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가 개봉되기 전부터 이 영화는 나의 관심사 안으로 들어와있었다. 영혼의 무게를 잰다니... 참 놀라운 발상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영화에서 실제로 사람이 죽는 상황에서 저울에 대고 몸무게를 재리라는 생각을 한건 아니었다. 단지 영혼의 무게를 잰다는 것이 굉장히 깊이있고 철학적인 주제라고 생각했다. 물론 애초 이 영화에서 흥미를 기대하지는 않았다. 난 이미 이전에 이탈리아 대표적인 좌파감독이라 불리던 난니 모레띠의 <아들의 방>이라는 작품을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 영화에서도 감독은 필름 속의 아버지가 아들의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을 매우 섬세하고 구체적으로 현실적으로 그려냈었다. <21그램>은 그런 영화이다.
하지만 <21그램>은 죽은 자의 영혼의 무게를 재기보다는 심장병에 걸려 죽어가는 남자와 여자의 '사랑의 무게', 과거에 코카인을 하는 등 약물중독자였으나 건축가 남편을 만나 행복한 삶을 살던 여자에게 닥친 가족의 죽음, 그녀의 '복수심의 무게', 전과자의 삶을 살다 종교를 통해 구원을 받고자하는 남자가 교통사고로 한 남자와 두 딸을 죽게한 뒤의 '죄의 무게'를 재는데 초점을 맞춘다. 이미 죽은 자의 영혼의 무게가 아닌, 살아있는 자의 영혼의 무게를 말이다.
본래 이 영화의 아이디어는 과학자들의 실험에서 따온 듯 하다. 미국의 윌리엄 맥드갈 교수는 죽는 자의 사진을 찍은 결과 흰 뭔가가 몸에서 빠져나감을 발견하고 그것을 영혼이라 생각하고 무게를 달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매사추세츠 병원의 원장으로 있으면서 그는 죽음 직전의 환자들의 영혼의 무게를 재는데 성공했다. 우선 종이한장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계량기를 만들고, 여기에 곧 죽게 될 환자를 눕힌 뒤 바늘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그 결과 환자가 죽는 순간 바늘이 내려가 약 28그램 이상의 체중이 준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죽는 순간 몸무게가 갑자기 줄어든 점에 착안하여 영혼의 무게를 달아봤지요. 그랬더니 사람에 따라 조금식 차이는 있지만 평균적으로 따져보니 영혼의 무게는 약 7g정도 나가더군요"
결국 그의 말은 사람이 죽는 순간 땀이나 오줌같은 수분과 폐에 들어있는 공기가 몸밖으로 빠져나가는데 그것들을 모두 합하면 줄어드는 몸무게 28그램 중 21그램 정도를 차지한다고 한다. 따라서 나머지 7그램은 당연히 영혼의 무게라는 것이다. 그런데 왜 영화 제목은 21그램인지는 나도 모르겠다. 실험대로라면 7그램이라고 해야하는데 말이다.
어쨌든 이 영화는 매우 아웃사이더적인 영화다. 비주류 중에서도 비주류, 절대 흥미를 추구하는 관객들이 보기에는 아까운 영화다.
나는 영혼의 존재, 신의 존재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본바가 없다. 다른 문제에 대해서는 철학적 성찰을 하는 내가 유독 이 문제에 대해서 관심이 없는 것은 이것이 당면한 현실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내가 죽음을 맞이하는 그 직전에 이런 문제에 대해서 생각을 해볼지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여전히 이 문제들에 대해서는 나는 결론을 내리지 않겠다. 다만 차분히 이런 것이 있구나 라고 내게 알려주는 <아들의 방>이나 <21그램>과 같은 영화들을 통해 조심스럽게 접근할 뿐이다.
영화는 매우 남미적인 냄새가 난다. 왜 그런고하고 찾아봤더니 감독이 역시 멕시코 출신이다.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는 2001년에 이미 <아모레스 페로스>라는 영화로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한바 있다고 한다. 그리고 <21그램>을 통해 숀펜은 2003년 베니스 영화제 남우주연상, 전미 비평가 협회 남우주연상, 영국 아카데미에 노미네이트되기까지 했으며, 나오미 와츠도 베니스 영화제에서 여배우 관객상, LA영화평론가협회 여우주연상을 차지하고, 베네치오 델 토로는 2003년 베니스 영화제에서 남자배우 관객상을 수상하는 등 이 영화로 출연배우들이 온갖 상을 다 휩쓸었다고 한다.
영화는 또 한편에서는 <메멘토>같다. 과거, 현재, 미래의 구성이 시간순으로 배열되지 않고 뒤섞여있다. 그래서 이 영화에 대해 미리 줄거리를 꿰고 가지 않으면 나중에는 정신이 없을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이어지는거야 라고 생각하며 그 실타래를 푸는데에만 정신이 팔릴 것이다. 줄거리를 꿰고가도 영화를 보는 재미가 줄어들지는 않는다. 이래저래 온갖 비주류 영화들 짬뽕된 묘미를 가진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