖게 되는 것이다. -172쪽

글을 허투로 쓰지 말아야 한다고, 내가 치열하게 쓰지 않는 글은 남들에게도 심드렁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블로그를 하며 배웠다. -172-173쪽

세상은 착하게 살고 싶은 개인들이, 적당히 세상에 맞춰서 살면서 돌아간다. 그걸 알기에 세상을 쉽게 단순화시켜 말할 수는 없다. 어떤 사안이나 과거를 회상할 때, 이들은 하나씩 자기만의 진정성을 가지고 있다. 다만, 어릴 때 가지고 놀던 장난감처럼 때에 맞춰 적당한 자리에 옮겨 놓았을 뿐 아닐까. 그래서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건 즐거운 일인 동시에, 나를 끊임없이 되돌아보게 하는 것이었다. "너도 그 나이 되면 똑같아진다."는 말이 아니라고 그 자리에서 우길 수는 없다. 그저 사는 모습으로 보여 줄 수밖에 없다고 몇 번이나 마음속으로 외친다. 메아리는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하지만. -175쪽

"어떤 삶을 선택해도 괜찮아. 다만 그걸 핑계 삼지만 않으면 돼."(‘허니와 클로버’ 대사)-177쪽

기획은 아티스트가 될 수 없는 이들에게 창조할 수 있는 권한 같은 것을 주는 게 아닐까. 내가 쓸 수는 없지만, 쓰지는 않지만 누군가를 쓰게 만들거나 누군가가 쓴 것을 의미 있게 만들어 주거나, 누가 무엇을 써야할지 선별해 내는 작업. 누구나 본질적으로 끌릴 수밖에 없는 분야가 바로 기획이다. -178쪽

뉴미디어의 낙관론 속에 뜬 새로운 사람들은 서평가거나 인문학 담론을 오프라인에서 구축해 온 그룹, 또는 해외유학 박사급으로, 개인 블로그를 통해 자신의 식견을 탁월하게 제시했던 이들이다. PC 통신 시절부터 글쓰기를 통해 칼을 휘둘러 온 뛰어난 논객들은 결국 일부만 문화평론의 영역으로 넘어왔을 뿐이다. 대부분은 트위터나 블로그 등에서 콘텐츠를 생산해 내는 ‘지적질’을 하며 푼다. 이런 상황에서라도, 기존의 생태계가 아닌 새로운 방식으로 진입해야 한다는 말은 ‘기득권의 다양성을 보고 있다.’는 욕망에 다름 아니다. "등단에 목을 매지 말고 새로운 방식으로 진입하라."는 주문은 "취업이 힘드니 스펙이 목매지 말고 창업해라."라는 88만 원 세대에 대한 개발주의적 처방처럼 들리기도 한다. -181쪽

책을 한가롭게 앉아서 읽을 수 있는 계층이 이미 존재하고, 어떤 책들이 좋은 책인가를 말하는 고준담론에는 수준 있는 책을 읽지 않는 대중에 대한 타박이 들어 있다. 종종 사소한 댓글 논쟁이 결국 "님이 무식하십니다."로 끝나는 걸 보면, 과연 이 죄책감을 어디에 놓아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183쪽

"확실히 숯불갈비집에서 12시간 동안 서빙을 하거나, 화장품 공장에서 하루 9시간씩 화장품 뚜껑을 끼우는 것에 비하면, 하루에 원고지 백 장을 쓰는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내가 쓰고 싶은 걸 쓰는 거니까."(소설가 김사과)-185쪽

출판사가 열악한 건 사실이다. 업계 게시판에 늘상 올라오는 글처럼, 신입을 뽑지 않는 출판계에는 인력난이 심각하다. 경력자를 선호하는 업계 분위기가 있고, 생각보다 적은 인원으로 돌아가는 노동집약적인 산업, 출판계를 택하는 이들은 나름대로 책을 좋아하는 것 이상으로 책에 대해 잘 알고 있다. 또 스스로를 훈련시키고 성장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다. 시간이 허락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지만, 편집자는 여느 독자들만큼이나 많은 책을 사고 읽는다. 훌륭한 편집자들은 어느 저자를 만나도 논의를 따라갈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공부량도 만만치 않다. 기실 이게 가능한 이들, 그리고 그만큼 기본을 갖춘 친구들이 편집자를 생각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189쪽

‘돈이 아닌 텍스트에 대한 숭고함과 다른 가치’를 말하기보다는 이 업계가 ‘다른 가치와 함께 기본적인 삶의 수준’ 또한 보장해 주기를 원한다. 그게 아닌 이상, 능력 있는 젊은이들은 이 바닥에 들어올 수 없다. 노동력이 정당한 대가를 받아야 한다는 명제가 담긴 책을 내고 있다면, 당연히 책값을 올리는 한이 있더라도, 노동 소외를 느끼지 않는 업계가 되기를 바란다. 이건 너무 어린 생각일까? 디자인 비중이 중요해지면서도, 교정을 비롯한 외주 노동자의 단가는 10년째 그대로라고 말한다. 신입 채용을 잘 하지 않는다고 해서 ‘뽑아주는 것을 영광’으로 아는 업계 이미지를 가질 수는 없다. 그것으로 ‘글밥 노동자’의 노동이 폄하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192-19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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