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문, 시대의 물음에 답하라 - 조선 과거시험의 마지막 관문
김태완 엮음 / 소나무 / 2004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책문> 현재 종로, 강남 등의 대형서점에서, 그리고 알라딘, 예스24를 비롯한 인터넷서점에서 인문학 베스트셀러를 달리고 있는 책이다. 500쪽이 넘는 두꺼운 분량에 2만원이라는 부담스러운 가격까지, 선뜻 돈을 주고 사기 쉽지 않은 이 책이 그것도 고전을 다룬 이 책이 이렇듯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왜 일까? 아마도 '책문'의 내용이 담고 있는 '시대의 물음과 대답'이라는 것이 오늘날까지도 유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은 나의 학교 선배이자 현재 철학강사로 뛰고계신 김태완 선생님의 첫 저서이다. 길게 늘어진 턱수염과 뒤로 꽁지틀은 머리는 딱 봐도 '도'에 도달한 '도인'쯤으로 보인다. 그리고 실제로 김태완 선생님과 이야기를 해보면, 혹은 그의 강의를 들어보면, 도에 트인 사람이 맞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외국 유학을 갔다온 것도, 우리나라의 소위 일류대라고 하는 서울대를 나온 것도 아닌 선생님이 그만한 내공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실로 대단하다. 어쩌면 비주류를 살아온 때문에 그만한 내공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교수'직함을 받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나이 40에 이제야 배움을 알았다고 하는 선생님은 이제는 배운 것을 사회에 환원하길 원하신다. 그리고 그 첫 작업이 바로 <책문>이었던 것이다. 그 시도는 성공이었다. 선생님은 저자후기에서 책은 자신이 만든 것이 아니라 편집진이 만든 것이라 했지만 너무나 겸손한 표현이 아닌가 싶다.

 '책문'은 조선시대 과거시험 합격자들을 대상으로한 임금과 합격자의 문답이었다. 시험에 다 합격한 뒤에 임금은 당시의 어려움을 책문의 문제로 내어 그들의 대답을 듣고 싶어했다. 본래 책문은 한 무제 때 지방수령들의 추천으로 뽑힌 인재를 임용하려고, 대책을 물은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것이 조선시대에 들어와 자리잡히게 된 것이다.

 임금이 내는 책문의 내용은 매우 다양하다. 어떻게 하면 인재를 등용시킬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정쟁을 멈출 수 있겠는가, 어떻게 하면 나라를 강하게 만들 수 있겠는가, 외교책에서 정벌책을 써야하는가 아니면 화친을 해야하는가, 외교관의 자질은 어떤 것인가, 교육은 어떠해야하는가, 잘하는 정치란 무엇인가 등 다양한 유형의 질문을 가지고 있다. 또한 이에 대한 합격자들의 대답 또한 각기 다르다. 일례로 법의 폐단을 고치는 방법을 묻는 세종의 책문에, 성삼문은 역사적 사례에서 배워야함을, 신숙주는 언로를 열어 직언을 들어야함을, 이석형은 다양한 의견을 들어 조율해야함을 대답으로 내놓는다. 책문에는 정답이 없다. 책문에 비할바는 아니지만 오늘날 비슷하게 남아있는 형태로 대학입시 논술시험이 있는데 여기에는 사실 기교와 정답이 존재한다. 없다고는 하지만 사실상 우리네 교육현실에서 논술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받는 법은 학원에서 다 가르치고 있고 그 기교가 통하는 것이 현실이다. 프랑스의 바칼로레아라면 모를까? 우리나라에서는 폭넓은 독서와 깊은 사유에서 비롯된 자기만의 논술을 보기는 앞으로도 힘들 것 같다. 저자 역시 책에서 이런 의견을 내놓고 있고 나 역시 저자에 동감한다.

 우리가 <책문>을 읽어야하는 이유는 그 물음과 대답이 비록 당시의 제도와 풍습에 맞춰져있지만, 질문은 현재에도 유효하고 대답은 그 구체적인 내용을 보기보다는 국가와 사회와 역사를 바라보는 응답자의 태도와 식견을 보고자 함이다. 오늘날의 정책자들은 소위 행정고시, 외무고시라는 시험을 통해 뽑히지만 그저 달달 외우고 정답을 맞추기에 불과할 뿐 그들의 사회, 국가, 역사, 세계에 대한 가치관이나 식견을 기대하기는 힘든 것이 사실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그들의 암기력이 아니라 가치관과 국가관, 세계관인데도 말이다. 분명 뭔가 잘못되어 있는 것이 확실하다. 하지만 이를 고칠만한 제도적인 보완책이 마땅히 생각나는 것도 아니다.

 <책문>은 현재 베스트셀러이지만 스테디셀러가 될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지성인이라면 누구나 읽어야할 교양서의 목록에 올려놓아도 손색이 없는 작품이다. 간접적으로 고전을 접함과 동시에 역사를 접하고, 그들의 사유를 접함으로써 우리의 현실을, 우리의 미래를 보는 시각이 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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