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소의 <사회계약론> 제 1부, 제 2장에 보면 이런 말이 있다.
"모든 사회 형태 중에서 가장 오래되고 또 유일하게 자연스러운 것은 바로 가족사회이다. 이 가족사회에서마저도 자식들은 자신의 생존에 아버지의 도움을 필요한 동안만 부자간의 유대를 계속할 뿐이다. 이 필요성이 없어지자마자 이 자연적 유대도 이내 끊어진다. 그렇게 해서 자식들은 아버지에 대한 복종의 의무에서 벗어나고, 아버지는 자식들에 대한 양육의 의무에서 벗어나, 쌍방은 모두 똑같이 독립하게 된다. 그러고도 이들이 계속해서 결합관계를 유지한다면, 그것은 이미 자연적이 아니라 의지에 의한 것이다. 따라서 가족이라는 사회 자체도 결국은 규약에 의해서만 유지된다."
제2장의 제목은 '초기사회에 관하여'이다. 루소는 '사회계약'이 성립되는 가장 최초의 것을 가족으로 보고, 가족에서조차도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이루어진 사회가 아닌 서로간의 계약을 통해 맺어진 사회임을 언급하고 있다. 이후의 발전된 사회 '정치적 사회'의 모형으로 '가족사회'가 언급되고 있는 것이다.
사실 그렇다. 말이 가족이지, 우리는 실제로 가족이란 사회 내에서 서로의 암묵적인 계약을 하고 있지 않은가? 가족사회가 붕괴된다 어쩐다 하면서도 그 이면에는 가족사회 내에서의 '계약이 해지되는 상태'라는 것이 숨어있는 것이다.
그러나 가족사회가 붕괴하고 있다는 현대사회에서뿐 아니라 루소가 살고 있던 근대사회 혹은 더 이전으로 넘어간다 하더라도 가족이 '계약관계'로 성립되어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가족사회가 붕괴하고 있다는 것은, '계약이 해지되는 상태'가 숨어있는 것 이외에도 무언가가 더 있다는 말일테다. 예전에는 가족사회의 붕괴를 언급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정상적인 계약관계에 추가적인 이상이 생겼다는 말이다.
하나하나 살펴보자. 일단 루소가 언급한 가족조차도 계약으로 맺어졌다는 데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본다. 단지 그 '계약'이라는 말이 너무나도 차갑고 딱딱하고 형식적이기에 서로가 언급하기를 꺼릴 뿐이다. 나는 태어남과 동시에 아버지, 어머니와 계약을 맺었고, 아직까지도 계약상태에 있다. 물론 구체적인 시한을 정해놓은 계약은 아니다. 부모의 보살핌 속에서 의식주를 해결하고, 교육을 받고,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는 온갖 것을 제공받는다. 그리고 나는 이런 무조건적으로 보이는 혜택 때문에 자연스럽게 복종하게 된다.
우리집에서는 아버지가 퇴직한 이후 뭔가를 하고 계시긴 한데 뭔지는 모르겠고, 정식으로 직장에 다니시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어머니가 직장에 나가기 시작했고, 어머니는 저녁 8시가 넘은 시각에서야 돌아와서 빨래하고, 청소하고, 다음날 밥과 반찬을 해놓고 주무신다. 그런데 아버지는 집에 일찍 들어오면서 어머니가 들어와서 저녁밥을 챙겨주기전까지는 스스로 차려서 드시는 적이 없다. 밥과 반찬이 모두 있음에도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이런 부분이 불만스러웠고, 문제제기를 하고 싶었지만, 나는 이내 계약관계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래서 침묵함으로써 복종했다.
아주 구체적인 일례만을 들었지만 이는 나와 아버지가 맺고 있는 계약으로 인한 나의 자발적 복종의 한가지 유형일 뿐이고, 내가 아닌 다른 이들에게도 이와 비슷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어떤어떤 문제를 제기하고 싶은데 이내 내가 이랬다가는 계약이 해지될거란 두려움 말이다. 이 계약은 아마도 내가 경제적으로 자립하는 순간 해지될 것이고, 그 때 이후로는 나의 발언수위도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가족사회가 계약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은 이렇게 살펴봄으로써 증명이 됐고, 그렇담 현대사회에 와서 과거와는 달리 가족사회의 붕괴를 언급하는 하는 것은 왜일까?
이는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가 아닌, 남편과 아내의 관계에서 찾아 볼수 있다.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 또한 가족사회이지만, 남편과 아내의 관계 또한 가족사회이다. 현대 사회에서의 가족의 붕괴는 부모와 자식이 아닌 남편과 아내의 가족개념인 것이다.
과거 남편은 돈을 벌고, 아내는 집에서 집안일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일반적인 가족사회의 전형이었다. 하지만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오면서 남녀평등을 이루기 위한 사회적, 제도적으로 대대적인 수정이 이루어졌고, 이로써 여권이 신장했다. 여성들이 집안에 갇혀있지 않고 사회로 진출함으로써 돈을 벌어오게 되었고, 이제 남편이나 아내나 모두 경제적인 권력을 각자 손에 쥐게 됨으로써 과거 가족사회에서 볼 수 있었던 아내가 남편에서 복종하는 형태의 계약관계는 사라지게 되었다. 따라서 계약이 느슨해지거나 없어짐으로써 이들은 손쉽게 미계약상태로 존재하게 되었고, 만남과 헤어짐이 쉬워졌던 것이다. 그래서 남편과 아내로 구성된 가족사회는 쉽게 붕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