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인터뷰 기사를 봤다. 지금 하고 있는 성매매 여성들의 시위는 대부분 자발적인 것이며, 그들 중에는 평범한 미대생도 있음을 강조했다. 그리고 그 미대생의 사정을 자세히 소개하면서, 자신은 미대생이고 성매매를 통해 번 돈으로 복학을 해서 공부를 계속 하고 싶다고 말했다. 또 자기관리를 위해 하루에 줄넘기 300번씩하고 있으며, 책상에는 자기각오를 다지는 글 또한 써놨을 정도로 꿈꾸고 있는 삶이 따로 있다고 했다.
이 기사는 언뜻 보면 성매매를 정당화하는 발언으로 들린다. 그들은 모두 각자의 새로운 삶에 대한 꿈을 가지고 있고 단지 지금의 성매매는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가기 위한 수단이라는 셈인데,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수단으로 택한 성매매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깨달아야한다.
스스로 단지 그것은 수단일 뿐이라고 말하지만, 왜 그렇다면 다른 수단을 택하지 않고 '성매매'를 택했는가? 여기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단지 돈을 빨리 벌고 싶어서 그랬던 것이지, 더 나은 삶을 위해서 그랬던 것은 아니다. 더 나은 삶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삶의 질부터 스스로 가꾸고 지켜야 했을 것이다. 스스로를 버리면서 더 나은 삶을 꿈꾼다는 것은 모순이지 않은가?! 어물쩡 스스로의 행위를 정당화시키려는 이들의 '동점심에의 호소'는 결코 받아들여질 수 없다.
내가 대단한 도덕주의자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나는 그다지 도덕적이지 않다. 이 글을 통해 나의 도덕성이 이렇다 라는 것을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나는 어쩌면 이들을 비난하기에는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놈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들이 내세우는 논리가 틀렸다는 것이다.
각자 꿈꾸는 삶을 만들기 위해 지금 자신을 버릴 것이 아니라 지금 현재 역시 자신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지금의 내가 없다면 미래의 나도 없는 것이다. 지금의 나를 부정한다고 해서 미래의 훌륭한 내가 탄생하지는 않는다. 수단으로서 '성매매'를 택할 것이 아니라 다른 '아르바이트'를 찾아야 할 것이다. 일을 안해서 그렇지 아르바이트는 널렸다. 단지 그 아르바이트가 성매매보다 오랫동안 일을 하면서 더 적은 돈을 번다는 차이 뿐이다. 하지만 어떤가?! 불건전함보다느 건전함을 추구하는 것이 낫지 않은가?
성매매 열심히 해서 돈벌어서 내가 꿈꾸는 나의 모습을 이뤘다고 치자. 그렇다고 자신의 과거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회적으로 대단한 사람이 되었다 하더라도 그 사람에겐 이미 갖춰져야할 인격과 도덕이 사라진 뒤다.
결과는 수단을 정당화하지 않는다. 한발한발 내딛는 힘겨운 과정을 겪음으로써 얻는 결과라야 정당화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